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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Mayfeng Nov 16. 2019

부랴트족 제냐





부랴트족 제냐




제냐Женя는 이번 여행의 첫번째 호스트였다. 러시아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제냐’만 세 명이나 되었는데 처음에는 ‘제니Jenny’ 같은 여자 이름인 줄로만 알았다. 나중에 모스크바에서 만난 한 패션 사진가─남자─도 제냐라는 걸 알게 되면서, 그때서야 ‘제냐’가 이름이 아닌 애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냐는 ‘예브게니(남성형)Евгений’나 ‘예브게니아(여성형)Евгения’를 성별에 관계 없이 부르는 애칭이었다. 알렉산더나 알렉산드라는 사샤, 니콜라이는 콜야, 알렉산드르나 알렉산드라는 슈라, 엘레나는 레나, 예카테리나는 카티아, 블라디미르는 볼로댜 또는 보바, 나탈리아는 나타샤였다. 



제냐의 집은 오물렙스코고 거리Ulitsa Omulevskogo의 한 흐루쇼프카Khrushchevk였다. 흐루쇼프카는 소련 시대에 지어진 5층 짜리 서민 아파트를 말하는데, 러시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거 형태로 한국의 오래된 아파트와도 흡사하다. 그래서 거리를 거닐다보면 여기가 러시아인지 한국인지 종종 헷갈릴 때도 있었다. 제냐의 집은 붉은 벽돌로 지어져 한국보다는 영국 어디메쯤을 연상시켰다. 쌓인 눈과 키릴어 간판들을 보니 ‘아, 또 먼 곳으로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냐, 나 도착했어.”



나는 아파트 밑에서 전화를 걸었다. 제냐는 2층 창가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쥴리! 거기 철문 보이지? 비밀번호 누르고 들어오면 돼.” 



나는 그녀가 불러주는 비밀번호를 꾹꾹 누른 후, 초콜릿색의 두꺼운 철제 현관문을 힘껏 밀어 제쳤다. 우선 짐 하나를 한쪽 문에 고정시켜 두고, 눈길에 세워 뒀던 다른 짐 하나도 마저 안으로 들였다. 러시아 아파트의 현관문은 문 안에 약 1미터 간격으로 문이 하나 더 있는 2중 구조의 철문인데, 시베리아의 바람 한 점도 허용하지 않을 튼튼한 모양이다. 물론 도둑 방지 용도도 겸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도 블라디보스톡에서와 마찬가지로 복도에서 부터 난방의 기운이 가득했다. 그 때도 추위라는 것을 모르고 지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 추운 곳에 어찌 다녀 오셨어요?” 물었지만, 그때마다 “그렇게 춥지 않았어요.”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러시아의 놀라운 중앙 난방 시스템 때문이었다. 러시아의 난방은 데워진 물이 각 가정으로 보내져 집안을 덥히는 방식인데, 그래서 러시아에서 말하는 난방비는 전기료나 가스비가 아닌 온수비용이었다. 개개인이 끄고 켤 수 없고, 여름에 며칠 간은 공지 후에 온수 공급이 중단되는 단점이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크게 단점일 것 같지는 않았다. 욕실, 주방, 거실 할 것 없이 온수관이 연결되어 있어 훈훈함을 넘어선 수준이었다. 한겨울에 샤워를 한다는 건 상상만 해도 몸이 오들오들 떨리는 일인데 여기선 그럴 일이 없었다. 이렇게 더울 정도로 난방을 하는데도 수도세와 난방비가 합쳐진 온수난방비는 정말 저렴했다. 가구별 인원수와 사용하는 목욕물의 양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블라디보스톡의 어느 1인 가구 아파트는 월 10,000원 정도라고 했고, 시베리아 노보시비르스크의 어느 1인 가구 아파트는 월 35,000원 정도, 비로비잔의 어느 4인 가구 아파트는 월 37,000원 정도였다. 이르쿠츠크의 제냐는 월 18,000원 정도를 낸다고 했다. 물론 봄과 여름 같은 계절에는 그보다 훨씬 덜 낸다고 한다. 한국에서 러시아 스타일로 난방을 한다면, 물론 실험 조차 해 볼 수 없는 일이지만 아마 버는 돈 이상으로 난방비를 내야 할 것이다. 물론 소득에 따라 저렴하다 느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비용을 내고 적어도 춥지 않게 겨울을 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오히려 한국의 겨울이 더 춥게 느껴졌다.



