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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Mayfeng Nov 16. 2019

오랫동안 ‘아름답고 소박하게’ 여행하기 위한 준비들

38박 39일의 러시아 횡단 여행을 준비하며 






오랫동안 ‘아름답고 소박하게’ 여행하기 위한 준비들




비교적 시간 사용이 자유로운 나는 한번 나가면 오래 머무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여행 횟수는 1년에 한두 번 정도로 많은 편은 아니지만, 짧게는 보름에서 한 달 정도, 길게는 그 이상의 시간을 오롯이 '창작을 위한’ 여행에 쏟는다. 물론 아주 소박한 방식으로! 그래도 이왕이면 아름다운 것이 좋고, 건강한 것이 좋다. 긴 여행은 무엇보다도 예산 및 시간 계획을 잘 짜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정보를 찾고, 비교하고, 걸러내는, 어찌보면 번거로운 과정들을 거쳐야 한다. 내게는 이 과정들이 여행하는 것 이상의 즐거움을 준다. 준비는 곧 몰입이고, 몰입은 곧 크고 작은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이다. 나는 여행이 시작될 때마다 일종의 의식처럼 달력 모양의 계획표를 만드는데, 계획대로 하기 위해서 계획표를 만든다기 보다는 전체 여정이 한 눈에 보이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든든함이 생긴다. 대신, 전체적인 틀은 짜 두되, 너무 세세한 스케쥴을 만들지는 않는다. 꼭 필요한 사항들, 예를 들어 예약한 교통편의 출도착시간, 예약한 숙소 정보, 특정 날짜의 공연이나 전시 등의 이벤트 정도만 기록해 두고, 많은 부분은 여백으로 둔다. 계획은 언제나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는 여지를 두는 것이다. 여행이 시작되면 그날 그날 컨디션에 따라서 자유롭게 움직인다. 하루에 딱 한 곳 정도만 갈 마음으로 길을 나서고, 그 다음은 즉흥에 맡긴다. 







세 장의 항공권 이번 여행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야 했기 때문에  서로 다른 도시에서의 인아웃이 필요했다. 또 다시 블라디보스톡으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아서 이번에는 다른 길인, 모스크바로 들어가서 블라디보스톡으로 나오는 일정을 택했다. 마침 K항공사에 약 25,000점 정도의 마일리지가 쌓여 있었는데, 그걸로 블라디보스톡에서 들어오는 인천행 티켓을 살 수 있었다. 세금 90불은 별도였고, 귀국 날짜는 엄마 생신 전날로 맞췄다. 다음은 인천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항공권 찾기! 스카이스캐너에서 검색하니 대부분 이르쿠츠크 경유가 떴다. 공항 대기시간만 무려 13시간이어서 그렇다면 아예 이르쿠츠크에서 며칠 머물고 가는 건 어떨까 싶었다. 다구간 검색으로 바꿔 인천-이르쿠츠크, 이르쿠츠크-모스크바로 넣으니 가격이 같았다. 나중에 횡단열차에서 이르쿠츠크에 내리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있고, 또 마침 이르쿠츠크에 알아볼 일도 있어서 이렇게 두 구간을 예약했다. 만일에 대비해 3만원 가량을 더 내고 두 구간의 체크인 수화물까지 추가해 두었다. 블라디보스톡-인천 보너스 항공권 세금 97,000원 + 인천-이르쿠츠크, 이르쿠츠크-모스크바 두 구간 항공권 (수화물 추가 포함) 33만원 = 세 구간 항공료 약 427,000원  




여섯 장의 열차 티켓 항공권 예약보다 더 심혈을 기울였던 일은 횡단열차 티켓을 예약하는 일이었다. 러시아 안에는 총 11개의 시간대가 있는데,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가는 동안에는 8개의 시간대를 지난다. 다행히 시간 계산이 번거롭지 않도록 모스크바 시간과 도시별 로컬 시간이 함께 표기되어 있었다. 예전에는 모스크바 시간만 표기되어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2주 잡고 계획을 짰는데, 그러다보니 횡단 열차의 일정이 너무 짧아졌다. 그렇게 되면 다른 도시를 들를 만한 충분한 시간이 나오지 않았고, 하루를 줄여보고, 또 이틀을 줄여 보며 루트를 다듬었다. 나는 횡단열차의 모든 구간을 3등석인 플라츠카르타platzkart로 예약을 했고, 좌석은 중간 정도 쯤에서 남아 있는 좌석으로 골랐다. 맨 마지막 구간만 새로운 경험을 위해 뒤쪽의 복도형 좌석을 예매했다. 사모바르─물 끓이는 러시아식 주전자─와 가까운 앞쪽이나 화장실과 가까운 뒤쪽은 피해 예약을 했다. 이미 다녀온 여행자들의 사진을 통해 정방향임을 예측하고 예약했지만, 가끔 역방향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침대 형식의 좌석이기 때문에 역방향이라도 머리가 어지럽다거나 속이 울렁거린다거나 하는 문제는 전혀 없었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구간은 고속열차인 삽산Сапсан 대신 넵스키 익스프레스Невский экспресс를 선택했다. 넵스키 익스프레스라는 이름이 더 마음에 들었는데, 가격 또한 저렴했다. 삽산은 스탠다드 좌석이 5~6만원 정도이고, 소요 시간은 약 3시간 반에서 4시간 정도였는데, 넵스키 익스프레스는 소요 시간은 삽산과 비슷하나 가격은 약 3만원 정도였다. 이렇게 총 여섯 구간의 기차를 예약했으며, 아에로 익스프레스Аэроэкспресс─모스크바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직통 열차─는 인터넷 예매를 통해 450루블(약 8,500원)에 구입했다. 참고로 여기에 내가 이용했던 좌석 번호를 적어둔다. 내가 탄 기차는 서에서 동으로 달려 가므로, 혹시라도 동에서 서로 가는 기차를 탔을 경우에는 좌석들의 방향이 반대로 바뀐다는 것만 알아두면 된다. 객차와 상관없이 좌석 위치와 번호는 동일하다. 



