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시간을 견디는 법
가을이 지나고 찬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토끼야 토끼야’하고 시작하는 동요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된다. 추운 겨울이 되어도 먹이 걱정하나 없는 토끼는 얼마나 좋을까? 지난 몇 년간 붙잡고 있던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 버리고 나니 무언가 텅 비어버린 기분이다. 여름이라면 무엇이라도 배우기 위해 문 밖을 나서겠지만, 지금은 오직 두 가지, 여행하거나 죽은 듯 지내거나. 어느 해 여름에는 이러한 이유로 오페라 수업을 들었고, 또 어느 해 여름에는 힌디어를, 또 어느 해 여름에는 베트남어를 배웠다. 지금은 떠나는 일 말고는 하고 싶은 것도 생각나는 것도 없다. 어디든 가고 싶다.
떠날 운명이었을까? 뉴욕의 A 매거진에서 늦지 않게 작업비를 보내왔다. 이어서 국내의 한 예술 애호가로부터 ‘몬순’ 작품을 가장 큰 사이즈로 사고 싶다는 메일도 받았다. 이럴 때는 작업을 해야 한다. 한동안 잔고 걱정은 잊고 창작에 몰입할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적당한 혹사를 통해 한번도 맛보지 못한 감정과 온도, 풍경을 마주치는 일이 간절하다.
2018년 겨울, 해방촌 작업실에서
평생 동안 내가 간직했던 가장 큰 욕망들 가운데 하나는 여행이어서 — 미지의 나라들을 보고 만지며, 미지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지구를 돌면서 새로운 땅과 바다의 사람들을 보고 굶주린 듯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든 사물을 보고, 천천히 오랫동안 시선을 던진 다음에 눈을 감고는 그 풍요함이 저마다 조용히, 아니면 태풍처럼 내 마음속에서 침전하다가 마침내는 오랜 세월에 걸쳐서 고운체로 걸러지게 하고, 모든 기쁨과 슬픔으로부터 본체를 짜내고 싶었다. 이런 마음의 연금술은 모든 사람이 누릴 자격이 있는 위대한 기쁨이라고 나는 믿었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영혼의 자서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