제냐는 2층 현관문에 서서 잠옷 차림으로 나를 맞이했다. 우리와 너무 닮은 모습에 한국인 친구집에 놀러온 것 같았다. 그녀는 몽골어계 민족인 부랴트족이었다. 코트와 부츠를 벗고, 늘 챙겨 다니는 조리 슬리퍼로 갈아 신은 후 잠시 숨을 돌렸다. 



“차 마실래?”



그녀는 나를 부엌으로 데려 갔다. 홍차 티백 하나에 뜨거운 물을 가득 붓고, 약간의 우유를 넣어서 부랴트식 밀크티를 만들어 주었다. 일반 러시아 사람들이 마시는 밀크티와 큰 차이는 없었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진한 맛의 밀크티와는 달리, 둘 다 훌렁훌렁하게 싱거운 맛이 특징이었다. 기역자로 놓인 엷은 베이지색의 작은 싱크대와 2구 짜리 전기 스토브, 꽃그림이 그려진 액자, 반유광의 분홍색 꽃이 그려진 식탁보를 덮은 테이블, 냉장고 정도가 놓인 작은 부엌에서 우리는 한 시간 정도 얘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1987년생으로 부랴트 공화국의 수도 울란우데 출신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살았다고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어쩐 일로?”



“일하러 갔었어.”



그녀의 직업은 측량기사였다. 



“고향에는 우리 같은 전문가들이 할 일이 없었거든.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내 사촌들도 있고, 부랴트족 커뮤니티도 있고…… 그래서 지내기가 꽤 편했어. 급여도 높은 편이었고. 게다가 유럽도 가깝고, 바다도 가깝고. 거기 동료들은 자기 집도 있고, 차도 있었는데, 그래서 나도 내 아파트를 갖는 게 꿈이었어. 열심히 일을 했지. 아파트 사려고. 그랬는데 새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어. 휴가 때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왔다 갔다 하기도 너무 비싸고, 엄마랑 어린 남동생을 그냥 둘 수도 없더라구. 그래서 거기 생활을 정리했어. 4년 산거지.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갔어. 그런데 한 3년 쯤 있으니까 또 지겨워지더라구. 그래서 여기로 이사 왔어. 쥴리, 나도 언젠가는 한국에 가서 일해보고 싶어.”   



그녀의 몇몇 친구들은 급여가 높다는 이유로 한국행을 택했다고 했다. 어떤 친구는 호스텔에서 청소일을 하고, 어떤 친구는 컴퓨터로 벽지 디자인을 하고, 어떤 친구는 부산 바다에서 미역을 따는데 대부분은 불법 체류 중이었다. 대화는 부엌을 떠나서도 계속 되었다. 그녀는 잠시 일어나더니 현관쪽으로 갔다. 그리고 모피 코트를 걸쳤다. 이번에 새로 장만한 옷이라는데 가격이 무려 십만루블(약 187만원)이었다. 내가 들은 바로는 러시아인들의 평균 월급이 월 500불─모스크바는 그 두 배─정도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고가의 물건을 살 수 있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은 너무나도 21세기적이었다.



“카드할부! 10개월로 샀어. 여기서는 이거 안 입으면 너무 춥거든.” 



안에서 워낙 따뜻하게 사는 사람들이라서 추운 날씨에 적응하는 일이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약소하지만 면세점에서 산 메이드 인 코리아 마스크팩을 선물로 건네고, 침대가 된 가죽 소파에 누웠다. 



“쥴리 이거라도 덮고 자.” 



그녀는 이불이 따로 없다며 자신의 침대 위에 있던 담요를 건넸다. 사실 밖과 달리 집 안은 너무나 덥고 갑갑해서 오히려 창문을 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제냐는 기침 감기로 이틀째 콜록이는 중이었는데,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 면역력 관리를 열심히 해 온 나는 첫날부터 위기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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