예약한 횡단열차 구간별 가격, 소요시간, 좌석번호 및 방향 


모스크바 - 상트페테르부르크 (6인실 좌석형태) : 1,625루블 (4시간 5분) / 9번 좌석 정방향

상트페테르부르크 - 카잔 (3등석 침대차) : 3,343루블 (22시간 28분) / 9번 좌석 역방향

카잔 - 예카테린부르크 (3등석 침대차) : 1,421루블 (14시간 14분) / 29번 좌석 역방향

예카테린부르크 - 노보시비르스크 (3등석 침대차) : 2,396루블 (21시간 36분) / 9번 좌석 정방향

노보시비르스크 - 비로비잔 (3등석 침대차) : 6,010루블 (93시간 4분) / 17번 좌석 정방향

비로비잔 - 블라디보스톡 (3등석 침대차) : 1,685루블 (14시간 20분) / 51번 복도쪽 좌석: 머리를 두는 위치에 따라 방향이 바뀜


=> 여섯 구간 기차비용 약 275,000원 








서른 여덟 번의 밤 나는 환경, 즉 공간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일상을 집 겸 작업실에서 보내다 보니 내가 머무는 공간은 최소한 이런 것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창을 통해 푸른 것들이 보여야 하고, 조명은 포근한 노란빛이어야 하고, 초록의 것들이 많아서 삭막하지 않아야 하고…… 등등등. 그것은 모두 창작욕과 이어져 있다. 여행에서의 숙소도 마찬가지다. 내게 숙소라는 곳은 잠을 자는 곳이기도 하지만 창작욕을 불러일으키는 장소여야만 한다. 내가  한 달 이상 러시아 여행을 고려하게 된 것은 비교적 저렴한 물가에 있었지만, 단지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만 선택한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매력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다섯 군데 호스텔에서 16박을, 카우치 서핑에서 14박을 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기차에서 묵었다. 묵었던 숙소들 중에는 디자인 호텔 못지 않은 멋진 호스텔도 있었고, 예술가들의 터치가 느껴지는 아름다운 호스텔도 있었으며, 멋진 전망을 가진 곳, 조식이 포함된 곳도 있었다. 그럼에도 하루 평균 숙박비가 6,000원도 안 됐다. 조금만 찾아보면 꼭 비싼 돈을 들이지 않아도 누릴 수 있는 호사들이 넘친다. 카우치 서핑이라는 것도 처음에는 편견이 있었다. '혹시 위험하지 않을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지?' 모두 기우였음을 5년 전에 알았다. 코펜하겐에서는 토목 기사였던 A의 집에서, 헬싱키에서는 스웨덴 출신의 피아니스트였던 M과 러시아인 여자친구가 함께 사는 집에서 지냈는데, 그 두 번 모두, 돈으로 살 수 없는 따뜻하고 귀한 경험을 얻었다. 특히 음악 밖에 모르는 예술가인 M은 자신이 다니는 시벨리우스 아카데미의 공연장을 빌려서 친한 친구 몇 명과 우리를 초대해 연주회를 열어 주었다. 그 친구가 연주를 준비하는 동안 피아노 앞에 앉은 그의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그 친구는 사진이 마음에 드는지 지금까지도 프로필로 사용하고 있다. 새로운 옵션의 등장은 내 여행 방식을 확장시켰다. 때로는 완전한 고립이나 잘 차려진 조식이 그리워서 호텔을 이용하기도 하겠지만, 꼭 나만의 공간을 가지겠다는 생각은 사라졌다. 처음─북유럽─은 숙박비를 아껴볼 생각에서 시작했지만, 러시아는 숙박비를 떠나 그 때의 여운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이 아니라, 살아가는 얘기들을 나누고, 생각들을 교환하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제3세계를 다니면서 사진을 찍을 때도 무언가 특별한 것이 아닌 일상의 것들에 눈길이 갔는데 카메라를 들지 않을 때도 나의 감각은 그런 쪽으로 열리는 것 같다. 어떤 특종이나 특별한 사람들의 성공담이 아닌, 친구가 친구에게 들려주는 시시콜콜한 이야기 같은 것. 그러나 그것들은 서로 다른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흥미롭게 들린다. 그리고 별 것 아닌 이야기 안에도 추운 겨울 드문 드문 비추는 햇살 같은 감동이 있다.


