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프카를 사던 날
키타이 고로드를 떠나 북쪽으로 왔다. 며칠간 P의 아파트에서 지내는데 내 방도 있고 엘리베이터도 있다. 여기도 이중 철문이다. 집까지 들어가려면 입구 현관문 두 개, 엘리베이터 문 하나, 복도 문 하나, 집 현관문 하나, 이렇게 다섯 개의 문을 거쳐야 한다. 최소한 네 번은 열쇠로 열고 잠그는데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재미있는 건 여기 집 현관문이 소파처럼 생겼다. 가죽으로 되어 있고 안에는 솜도 들어있다.
이제 가장 가까운 역은 바우만스카야Baumanskaya역이다. 주변에는 10층이 조금 넘는 아파트들이 여럿 보이고, 대학 근처라 학생들도 많이 보인다. 매번 라도즈스카야 거리Ladozhskaya Ulitsa를 지나 역으로 간다. 거긴 고난이도의 빙판길이라 걷기가 쉽지 않다. 왠지 익숙할 것 같은 여기 사람들도 한 발 한 발 조심히 걷는데, 아무래도 빙판길에는 베테랑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간혹 넘어질 것 같은 장면을 목격이라도 하면 가슴이 철렁한다.
오후에는 이즈마일로보Izmailovo 시장에 갔다. 전철 탈 일이 많을 것 같아 3일권을 샀는데, 그날에만 이미 네 번인가 다섯 번을 썼다. 1회권은 55루블(약 1,000원), 3일 무제한 이용은 438루블(약 8,000원)이었다.
이즈마일로보 시장은 이즈마일롭스카야 Izmailovskaya역이 아닌 파르티잔스카야Partisanskaya역에 더 가까웠다. 역 안에는 존재감이 확실한 소비에트 스타일의 동상이 서 있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나치와 싸운 유격병들을 재현한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남자, 한 사람은 여자였다. 그 역을 들른 것 때문에 하루 종일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1934-2016)의 음악을 흥얼거려야 했다. 옛날에 자주 듣던 2집 앨범 <Songs from a Room>에 있는 ‘파르티잔 The Partisans’이라는 곡이었다.
오늘 아침에 우리는 세 명이었는데
There were three of us this morning
저녁인 지금에는 나 혼자라네
I'm the only one this evening
하지만 나는 계속 가야한다네
but I must go on
여기 국경지역들은 내게는 감옥이라네
the frontiers are my prison
아, 바람, 바람이 불어오네
Oh, the wind, the wind is blowing
저 무덤들을 지나 바람이 불어오네
through the graves the wind is blowing
곧 자유가 찾아올 거라네
freedom soon will come
그러면 이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게 될 거라네
then we'll come from the shadows
지금은 쓰고 들을 일이 잘 없지만, 사실 파르티잔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빨치산’과 같은 단어다. 영어와 프랑스어로는 Partisan파르티잔, 러시아어로는 Партизан빠르치잔인데, 한국에서는 6.25라는 특수적인 상황 때문에 그 뜻이 ‘공산당’으로만 해석된다는 점이 다르다. 파르티잔은 ‘정당’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Parti빠흐띠(영어로는 Party)에서 시작되었다. 결코 우리가 느끼는 그런 부정적인 뜻이 아닌, 당원이나 당파, 지지자 혹은 정식 군대에 속하지 않은 비정규군이나 유격대원을 뜻한다. 스페인어 게릴라Guerilla도 그런 뜻이다.
코헨이 부른 ‘파르티잔The Partisans’의 원곡은 ‘파르티잔의 애도La Complainte du partisan’라는 샹송이었는데, 그 곡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중의 프랑스 레지스탕스resistance(저항운동)에 관한 곡이다. 작곡가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의 프랑스 음악가 안나 말리Anna Marly(1917-2006)이고, 작사가는 프랑스 출신의 엠마뉴엘 다스티에 드 라 비게리Emmanuel d' Astier de La Vigerie(1900-1969)인데, 코헨이 부른 영어 버전의 가사는 뉴욕 출신의 하이 자렛Hy Zaret(1907-2007)이 썼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영화 <사랑과 영혼GHOST>의 테마곡 ‘Unchained Melody’의 공동 작사가다.
나는 조금 슬픈 노래를 흥얼거리며 눈길을 걸었다. 팔려고 내놓은 중고 물품들이 보였는데 주인은 안 보였다. 혹시라도 오래 눈길을 주고 있으면 분명 주인이 나타나 골라 보라고 할 것 같아서 재빨리 지나쳤다.
시장은 웬일인지 썰렁했다. 상점들은 러시아 전통 스타일의 나무 구조물로 되어 있었는데, 리스트비얀카의 그 시장과도 조금 닮은 느낌이 났다. 다른 점이 있다면 거기는 ‘오물'을 파는 생선 가게고, 여기는 거의 다 마트료시카Матрёшка를 파는 기념품 가게라는 것이었다. 어떤 상인은 박스 안에서 마트료시카를 꺼내 비닐봉지를 벗기고 있고, 또 어떤 상인은 박스를 가득 실은 트롤리를 끌고 시장으로 들어왔다. 박스는 모두 프리마 돈나Prima Donna라 적힌 에콰도르산 바나나 박스였는데, ‘이 추위에도 바나나가?’ 싶어 들여다보니 바나나가 아닌 모두 마트료시카였다. 이렇게 마트료시카가 많은데도 나는 마트료시카에게 눈길 조차 주지 않는 매정한 손님이었다. 춥기도 했고, 이미 집에 분홍색 마트료시카가 있기도 했다.
