아침부터 비가 무섭게 쏟아져 내리고 있어. 비가 오는 날이 좋아. 하늘이 땅과 가까이 있는 것도 좋고 모든 사물이 나지막한 소리로 속삭이는 듯한 느낌도 좋고 당신 그림자가 나를 감싸고 있는 듯한 느낌도 좋아. 근데 오늘 비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쏟아져서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인지 당신과 같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 운전대를 잡은 당신 옆에 앉아 숨죽인 채 함께 바다로 향하고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
하늘이 그대로 떨어져 내리기라도 하듯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비의 기세에 나도 모르게 운전대를 꼭 쥐게 되었어. 세찬 빗소리를 들으며 당신 목소리를 재생시켰지. 차 안을 울리는 목소리가 귀에 선명하게 새겨지는데 당신 목소리를 들으니 긴장하고 있던 어깨에서 힘이 빠졌어. 당신이 목소리를 남겨놔 두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어. 앞은 보이지 않고 주변은 어두워져 가고 빗소리는 짐승의 포효처럼 들려 너무 무서웠는데 당신 목소리만 나를 진정시켜주고 있었으니까. 마치 이런 날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당신이 언젠가 나에게 전해준 당신 목소리에 감싸여 있을 수 있는 그 순간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 비 오는 날 듣는 당신 목소리는 당신 심장의 울림을 담고 있으니까.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크고 선명해 당신이 마치 내 곁에 있는 것 같으니까.
바다 앞에 차를 세우고 있자니 괜스레 눈물이 나더라. 괜찮아질 테니까 언젠가 때가 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올 테니까 울면 안 되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볼을 타고 내리는 거야. 울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는데 아무래도 소용이 없었어. 그래서 큰 소리로, 마치 비에 지지 않으려는 오기라도 부리는 사람처럼 펑펑 울어버렸어. 눈이 안 떠질 만큼 말이야. 그렇게 울면서 멍하니 바다 앞을 지켰어.
얼마나 지났을까. 빗소리가 잦아들었어. 실눈을 떠보니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더라. 그 아래로 파도가 넘실거리고 있고 비바람에 무섭게 소용돌이치던 물결은 거짓말처럼 잠잠해져 있었어. 비 온 후의 세상은 온통 눈부신 평온함에 둘러싸여 있었어. 순식간에 바뀐 풍경 때문인지 마치 다른 세계로 이동해 있는 것 같았어.
당신이 있는 그곳 풍경은 어때? 평화로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을 당신을 위해 숨죽여 당신 소식을 기다리고 있어. 걱정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는데도 내 촉각은 어쩔 수 없이 당신을 향해 가. 몸은 많이 회복되었는지 우울하지는 않은지 당신도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함이 당신을 먹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 모든 세포가 당신에 대한 걱정으로 채워져 가고 있어.
이 사랑의 8할은 기다림이었으니 기다리는 건 아무래도 괜찮아. 기다림의 대상이 당신이라면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 있어. 하지만 당신의 침묵이 너무 길어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내가 힘들어서가 아니라 나를 걱정하고 있을 당신 모습이 눈에 자꾸 아른거려서야. 힘들다고 해 주면 좋겠는데 보고 싶으니까 와 달라고 해 주면 좋겠는데 기대고 싶다고 해 주면 좋겠는데. 나보다 더 많이 울고 있으면서도 나한테는 절대 힘든 내색 안 하겠지, 나보다 날 더 아껴주는 당신 사랑이 정말 고맙기는 한데 왜 고마운 만큼 당신 사랑에서 야속함을 느끼는지 모르겠어.
당신과 떨어져 있어서 마음이 너무 아파. 근데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고 있으면 어쩐지 함께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당신을 떠올리고 있으면 전쟁 난 것처럼 부글부글하던 게 조금은 진정돼. 당신이 집으로 돌아와 “오늘은 있잖아”라고 하면서 이야기를 꺼내는 상상을 하고 있어. 당신 이야기를 차분히 듣고 있다가 “그래?”라고 하면서 놀라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내가 눈앞에 그려져. 그게 나를 웃게 해.
당신과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평화로운 풍경이 지금의 나에게는 집이 되어 주고 있어. 모든 상황이 정리되어서 우리에게도 보통의 사람들이 가지는 그런 평범한 시간이 주어지면 좋겠어. 당신에게도 내가 당신이 쉴 수 있는 집이 되어 주고 있으면 좋겠어. 당신이 외롭지 않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