=> 호스텔 17박 숙박 비용 약 91,000원 (부킹닷컴 이용, 리워드로 돌려 받으니 하루 평균 5,400원 꼴) 

*이른 아침 도착한 날 빠른 체크인을 위해 일부러 하루 더 예약해서 총 17박이 됨.










39일간의 러시아 횡단 루트



발휘할 수 있는 온갖 능력을 동원하여 39일의 여정을 탄생시켰다. 도시별 숙박비와 체류비 계산, 구간별 교통비, 좋은 좌석과 위험하지 않은 시간대에 도착하는 기차의 출도착 시간 및 도시 파악, 일정은 최대한 길게, 예산은 초과되지 않게,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많다보니 일정을 짜는 일이 마치 스도쿠 게임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의 여정은 다음과 같다. 





이르쿠츠크에서 5박 6일, 모스크바에서 6박 7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10박 11일을 보내고, 그 이후에는 횡단 열차를 타고 2주에 걸쳐 동쪽의 블라디보스톡까지 이동하는 루트다. 그렇다고 기차 안에서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몇 개의 도시들에 내려서 하루나 이틀을 보내는 일정이다. 문화가 궁금하다거나, 이름이 맘에 든다거나, 이쯤에서는 재정비의 시간을 갖고 싶다거나,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궁금하다거나 하는 곳들을 지도를 보면서 찍었다. 카잔, 예카테린부르크, 노보시비르크스, 비로비잔이 그 도시들이다. 최첨단 도시처럼 보여 너무 외로울 것 같은 곳이라든지, 도착 시간이 두세 시 경의 새벽인 곳들은 제외시켰다. 



이번 여정 중 가장 긴 이동은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비로비잔 사이의 구간인데 이동 시간만 정확하게 계산하면 3일하고 21시간 4분이지만, 실제로는 기차 안에서 4박을 하게 되고 총 5일이 걸린다. 



러시아의 전체 면적은 약 1,712만km2으로 대한민국의 170배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나라답게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쉬지 않고 달려도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기차 종류에 따라 약간의 시간 차이는 있지만, 밤 11시 45분 출발하는 002번 로씨야 열차를 타면 6일 22분이, 새벽 12시 35분 출발하는 100번 기차를 타면 6일 22시간 28분이 걸린다. 반대의 여정도 비슷한데, 오후 7시 10분 출발하는 001 로씨야 열차를 타면 6일 2시간 3분, 새벽 12시 51분 출발하는 99번 열차를 타면, 6일 17시간 22분이 걸린다.



어떤 이들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 체험 만을 목적으로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혹은 그 반대의 여정으로 이동만 한다고도 하는데, 아무리 기차여행을 좋아해도 일주일간 기차에서만 머물고 싶지는 않았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음식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면 조금 아니 많이 억울할 것 같으니까. 맛있는 음식은 조금씩 천천히 아껴 먹고 싶은 법이다.











레기스트라치야



러시아를 두 번 여행하면서도 왜 '레기스트라치야Регестратия’를 몰랐을까? 세 번째 여행을 앞두고서야 ‘아, 그 때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여권에 끼워 주던 종이가 그거였군!’하며 생각이 났다. 러시아를 여행하는 외국인 여행자라면 입국한지 7일 이내에는 거주등록을 해야한다. 쉽게 말해 러시아 이민국에 자신의 러시아 내 체류지를 신고하는 것인데, 신고 방법이 따로 있지는 않다. 신고의 의무는 호스트 측, 즉 숙소 측에 있어서 호텔에 묵으면 자동으로 거주등록이 된다. 문제는 호텔이 아닌 곳에 묵는 경우다. 나는 호스텔과 개인의 집에 묵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미리 메일을 보내 거주등록을 해주는지 물었다. 답변은 긍정적이었는데 대부분 무료였으나 100~200루블 정도의 수수료를 받는 곳도 있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카우치 서핑과 열차 이동 중의 거주등록이었다. 여행 초반에는 몇 군데 큰 도시들에서 일주일 이상 머물 예정이었으므로 거주등록을 확실히 하기 위해 호스텔 숙박을 길게 잡았다. 그리고 차량이나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여행할 때는 다행히 거주등록 기한이 도시 도착일로부터 기산이 되어서, 각 도시별 체류기간이 7일 미만이라면 거주등록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만, 검문을 대비하여 도시마다 거주등록을 권유하고 있다고 한다. 만약 불심검문에 걸렸을 때 자신의 체류를 증명할 수 없다면 러시아 국내법 위반으로 최대 7천 루블(모스크바 지역)의 벌금을 내야 할 수도 있다. 나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여 체류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들, 그러니까 기차나 비행기의 이티켓, 숙소 예약증, 숙소에서 받은 거주등록증 등을 잘 챙겨서 가지고 다녔다. 그러나 이런 노고에도 불구하고 거주등록증을 보자는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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