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보통 부모들이 자폐증 진단시 듣게 되는 말은 자녀가 심각한 자폐 증상을 가진 채로 성장할 것이라는 예상과 앞으로 친구를 절대 사귈 수 없으며, 의미 있는 대화를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특별한 도움이 없이는 정규 교실에서 학습을 할 수 없거나 독립적으로 살 수 없다는 일종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최종 선고다. 다시 말하자면, 그 자녀를 평생 동안 돌봐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종종 자폐성 장애아를 둔 부모들이 소원이 있다면 그 자녀보다 하루만 더 오래 사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J가 3살이 된 2010년 6월부터 8월까지 런던에 위치한 지역 자페스펙트럼장애 전문 전담기관인 아동 및 부모 자원 연구소(CPRI)의 자폐스펙트럼장애(ASD) 클리닉을 수차례 방문하면서 J의 머리 속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 여러 전문가들을 만났다. 우리는 모두 J가 신체발달은 정상이고 형보다 나은 것으로 생각했지만 나이 또래와 달리 말을 하지 않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처음 우리는 전반적발달장애(Pervasive Developmental Disorder, PDD)에 관한 평가를 받았고 담당 정신과 전문의 랍(Dr. Rob)은 자폐증 진단 인터뷰 - 개정판(Autism Diagnostic Interview, Revised)을 통한 진단을 시도했다.
담당 정신과 전문의 랍은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J의 진단을 기록했다.
J는 부모, 형과 함께 사는 3세 남자 아이다. 1주일에 세 번씩 반나절 동안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처음 J의 발달에 대한 걱정이 제기된 것은 14개월 때였다. 그 당시 J는 옹알이는 물론이고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눈 맞춤은 부실했다. 또한 이름을 불러도 반응하지 않았다. 두 번째 생일을 지난 얼마 후에 J는 언어치료를 시작했고 소아과 전문의에 진단을 의뢰받았다. 두 살 반쯤에 소아과 전문의로부터 기초 검사를 받았고 세 살 무렵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다.
J의 진단에는 자폐 진단 관찰 스케줄, 모듈 1(Autism Diagnostic Observation Schedule, Module 1, ADOS)을 사용했다. J는 다른 사람들을 대상으로 약간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단어를 반복 사용하지는 않았다. 한 번은 내손을 끌어 문을 닫으려고 했다. 가리키기와 몸짓은 매우 저하되어 있었다. 눈 맞춤과 다른 사람을 향한 표정도 저하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과의 상호관계를 즐기는 것 같지 않았고 가끔씩 매우 반복적인 형태로 물건을 가져와서 보여주었다. 자폐 진단 관찰 스케줄로 판단할 때, J는 자폐증 기준에 부합했다.
J의 부모에게 자폐증 진단을 설명했다. J의 부모는 진단 결과에 충격을 받았지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반응이었으며, 자폐증 진단에 대한 이해는 물론 J가 매우 어릴 때부터 발달에 이상을 보였음을 당연히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J의 부모가 J의 계속되는 발달에 의심할 여지없이 도움이 될 수 있는 적절한 서비스를 어릴 때부터 받을 수 있도록 적극 참여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현시점까지 J를 양육하는 데 있어 부모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부모의 적극적인 지원은 J의 강점으로 향후에도 계속될 것으로 확신한다.
2010년 8월 17일, 자폐증 진단이 내려지던 날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우리는 J를 비롯해서 아내와 함께 3명이 참석했으며, CPRI에서는 주진단자인 정신과 전문의 랍을 비롯하여 처음 보는 4명이 일종의 진단위원회 같은 것을 구성하여 참석한 것으로 생각된다. 랍은 그동안의 관찰 및 진단 결과를 차분한 어조로 설명했으며, 마지막으로 J가 자폐증으로 진단되었다는 말을 담담하게 했는데, J는 혼자 떨어져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고 아내는 무슨 말인지 몰라 멀뚱멀뚱하고 있는 중이었다. 자폐증이 확정되는 순간 비록 예상을 하고 있었음에도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더 이상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을 수 없어 문을 박차고 나가서 울었다. 이게 아내 앞에서 처음이자 지금까지는 마지막으로 보인 눈물이었다. 잠시 후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위원들은 약간 걱정되는 눈빛이었고 여전히 아내는 확실한 영문을 몰랐지만 어느 정도 정황의 심각성은 파악한 것으로 보였다. 랍은 자세한 보고서는 나중에 서면으로 보내준다고 했으며, 향후 계획에 관해 짧은 얘기를 마지막으로 그렇게 자폐증 진단을 위한 인터뷰는 끝이 났다. 햋살이 따갑던 맑은 여름날이었다.
자폐증 진단은 대개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이루어진다.[1]
1. 부모 인터뷰:
개정 영아 자폐증 검사 목록(modified checklist for autism in toddlers (M-CHAT)은 16~30개월의 영유아의 부모를 대상으로 ASD를 선별 진단하기 위한 도구다. 결과는 23개 항목 중 3개 혹은 6개 핵심 항목 중 2개가 해당할 때 양성으로 나타난다. 핵심 항목은 판별함수분석(discriminant function analysis)을 통해 결정된다.
2. 전문가 진단:
1) 아동기 자폐증 평가 척도 (Childhood Autism Rating Scale, CARS)
행동 평가 척도로서 자폐스펙트럼장애 증상의 존재와 심각도를 평가하기 위해 사용된다. 발달 평가가 완료된 후 평가자가 작성하고 임상 관찰자, 실험 측정자, 부모의 증언 등으로 얻은 정보도 CARS 평가에 사용된다.
2) 자폐 진단 관찰 스케줄 (Autism Diagnostic Observation Schedule, ADOS)
준구조적으로 평균화된 의사소통, 사회적 상호관계, 놀이 행동을 평가하는 도구.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평가자가 아동의 사회적인 상호작용이 시작되거나 상호작용에 반응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압박 혹은 계획 형식으로 진단이 이루어진다. 언어능력의 정도에 따라 4가지 모듈이 존재한다. ADOS 알고리듬은 자폐성 장애, ASD, 비ASD 등의 진단 커트라인을 제공한다.
3) 조기학습 뮬런 척도(Mullen Scales of Early Learning, MSEL)
대근육 운동, 소근육 운동, 시각적 수용(비언어 문제해결 능력), 수용 언어, 표현 언어 등 5개 영역에서 68개월까지 아동을 대상으로 인지발달을 측정하는 방법이다.
4) 자폐증 진단의 "황금률(gold standard)"로 간주되는 숙련된 임상의의 임상적 판단
임상의는 DSM-IV의 기준을 적용하여 전반적인 발달 장애를 판단하고 필수 진단 기준을 충족할 경우 자폐스펙트럼장애로 진단한다.
J의 경우에는 2번 ADOS로 진단이 이루어졌는데, 당시 진단실에 어지럽게 널려 있던 장난감들이 그냥 방치된 것이 아니라 진단을 위해 자연스러운 환경 조성을 위해 준비된 것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1. Colby Chlebowski et. al, Using the Childhood Autism Rating Scale to Diagnose Autism Spectrum Disorders, J Autism Dev Disord. 2010 July ; 40(7): 787–7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