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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Mayfeng Nov 16. 2019

따뜻한 겨울의 밤






따뜻한 겨울의 




“벌써 모스크바에 온 거에요?” 

“네, 어제 왔어요. 그런데 이 새벽에 웬일로 깨어 있어요?” 

“여행 갔다가 어제 왔어요. 거긴 아직 이른 시간이거든요.”



A의 메시지였다. 그는 20일간의 브라질 여행을 마치고 막 돌아왔다고 했다. 알고보니 같은 날에 모스크바에 왔는데, 그는 집에 온 것이고, 나는 여행을 온 것이었다. 우리는 카우치 서핑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활동을 하려면 프로필을 적는 것은 필수였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부터 시작해서 좋아하는 영화와 책, 음악은 무엇이며, 어떤 나라들을 여행했고, 무엇을 가르칠 수 있으며, 무엇을 나눌 수 있는지, 살면서 했던 일 중에 가장 멋진 일은 무엇이었는지 등의 질문들에 대답을 해야했다. 사실 대충 적어도 뭐라할 이는 없지만 그래도 호스트든 게스트든 정성껏 써놓은 사람에게 신뢰가 간다. 그러니 정성껏 내 이야기를 적었다. 내 일정이 공개된 후에는 일일이 답을 할 수도 없을만큼 많은 메시지가 쌓였다. 한번은 이런 메시지도 받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사는 뮤지션이 자신이 갖고 싶어하는 기타가 서울의 한 악기점에 있다며 내게 알아봐 줄 수 있는지 물었다. 민트색의 전자 기타였는데 한국에서 주문 제조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제품이었다. 나는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어서 다음 날 아침 낙원 상가의 한 악기점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잠정적으로 판매 중지라는 아쉬운 답변을 들었고 그에게 그대로 전했다. 그러면 언제쯤 살 수 있는지 되물었고, 나는 다시 전화를 걸어 재입고 계획이 있는지를 물은 다음 그에게 또 답장을 했다. 그는 고마움을 전하겠다며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오면 만나기를 원했다. 물론 만날 수는 있지만, 도움을 주었다고 해서 그걸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주는 것은 주는 것으로 기쁜 일이고 그걸로 끝이어야 마음이 편하다. 나는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는 법정 스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 여행을 하면 많은 만남이 생기는데, 스쳐가는 이들과 모두 인연이라는 것을 맺을 수는 없다. 함께 일일투어를 다녀왔다거나, 같은 호스텔에서 얼굴을 마주 보고 아침을 먹은 사이라 할지라도 애써 그들의 SNS 주소를 묻고 마치 오랜 친구인냥 그들의 삶에 개입하는 일은 썩 달갑지만은 않다. 인연이든 뭐든 억지로 만들거나 부자연스러운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냥 물 흐르듯 흐르다가 자연스럽게 만나지면 인연이고, 인연이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쓰일 것이며, 마음이 쓰인다면 그 인연은 어떻게든 지속이 될 거라고 믿는다. 미국인 작가 닐 도날드 월쉬Neale Donald Walsch는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의 삶에 들어오는 모든 이들에게 선물이 되라, 그리고 당신이 들어간 모든 이들의 삶에도 선물이 되라, 선물이 될 수 없거든 함부로 남의 삶에 들어가지 마라! 그래서 항상 모든 만남에 앞서 내가 이 사람의 삶에 진정으로 선물이 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어쨌든 A도 그들처럼 메시지를 보낸 사람들 중에 하나였고, 호스트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을 하라고 했었다. 그는 비즈니스 변호사로 모스크바 남쪽에 살고 있었는데, 모스크바 이후 나의 동선은 상트페테르부르크행이어서, 아무래도 이동이 쉬우려면 상트페테르부르크행 열차가 출발하는 레닌그라드역 쪽으로 호스트를 구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레닌그라드역은 모스크바 북쪽에 있었다. 제안은 고마웠지만 그 후에 나는 북동쪽에 사는 호스트를 구했고, 자연스레 연락할 일도 없어졌다. 그런데 내가 모스크바에 도착한 다음 날 그에게서 메시지가 왔고, 마침 시간이 맞아서 밥이라도 한끼 하기로 된 것이었다. 



그는 내가 채식주의자인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디에 가고 싶은지 물었다. 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며, 뭐든 다 잘 먹는 편이고,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이 동네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메고바리Megobari라는 음식점에 가보자며 링크를 주었는데, 마로세이카 15번지에 있는 와인바를 겸한 조지아 음식점이었다. 나는 호스텔에 누워 있다가 조금 일찍 나와서 걸었다. 바깥은 영하 17도로 여전히 추운 밤이었다. 그는 택시 안에서 차가 밀려 조금 늦을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냈고, 나는 늦어도 좋으니 빙판길을 조심하라고 답을 보냈다. 천천히 걸었는데도 나는 이미 식당 앞이었다. 음식점 옆의 골목에 서서 하늘도 봤다가, 지나가는 사람들도 봤다가 하면서 기다렸다. 바람이 꽤 부는지, 어닝awning 위에 쌓였던 눈들이 여기저기로 흩날렸다. 견딜 만큼 견디다가 안으로 들어갔는데 곧 누군가 들어와 매트에 신발을 툭툭 털길래 보니 A였다.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그의 이름으로 예약된 안쪽의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조명은 약간 매드포갈릭처럼로 어두웠고, 식당 안은 조지아 와인으로 가득했다. 



