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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nar G Oct 13. 2023

달과 편지와 당신의 손

당신이 보내 준 소포가 도착한 날, 길을 잃었어. 요 며칠 그날의 기억이 계속 떠올라. 밤이었고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어. 낯선 길이라 그런지 아니면 도로도 하늘도 전부 새까매서인지 어둠에 묻혀가는 기분이 들었었지. 앞이 잘 보이지 않았으니까. 핸들을 꼭 쥐고 어둠 속을 달리는데 너무 긴장해서 그런지 맨손으로 흙을 움켜쥐며 산 정상을 향해 가는 기분이 들었어. 그래서인지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오는 것 같더라. 그대로 계속 달리다가는 길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 길이 나를 먹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헤매다가 길을 돌아 나왔어. 유턴을 하는데 차가 심하게 흔들리는 거야. 순간 등이 뻣뻣하게 굳어왔어. 당신이 죽음으로부터 돌아오는 꿈을 꾼 그날 이후 어둠의 공포를 어느 정도는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두려움이 남아 있었던 가봐. 혼자 낯선 길을 달린다는 사실에 눈물이 날 것 같더라. 눈물을 꾹꾹 눌러 참으며 느릿느릿 움직여 언덕 같은 까만 길을 겨우 벗어나는데 눈앞에 초승달이 나왔어. 그게 나한테는 당신의 길고 하얀 손가락처럼 느껴졌어. 당신이 나를 붙들어 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며 내내 나도 모르게 울며 감사하다고 중얼거리게 됐어. 

집에 도착하니 당신의 편지가 든 소포가 도착해 있었어. 편지를 읽는데 신기하게도 당신 글씨에서 당신의 손이 보이더라. 그래서 당신의 손을 잡듯 편지지 위에 손을 얹어 두고 멍하니 앉아 있게 됐어. 그러자 내 눈에 닿은 당신의 글이 내 볼로 내려와 얼굴을 감싸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혼자 울지 말라는 당신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거야. 그 목소리가 내 손을 꽉 잡아 주는 것도 같은데 나도 모르게 보고 싶다고 큰 소리를 내며 서럽게 울게 됐어. 

그날 밤은 당신 편지를 읽다가 울면서 잠이 든 것 같아. ‘손가락뼈, 초승달, 손깍지, 눈물, 붙잡음, 어둠, 길, 잃다.’ 이런 단어들을 머리와 가슴에 붙들어둔 채 말이야. 그래서였는지 밤새 끙끙 앓았어. 아침에 퉁퉁 부은 눈을 뜨면서 생각했어. 저녁이 되면 답장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이야. 그렇게 해서 그날 저녁에는 답장 대신 긴 소설을 쓰게 되었어. 소설을 쓰며 생각했지. 멀리 떨어져서도 내 걱정 밖에 없는 당신이 굳어버린 내 손을 움직이게 하는 마법을 걸어 편지를 보냈구나 하고 말이야. 

그날의 여운이 깊어. 그 여운을 머금고 있자니 당신이 눈에 아른거려.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 져서 메일을 써 내려가다가 나도 모르게 멍하니 맞은편을 바라보고 있어. 맞은편 의자에 당신이 앉아있기라도 한 듯 엷게 웃음 짓게 돼. 당신도 커피잔을 앞에 두고 나를 떠올리고 있어? 보고 싶다, 많이.     

Emmanuel_Benner,_Marie-Madeleine_au_désert_(_Musée_d'art_moderne_et_contemporain,_Strasbourg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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