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rtistical

세상의 불빛 한점

김태정

by browne

세상에 보태줄 것 없어

마음만 숨가쁘던 그대 언덕길

기름때 먼지 속에서도

봉숭아는 이쁘게만 피었더랬습니다

우리 너무 젊어 차라리 어리숙하던 시절

괜시레 발그레 귓불 붉히며

돌멩이나 툭툭 차보기도 하고

공장 앞 전봇대 뒤에 숨어서

땀에 전 작업복의 그대를

말없이 바라보기나 할 뿐

긴긴 여름해도 저물어

늦은 땟거리 사들고 허위허위

비탈길 올라가는 아줌마들을 지나

공사장 옆 건널목으로 이어지던 기다림 끝엔

언제나 그대가 있었습니다

먼 데 손수레 덜덜 구르는 소리

막 잔업 들어간 길갓집 미싱 소리

한나절 땀으로 얼룩진 소리들과 더불어

숨가쁜 비탈길 올라가며 그대

넘어질 듯 넘어질 듯 허방을 짚는 손에

야트막한 지붕들은 덩달아 기우뚱거렸댔습니다

그대 이 언덕길 다할 때까지

넘어지지 말기를

휘청거리지 말기를

마음은 저물도록 발길만 흩뜨리고

그대 사라진 언덕길 꼭대기에는

그제 막 보태진 세상의 불빛 한점이

어둠속에서 참 따뜻했더랬습니다



1963년에 태어난 김태정은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한 권의 시집을 남기고 2011년 작고했다. 그녀는 가난했고 독신이었다. 죽기 1년간 암에 시달렸다. 쓸쓸하고, 조용하던 이 시인이 소리없이 죽고나서야 모두들 애통해했다.


이 순하고 착한 시를 누군가는, 어디선가는 꼭 기억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여기에 적어둔다.


그대, 더 휘청거리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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