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로 갑니다
시베리아라니! 무언가 감격스러운 동시에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 내게 시베리아는 그저 미지의 세상, 사람이 가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먼 곳, 정확히 어디 쯤인지 가늠할 수 없는 우주와 동급으로 여겨지던 곳이었다. 그런 시베리아를, 그것도 시베리아 항공을 타고 가게 되다니, 소설을 쓰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름만큼 항공기의 색깔도 낭만적이기를 바랐는데, S7 항공기는 낭만과는 거리가 먼, 멀어도 한참 먼, 형광빛이 도는 연두색이었다. 출발한 지 약 한 시간 반 정도 지났을 즈음 저녁 식사가 시작됐다. 동시에, 난기류로 비행기가 흔들렸다. 여행을 좋아하고 또 많이 다녔어도 높은 곳과 난기류는 여전히 무섭기만 하다. 눈을 질끈 감았다. 제발 그러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또 혹시나 모를 사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죽는다면, 과연 후회 없을까? 단번에 ‘후회 없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어도, 만약 지금이 마지막이라면 걱정되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장은 내 외장 하드 속 사진들과 메모들. 혹시라도 파일들이 살아남아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처럼 창작자도 모르게 전시를 당하는 일이 생기는 건 아닐지, 끼적여 놓은 일기장의 글들이 허락도 없이 사진 옆에 전시 되어 읽히지는 않을지…… 갖가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일 년에 최소 두 번은 이런 물음과 걱정의 시간이 찾아오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하늘 위에서다. 사실 나는 죽음이 두렵지는 않다. 준비 없는 죽음이 두려울 뿐. 그래서 틈틈이 정리라는 걸 한다. 잘 죽기 위해서. 기류는 안정 되었고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저녁으로는 사프란이나 강황 가루를 넣은 듯한 노란 밥에 줄기콩 몇 조각을 곁들인 쇠고기가 나왔다. 그리고 약간의 채소와 과일에 귀여운 아기 얼굴이 그려진 러시아 국민 초콜릿 알룐카 초코바도 나왔다. 라운지에서 점심을 먹은 터라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았지만, 그래도 샐러드는 먹었다. 살기 위해서.
왜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은 많은건지. 중국 허베이성을 지날 때는 지평선이 포커스가 나간 것처럼 뭉개진 모양이었다가 연보라빛 석양 후에는 하늘을 얼려 놓은 듯한 시린 푸른 빛의 띠로 변해 있었다. 귀에는 퀸Queen의 음악이 랜덤으로 흘렀다. 지상에는 벽난로의 마지막 불씨 같은 빛들이 반짝였고, 스튜어디스는 커피와 차 중에 무엇을 드시겠냐고 물었다. 나는 커피 한 잔과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에서 길어 올린 바이칼 물 한 잔을 마셨다. 이내 깜깜해진 창 밖으로 북두칠성이 보였다. 지도를 보니 바이칼 호수 아래 몽골 국경 부근을 지나고 있었다.
“승객님 여러분 이제 착륙 준비가 되었습니다. 다음 사항을 확인해 주십시오. 좌석 벨트를 안전하게 맸습니다. 좌석이 직립 상태이고 트레이 테이블을 넣은 상태입니다. 팔걸이가 내려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러시아어와 영어에 이은 한국어 안내 방송이었다. 전혀 웃긴 내용이 아닌데도 웃고 있는 나를 실없는 사람으로 봤을 것이다. 그나저나 추위를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벗어 두었던 옷을 다시 껴입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항공기는 곧 시베리아 땅에 무사히 착륙했다. 서울을 출발한지 4시간 30분 만이었다.
너무 걱정한 탓일까? 밖은 오히려 시원했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수송 버스에 올라 입국장으로 향했다. 작은 공항은 한 차례의 파도가 몰아친 듯 붐볐다. 심사 속도는 느리고, 또 오래 서 있다 보니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어차피 빨리 나가야 할 이유도 없어서 줄에서 빠져 나왔다. 그래서 다시 맨 마지막 차례가 되었다. 입국장의 불투명 유리창으로 마치 영사기의 떨림 같은 눈보라의 그림자가 빠르게 흘렀다. 그게 진짜 눈보라였는지, 아니면 비행기의 불빛이었는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한 시간이 넘는 입국 심사를 마치고 드디어 밖으로 나왔다. 영하 20도의 밤인데도 아직까지는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미 와 본 사람처럼 바로 왼쪽편에 보이는 국내선 청사를 보며 혼잣말을 했다.
“저기군!”
