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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Mayfeng Nov 16. 2019

눈 아픈 사진전




 아픈 사진전




나는 다시 고스티니 드보르Gostiny Dvor를 향해 걸었다. 저녁에는 키타이 고로드를 떠날 계획이었고, 그래서 못 본 사진전이나 혹여 시간이 남으면 푸쉬킨 뮤지엄 정도를 돌아볼까 싶었다. 하늘은 비 갠 다음 날처럼 새파랗고 맑았다. 전시장은 일린카 거리 쪽의 고스티니 드보르 5번 문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나무문 위로 적힌 ‘넘버 파이브 브홋 No.5 ВХОД’이라는 글자는 단지 '5번 입구’라는 뜻인데도 멋진 카페의 간판처럼 보였다. 2층으로 올라가자, 전날 보았던 크리미한 민트색 건물과 일린카 거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목욕이라도 한 것처럼 말갛게 빛이 나고 있었다. 건물의 그림자는 대각선 방향의 비스킷 색깔 건물에 반쯤 걸쳐 있었고, 눈이 녹은 바닥에는 주변의 건물들이 은은하게 비치고 있었다. 걸어갈 회랑으로는 고요하고 맑은 빛이 떨어지고 있었는데 그 시간 그 고요함을 누리는 이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멋진 곳이라면 어딜 가나 북적거리는 서울과는 달리 이리 아름다운 곳도 홀로 만끽할 수 있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런 곳은 누가 설계했을까?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설계한 건축물을 이미 본 적이 있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 궁전의 라파엘 회랑이 이 건축가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성 이삭 광장에 있던 그리스 신전 같던 하얀색 건물도.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대다수의 건축물을 설계한 사람이었다. 이름은 쟈코모 콰렝기Giacomo Quarenghi(1744-1817), 신고전주의 건축가였다.








포스터가 붙어 있던 273번방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2시 7분이었다. 캬라멜 색의 나무문은 70도 각도로 살짝 열려 있었는데, 안에는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마도 한 분은 이 전시의 기획자 같았다. 베이지색 면바지에 짙은 와인색 니트, 네이비 컬러의 스트라이프 셔츠를 입고 계셨는데, 왠지 프랑스 작가나 철학자의 모습이 스쳤다. 그의 머리카락은 소설가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아일랜드 출신의 프랑스 소설가)처럼 쭉쭉 뻗은 모양이었는데 색깔 마저 비슷했다. 성함을 여쭙자 드미트리라고 하셨다. 





“어떻게 오셨소?”

“사진전을 보러 왔습니다.”

“어찌 아시고?”

“어제 왔다가 포스터만 보고 그냥 갔습니다.”

“코트는 여기 거시고…… 표는 샀소?”

“표는 어디서 살 수 있습니까?”

“이쪽으로."








그는 나를 옆방으로 안내했다. 거기에는 밤색의 스카프를 두른 나이가 지긋한 우아한 여성분이 책상을 놓고 앉아 계셨다. 나는 티켓 한 장을 사고 카드를 내밀었다. 500루블이 결제 되었다. 다시 전시실로 왔는데, 계산이 잘못되었다며 250루블을 지폐로 거슬러 주셨다. 티켓은 반짝이는 브론즈 컬러에 МАНЕЖ마네지(승마연습장)라고 적혀 있었다. 모스크바 국립 문화 전시 협회 같은 곳이었다. 전시실 한쪽에는 세계 지도와 함께 위치별로 찍힌 작은 사진들이 붙어 있고, 위층과 이어지는 계단에도 러시아어와 영어로 작가들의 소개가 되어 있었다. 본 전시는 커튼이 드리워진 안쪽의 작은 방으로 들어가야 볼 수 있었는데 전시실 가장자리로는 열 대가 넘는 스테레오스코프Stereoscope(입체경/쌍안사진경)가 설치되어 있었다. 스테레오스코프는 1838년 영국의 찰스 윗스톤Charles Wheatstone(1802-1875) 경이 처음 만든 것이었다. 홀 중앙에는 유리 케이스 안에 카메라와 인화된 사진들이 놓여 있었다. 한쪽 눈을 감고 스테레오스코프 안을 들여다보니 비슷해 보이는 사진 두 장이 보였는데, 각도가 살짝 다르거나 거리가 미세하게 달랐다. 이번에는 동시에 두 눈을 갖다 대니 사진 속의 옛날 사람들이 튀어나올 것처럼 보였다. 평범한 두 장의 사진이 입체경 하나에 3D 이미지로 보이는 것이었다. 전시장의 모든 스테레오스코프는 1900년에서 1914년 사이의 오리지널 쌍안 렌즈였다. 그 시간에 관람객은 오직 나 뿐이어서 드미트리씨는 더욱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 주셨다. 물론 러시아어가 아닌 영어여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사진을 찍은 사람 중에는 그 분의 가족도 계셨다. 전시장에서 만난 이름들은 세르게이 첼노코프Sergey Chelnokov(1861-1924), 알렉산더 카르진킨Alexander Karzinkin(1863-1939), 페트르 포츠니코프Petr Postnikov(1862-1936), 니콜라이 실로프Nikolai Shilov(1872-1930) 등이었는데 그들의 직업은 사진가가 아니라 각각 산업가, 자선가, 의사, 화학전문가였다. 







이 전시의 대표 작가는 세르게이 첼노코프Сергей Челноков/Sergey Chelnokov(1861-1924)라는 아마추어 사진가였다. 그는 1880년대에서 1917년까지 1,500장이 넘는 흑백과 컬러 사진을 남겼는데, 그의 가족은 모스크바의 유명 미술관 트레티야코프 갤러리State Tretyakov Gallery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그는 모스크바 사람들의 일상을 비롯해 1905년 러시아 혁명과 1908년 모스크바 홍수 등의 역사적인 사건들, 그 밖에도 20세기 초의 베니스, 전쟁 시기의 여순항Port-Artur, 그리고 이탈리아, 그리스 등의 여행사진들까지 많은 다큐멘터리 기록물을 남긴 인물이었다. 덴마크에서 이민자로 죽는 바람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또 다른 방으로 안내되었는데, 그 방 안에는 영상을 볼 수 있도록 스크린과 빔프로젝터, 10개 정도의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드미트리씨는 잠시 기다리라며 영상을 찾으셨는데, 잘 안 찾아지는 모양인지 모든 폴더를 눌러 확인을 하셨다. 아마도 그날 전시의 첫 관람자가 나인 듯 보였다. 나는 유일한 시청자가 되어 입체 안경을 끼고 어두운 방에 홀로 앉았다. 그런데 입체 영상은 사진을 볼 때와는 달리 눈이 너무 아팠다. 게다가 길이도 길어서 안경을 뺐다가 썼다가 했다. 그래도 흥미로운 사진들이 많아서 끝까지 보고 나왔는데, 2부가 있다는 말에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영상을 다 보고 나오니 어느새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밖에는 드미트리씨가 빈티지 카메라를 들고 앉아 계셨다. 이스트만 코닥 컴퍼니Eastman Kodak Company의 폴딩 카메라였는데 빠진 나사가 잘 안 끼워지는 모양이었다. 어떻게라도 도움이 되려고 나를 포함한 두 명이 여인이 손을 보탰으나 아무리 봐도 전문 수리공의 손이 절실해 보였다. 아까 되돌려 받은 250루블로 첼노코프의 엽서 세트를 사서 나왔다. 푸쉬킨 뮤지엄은 다음을 기약하고, 다시 붉은 광장을 하염없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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