내 마트료시카는 스웨덴 친구가 선물로 준 것이었다. 그 친구는 당시 모노클 홍콩 지사에서 에디터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인도에서 들어오는 길에 만났다가 마트료시카를 선물 받게 되었다. 분홍색, 하늘색, 은색이 골고루 섞인 칸쵸 촉감의 마트료시카를 열면, 그 안에는 몸집이 좀 더 작은 마트료시카가 들어 있고, 또 열면 또 있고, 또 열면 또 있고, ‘설마 이제는 없겠지?’ 하고 열면, 그 안에도 콩알보다 작은 뭔가가 들어 있었다. 가장 작은 조각에는 눈인지 코인지 입인지 알 수 없는 몇 개의 선 같은 점이 찍혀 있었는데, 커다란 아이부터 콩보다 작은 아이까지 모두 10쌍이었다. 지금도 열어 볼 때마다 신기하다.
길이 끝나는 지점에 산적 같은 아저씨와 파란 후드를 덮어 쓴 청년이 모자를 팔고 있었다. 나는 모자를 보면 눈이 반짝이는데 거기에 내 샤프카Шапка와 비슷한 것이 걸려 있었다. 내 모자는 5년 전에 오슬로의 칸토르케 벼룩시장에서 산 빈티지 모자였다. 어떤 할머니에게서 170크로네(약 3만원)를 주고 샀는데 마음에 쏙 들어 여행 내내 쓰고 다녔다. 지난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에서도 그 모자를 썼었다. 그런데 몇 년을 썼더니 정수리에 닿는 안쪽의 이음선이 뜯어졌고, 살려 보겠다고 바느질까지 했으나, 어느새 모자는 장식용이 되어 있었다.
그 청년이 다가왔다. 이름은 감자토브였는데 모자를 씌워주고 거울 앞으로 데려갔다. 음. 어울리긴 하는데 충동구매로 사기에는 비싸다. 물론 나는 그 가격이 어느 선까지 내려갈 거라는 것과 합리적인 수준의 가격은 얼마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능청스럽게 “어우, 너무 비싸요.”하고 말했다. 그랬더니 “얼마에 해 줄까요?”하고 되물었다. 농담을 주고 받다 보니 가격은 내가 원하는 만큼 내려가 있었다. 그리고 내 머리에는 하얀색 샤프카가 사이즈 조절까지 된 상태로 고이 씌워져 있었다. 아르바트 거리에 가면 10만원 혹은 그 이상에 팔리는 ‘Made in Russia’ 모자였다. 그래도 배낭 여행자에게는 거금이라 조금 망설였다. 내 백팩에는 오후에 더 추워지면 쓸 검은색 털모자가 들어 있긴 했는데, 그것도 여행 중에 산 빈티지 모자였다. 그 때도 망설이다가 샀던 것 같다. 귀를 완전히 덮는 스타일로 은하철도 999의 메텔 느낌도 나서 보는 사람마다 러시아에서 샀냐고 물었다. 출처는 런던의 어느 빈티지숍이었다.
머리에 맞으면서 핏까지 예쁜 모자를 발견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기도 하고, 여행이 아니라면 독특하고 이국적인 모자를 사는 것은 쉽지도 않다. 그러니 가격만 어느 정도 맞으면 망설이지 않고 사야한다. 사실 이곳 러시아에서 모자는 멋이 아니라 생존이지만.
나는 새 모자를 쓰고 다시 왔던 길을 걸어 파르티잔스카야역으로 갔다. 그 전날 집주인에게 모스크바의 아름다운 역들을 적어달라고 했는데 그가 몇 개의 역을 적어 메시지로 보냈다.
플로샤드 레볼류치Ploschad Revolutsii
키에프스카야Kiyevskaya
마야코프스카야Mayakovskaya
노보슬로보츠카야Novoslobodskaya
콤소몰스카야Komsomolskaya
타간스카야Taganskaya
모든 역을 다 보기에는 시간상 불가능해 보였는데, 일단 되는대로 구경하기로 하고 파란색 3호선을 타고 아래로 쭉 내려가서 플로샤드 레볼류치역에 내렸다. 거긴 내가 자주 돌고 돌았던 붉은 광장이 있는 역이었다. 그 동안은 지상으로만 다녀서 들어갈 일이 없었는데 지하도 지상 못지 않게 굉장한 곳이었다. 모든 승강장은 아치형의 붉은 대리석으로 되어 있고, 모든 아치에는 수많은 직업군─작가, 군인, 농부, 비행사, 산업노동자, 학생 등─을 표현한 청동 조각상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총 76개라는데 다 세어보지는 못했다. 얼마나 만졌는지 청동조각상은 부분부분 황금색이 되어 있었다. 비겔란 조각공원Vigeland Sculpture Park(노르웨이 오슬로)의 감동이 거기서도 있었다. 나는 다시 빨간색 1호선으로 갈아타고 콤소몰스카야역으로 갔다. 아. 이런 고풍스러움이라니! 역이 아니라 궁전 같다. 콤소몰스카야역은 1935년 모스크바 지하철이 개통될 때 최초로 개장된 역 중의 하나였다. 역은 기차역들과도 이어져 있었는데, 상트페테르부르크나 헬싱키로 가는 ‘레닌그라드역'과 카잔 등의 모스크바 동쪽으로 가는 ‘카잔역',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출발역이자 종착역인 ‘야로슬라블역'이 다 모여 있었다. 야로슬라블역은 베이징과 평양 등으로 가는 국제 열차가 지나가는 곳이기도 했다.
그렇게 돌아다니다보니 어느새 오후 4시였다. 다른 역들은 또 기회가 생기면 가기로 하고, 은행에도 들러야 하고, 5시 쯤에는 약속도 있어서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