조지아를 가 본 적은 없지만 음식은 궁금했었다. 그래서 블라디보스톡 여행 중에 가볼까도 했는데 사실 그런 곳은 친구들끼리 몰려 가서 이것저것 시켜 먹어야 재미있지, 혼자서 갈 만한 곳은 아니었다. 그래서 뭐, 언젠가 조지아에 가게 되면 먹게 되겠지 하는 느슨한 마음 정도만 갖고 있었다. 사실 나는 메뉴판을 봐도 모르고 어차피 선택에도 약해서 메뉴 선택은 전적으로 그에게 넘겼다. 그도 이 식당은 처음이라고 했지만, 그래도 나보다는 훨씬 나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메뉴를 거의 탐독하다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주문을 했다. 토마토와 오이, 양파 등이 들어간 조지아식 샐러드와 닭고기가 든 차가운 스튜 사치비Satsivi, 치즈가 듬뿍 든 조지아의 국민 음식 하차뿌리Khachapur, 그리고 조지아식 만두인 힝칼리Khinkali, 이렇게 네 종류의 음식과 조지아 와인 두 잔을 시켰다. 음식들이 등장하자 하나 같이 아름다운 비쥬얼에 감탄사가 나왔다. 프랑스 음식 같은 그런 화려함이 아닌, 따뜻한 느낌이 나는 음식들이었다. 특히 음식이 담겨 나오는 바닥이 평평하고 가장자리가 둥근 나무 그릇이 예뻤다. 맛도 훌륭했는데, 그래서인지 식당은 빈 자리가 없었다. 호두를 갈아 넣은 사치비라는 음식은 너무나도 고소했고, 하차뿌리는 조금 짜긴 했지만 치즈를 좋아하는 내 취향에 딱이었다. 샐러드와 사치비, 하차뿌리까지 먹고 나니 이미 배가 불렀는데 또 다른 메뉴가 등장했다. 힝칼리였다. A는 양고기로, 나는 소고기를 시켰는데, 내 주먹보다 훨씬 큰 것으로 한 사람 앞에 세 개씩 놓였다. 물론 맛은 있었지만 하나씩 맛 본 후에는 도저히 배가 불러서 손을 댈 수 없었다. 부랴트식 만두 포즈와 그 크기와 맛이 거의 비슷했다. 남기는 것이 싫었는데 다행히 그가 나를 배려해 다 먹었다. 조지아 음식 입문은 성공적이었고,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더 조지아 음식을 먹을 기회들이 생겼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조금 걷기로 했다. 추운 날씨지만, 배도 부르고, 주변 구경도 하고 싶었다. 커다란 공원이 나왔다. 네온 불빛이 환하게 켜진 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바로 곁에는 ТЕАТР떼아뜨르라고 적힌 하얀 건물이 보였는데, 소브레메닉 극장Sovremennik Theatre이라는 곳이었다. 30분 쯤 걸었을 때, 차이나타운에서나 볼 법한 중국풍의 3층짜리 건물이 보였다. 그곳은 모스크바의 랜드마크 중의 하나로 1890년대 지어진 차를 파는 티 하우스였다. 주인은 세르게이 페를로프Sergey Perlov라는 차 상인이었다. 소비에트 시절에는 위층은 공동 아파트─한 가족당 방 하나로, 부엌과 화장실은 공동 사용─로, 아래층은 지금까지도 티 하우스로 이용되고 있었다.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은 상태였는데, 불 켜진 가게는 아이러니하게도 또 다른 조지아 음식점이었다. 춥기도 했고, 다른 곳을 고르기엔 시간도 늦어서 그냥 들어갔다. 



여긴 메고바리와 달리 더 넓고 밝은 분위기였다. 창가의 소파에 자리에 앉으니 웨이터가 메뉴판을 가져왔다. 우리는 더 먹을 거냐며 농담을 주고 받았다. 레드 와인 두 잔을 시켰는데 빈티지하고 두툼한 크리스탈 잔에 담겨져 나왔다. 주제는 문학으로 넘어 갔다. 그는 시 하나를 읊어주겠다고 했다. 시라니!




“잠깐!”




