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사라진 후부터 여기는 계속 눈이 왔어요. 폭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태양을 본 게 언제인지조차 기억이 안 날 정도예요. 계속 눈보라가 치고 찬 바람이 불어요. 당신의 가슴속에서는 추위를 몰랐기 때문에 당신 없이 마주한 갑작스러운 바람은 너무 추웠어요. 그러는 한편 추위는 반대로 지금까지 당신이 저에게 전해준 온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지금은 춥지 않아요. 홀로 추위에 떨지 않겠다던 당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연습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부재하는 곳에서의 고독과 외로움을 이겨내야 한다, 당신 없이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어야 한다던 그 말 때문에 그리움이 이유가 되어 울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추위에도 조금 익숙해졌어요. 어른이 되기로 했으니까, 어른이 되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웃는 시련을 마주해야 하는 것이니까 나는 오늘도 당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약해지려는 나 자신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사라진 당신 대신 반지를 만지고 있어요. 우리의 약속이 새겨진 반지를 말이지요. 이 반지를 만지는 것만으로도 당신과 함께 있을 것 같아요. 언젠가 당신이 말했죠. 당신이 나보다 먼저 세상을 등지게 된다면 다른 누군가를 사랑해 달라고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얼마나 슬펐는지는 당신은 모를 거예요. 당신이 상상하는 그 미래가 슬퍼서가 아니에요. 사랑에 빠져 행복에만 빠져도 좋을 때조차도 이별을 생각해야 할 만큼 당신이 습관적으로 무언가에 불안을 느끼고 살았다는 사실이 저를 쓸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고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당신의 마음이 얼마나 아린지 알아챘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말이에요. 나는 당신이 아닌 누군가를 사랑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만한 사랑을 누군가에게 전할 자신이 나에게는 없습니다. 이 사랑에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가슴에 그리고 나의 가슴에 우리가 만난 후부터 시작할 수 있었던 우리라는 시간이 새겨져 있습니다.
내 사랑은 그날부터 태어났기에 만약 사랑이라는 감정의 총량이 있다면 나에게 있어서의 사랑이라는 감정은 모두 당신으로 채워져 있을 것일 겁니다. 그러니까 다른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내가 죽었다고 해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당신에게 모든 사랑을 쏟아부었기에 누군가를 좋아할 마음이 내게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