심카드를 살 수 있는 장소는 공항 내에서는 국내선 청사가 유일했다. 다시 또 짐수색과 몸수색을 거친 후, 왼쪽 구석을 향해 걸었다. 거기에 내가 선호하는 통신사인 MTC 부스가 있었다. 그런데 반가움도 잠시, 어쩐 일인지 모두 품절이었다. MTC 부스에 앉아 있던 검은 수트를 입은 청년─블라디미르라고 했다─은 부스를 나와 자물쇠를 채웠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맞은 편에 있는 메가폰 부스의 문을 열었다. 몇 년 전 라오스에서 어느 시골 초등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만난 한 여자 선생님이 오전에는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오후에는 동네 구멍가게의 주인이었다. 그때가 떠올라 조금 웃었다. 블라디미르는 바삐 번역기를 돌렸다.
“얼마 동안 쓸 거에요?”
“40일이요!”
영어는 거의 통하지 않았다. 그는 900루블(약 16,000원)이라는 비용을 말했다. 내가 알아간 비용은 그보다 훨씬 낮은 300루블 언저리였다. 그래서 열흘 정도는 얼마인지 다시 물으니 일주일 짜리가 450루블이었다. 14일 짜리는 700루블이라고 했다. 900루블이 비싸긴 해도 당장 택시도 타야하고, 곧 전화도 해야하니 그냥 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는 내 폰에 유심카드를 꽂고, 그 자리에서 노트북을 열어 등록을 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메가폰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했는데 언어는 아쉽게도 러시아어가 전부였다. 4G 인터넷 무제한에 러시아 국내 통화 2,000분. 여기서 통화할 일은 거의 없겠지만, 어찌 되었건 시베리아에 잘 도착했고 심카드 장착까지 무사히 마쳤으니 이제 남은 일은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가는 일이었다.
한 택시 기사가 미터로 가겠다며 말을 걸어왔다. 괜찮다는 정도로 의사를 표시하니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았다. 내가 겪어본 러시아 사람들은 환심을 사기 위해 놀라울 정도로 친절함을 표시하거나 애써 달콤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는데,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여도 속정은 깊은 사람들, 소위 말하는 ‘츤데레’ 같은 사람들이었다. 나는 막심─러시아 택시 어플리케이션─을 켜서 제냐가 사는 거리와 하우스 넘버를 넣었다. 곧 빨간색의 막심 택시가 도착했고, 내 짐을 본 운전수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짐부터 친절히 실었다.
“즈드라스부이쩨Здравствуйте. (안녕하세요.)”
“즈드라스부이쩨Здравствуйте. (안녕하세요.)”
택시에 타서야 제대로 인사를 했다. 그의 이름은 무하메드Mukhamedsadyk, 키르기스스탄Kyrgyzstan 출신으로 이르쿠츠크에는 일을 하러 왔다고 했다. 같은 이름을 가진 나의 무슬림 친구들이 생각났다. 우리는 계속 대화를 나누었는데, 주차 요금 정산소를 나갈 즈음 어딘가 모르게 분주한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동전을 찾는 건가 싶었는데, 정산소를 빠져 나온 후에도 계속 뭔가를 찾았다. 왼쪽 조수석 글로브 박스도 열었다가, 호주머니에 손도 넣었다가, 결국에는 양해를 구하더니 길가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핸드폰 플래쉬를 켜서 차량 앞쪽의 여기저기를 비추었다. 나는 택시를 타서 부터 짧은 영상을 찍고 있었는데 잠시 멈추고 플래쉬를 켜서 빛을 보탰다. 사실 무서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의 말투와 인상이 선한 쪽에 가까웠다.
“Oh, I found it. 오, 여기 있네요.”
그가 힘들게 찾은 것은 어떤 이의 지갑이었다. 그 안에는 95년생 한국인 남자의 주민등록증과 현금, 카드 등이 들어 있었는데, 손님으로 탄 사람이 놓고 내린 물건이었다. 그는 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려 주인을 찾아줄 수 있는지 물었고, 혹시나 주인이 나타나면 연락할 수 있도록 그의 핸드폰 번호도 알려주었다. 그리고 택시에서 내릴 때 자신의 차 넘버와 차량 사진도 담아 가도록 했다. 며칠 뒤, 잠시 짬을 내어 종종 방문하던 여행 카페에 이 이야기를 올렸다. 찾으면 기적, 못 찾아도 그만이지만,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잃어버린 사람은 얼마나 애가 탈 것이며, 그 마음을 아는 이는 이렇게 또 애를 쓰고 있고, 그리고 그 두 마음을 알게 된 이상 내 마음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