나는 녹음기를 켰다. 중간에 웨이터가 와서 잠시 끊겼지만, 그의 우렁찬 목소리로 듣는 시는 당장 그 뜻을 몰라도 충분했다. 그는 학교 다닐 때 외운 거라 좀 틀릴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내게 시를 읊어준 사람은 엄마 외엔 그가 처음이었다. 그가 읊은 것은 알렉산드르 푸쉬킨Александр Сергеевич Пушкин(1799-1837)의 시, <겨울 저녁Зимний вечер(지미니 베체르)>이었다. 나는 여행 내내 시의 내용이 궁금했고, 혹시나 번역된 시가 있을까 싶어 틈틈이 검색을 했는데 안 보였다. 아쉬운 마음에 원문을 찾아 구글 번역기에서 영어와 한국어로 각각 바꾸고 그 분위기만 알아보는 정도에서 그쳤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면 반드시 번역본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여행 후 거의 반 년이 지나 <겨울 밤>으로 번역된 시가 있다는 걸 알았다. 번역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백석 시인이었다. 좋아하는 시인이 번역한 시라니! 가슴이 떨렸다. 당장 도서관에 전화를 걸어 문학실 자료 대출이 지금도 가능한지 물었다. 그때가 오후 7시 경이었는데, 하절기 평일 대출은 저녁 8시까지였고, 주말에는 오후 5시까지였다. 하필이면 그날이 일요일이었고, 또 다음날은 월요일 휴관이라 이틀을 더 기다렸다. 화요일이 되자마자 남산도서관으로 갔다. 3층에 있는 문학실에서 청구기호 811.6-ㅅ598ㅂ-1을 찾았다. 잿빛의 양장본은 2013년 1월에 흰당나귀 출판사에서 백석 탄생 100주년 기념판으로 나온 책이었다. 엮은 이는 송준, 제목은 『백석 번역시 전집 1』이었는데 무려 863페이지나 되어 두꺼웠다. 도서관 식당에 앉아 돈까스를 먹으며 펼쳤다가 얼른 다시 덮었다. 조금이라도 더 설레는 맘을 간직하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와 목차부터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안에는 두 개의 번역본이 있었는데 하나는 1948년 8월에 엮은 『뿌쉬낀 시집』 속의 번역시였고, 하나는 1955년 3월에 엮은 『뿌슈낀 선집』 속의 번역시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슬퍼하거나 노여워 하지 말라 /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 즐거운 날이 오리니’하는 푸쉬킨의 대표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Если жизнь тебя обманет> 또한 백석 시인의 번역 버전이었다. 창작이 쉽지 않던 북한 체제에서 백석이 선택했던 작업이 번역이었고, 그에게는 이 작업이 또 다른 창작인 셈이었다. 푸쉬킨 시 외에도 그가 번역한 러시아 시들은 정말 많았는데 그의 필명도 박일파, 김춘원, 리세희 등으로 몇 개가 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공교롭게도 수많은 번역시들 중에 <겨울 밤>은 백석의 시풍이 가장 잘 드러난 시라고 적혀 있었다. 비슷하지만 다른 두 번역시의 마지막 연은 이렇다. 








*

눈포래는 소용도리쳐 / 연기 같이 하늘을 가리며 /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고, / 아이들처럼 울음을 우노나. / 마시자, 이내 청춘의 / 알뜰 살뜰한 다정한 친구야, / 홧술을 마시자, 잔은 어데냐? / 마음은 한결 흥겨워질라.




*

눈보라 뭉게뭉게 소용돌리며 / 모진 바람 눈안개로 하늘 가린다. / 짐승인 듯 볼을 털고 / 아이처럼 울음 우노나 / 마시자 이 내 청춘의 / 정답고 살틀한 벗아 / 홧술을 마시자, 잔은 어디? / 마음은 한결 흥겨워질라.




『백석 번역시 전집 1』에서 부분 발췌 









우리는 와인으로 시작해 타이가 허브차로 마무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걸어서 호스텔 근처까지 왔는데 청소부 아주머니가 A에게 다가오더니 뭐라고 얘기를 했다. 나는 무슨 일인지 몰라 옆에서 보고만 있었다. 



“무슨 일이야?”

“맥주를 좀 사달라고 하셔.”

“일하는 중인데 왜 맥주를?”



나는 그 상황이 조금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그녀의 얘기가 너무 와 닿았기 때문에 거절할 수 없다고 했다. 다시 들어보니 이해가 갔다. 우리는 마로세이카 거리에서 불 켜진 가게를 찾았다. 호스텔 반대편 거리에 커피 하우즈Кофе Хауз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있는 커피 숍 체인라는 커피 숍이 보였다. 



“뭘 사는 게 좋을까?”

“따뜻한 것도 사 드리면 좋겠어.”



따뜻한 카푸치노 한 잔과 크루아상 하나, 그리고 생맥주 한 잔을 포장했다. 쏟아지지 않게 들고 빠른 걸음으로 걷는데 아주머니는 이미 저 멀리까지 가서 눈을 쓸고 계셨다. 



“여기 청소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셔.”



그랬다. 늦은 밤인데다 눈은 치워야 하고 또 청소 복장으로 어디에 들어갈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추운 날씨에 고된 일을 하시던 아주머니는 너무 고마워하며 손에 꼭 쥐고 있던 100루블짜리 지폐를 내미셨다. A는 한사코 사양하며 받지 않았지만 그 장면을 눈 앞에서 보고 있자니 가슴이 많이 뭉클했다. 사진 한 장 남길 수 없었지만, 어떤 밤보다도 따뜻한 겨울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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