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lie Mayfeng Nov 16. 2019

카놀리와 라브라




카놀리와 라브라




그의 아침 스케쥴은 요가를 다녀오는 것이고, 나는 조금 쉬면서 사진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함께 도서관을 가는 것으로 약속을 했다. 미리 전화를 걸어 외국인의 입장이 가능한지 물었고, 신분증 정도만 있으면 된다는 대답을 얻었다. 요가를 다녀온 그는 부엌에서 뚝딱뚝딱 하더니 아름답고 조화롭게 보이는 음식을 두 접시에 담아 냈다. 



식사를 마치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시설 이용을 하려면 도서관 출입증을 만들어야 했는데, 우선 코트와 가방을 맡긴 후, 내어주는 서식에 맞춰 국적 및 직업 등을 러시아어로 기재했다. 그리고 작은 사무실 같은 공간으로 들어가서 사진을 찍었다. 샤프카를 벗기가 싫었는데, 모자를 쓰고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이상한 사진이 들어간 출입증 카드가 발급되었다.



그는 프리랜서로 프로젝트를 끌고 가는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날도 컴퓨터로 해야할 작업이 있었고, 나는 그가 일을 하도록 다른 자리에 앉아 책을 꺼내 보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아치형의 커다란 창들과 도서관 책상마다 설치된 녹색의 빈티지한 스탠드 조명, 옅은 민트색의 인테리어는 집중할 분위기를 만들어 줬으나, 그 공간에는 겨우 키릴 문자 정도 읽는 내가 이해할 만한 책은 없었다. 

도서관을 나와 걷다가 그가 잠시 몸을 녹이자며 네온핑크의 간판이 달린 티룸으로 나를 데려갔다. 바깥 온도가 너무 낮아서 체온 유지를 하려면 자주 차를 마셔줘야 했다. 안에는 나무 테이블이 놓인 코지한 분위기로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들렀던 역 안의 카페가 떠올랐다. 우리는 면으로 된 티백 안에 자연재료가 가득 든 차를 골랐다.



“쥴리, 안타깝게도 카놀리가 하나 밖에 안 남았대. 그래서 두 조각으로 잘라달라고 했어.”



카놀리라니! 아마도 어젯밤에 잠시 스치는 얘기로 카놀리 얘기를 한 것 같은데, 그것을 기억하고 카놀리를 파는 곳으로 데려온 모양이었다. 그렇게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내 생애 첫 카놀리를 먹게 되었다. 생각보다 조금 많이 단 듯 했지만, 당도는 둘째치고 이토록 세심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마시던 차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조금 걷다가 택시를 탔다. 우리는 ‘라브라’라 불리는 알렉산더 넵스키 수도원Alexander Nevsky Lavra으로 가고 있었다. 그는 너무 아름다운 곳이라며 라브라를 꼭 보여주고 싶어 했고, 나도 이번 여행에서 꼭 가보고 싶어 체크를 해 두었었다. 









택시에서 내려 입구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굵은 눈발이 날렸다. 하늘은 까맣고, 불빛은 노랗고, 눈은 하얗고…… 추위도 잊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에 발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까마귀가 까악까악 울어댔다. 수도원 성당에 들어가서 둘러본 후 다시 나와서 한참 동안 정원을 걸었다. 그야말로 겨울 정원이었다. 낮에 다시 찾아 오리라 생각했다. 지금은 너무 어두워서 차이코프스키의 무덤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저긴 뭐하는 곳이야?”

“잘 모르겠는데… 한번 들어가 볼까?”



라브라 입구에 불켜진 나즈막한 건물로 들어갔다.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Y는 묻지도 않고 티켓 두 장을 사더니, 들어가자고 했다. 공연장 입구에서 코트와 가방을 맡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공연은 ‘겨울의 화음’이라 제목이 붙은 러시아 전통 음악회로 객석은 절반 이상 가득 차 있었다. 사회자가 설명을 하고, 소프라노가 연주자들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했다. 관람객은 대부분 현지인들이었다. 공연을 보고 나오는 길, 나는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고맙기는. 네가 발견한 곳이야. 나라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몰라. 네 덕에 내가 좋은 구경을 했어.”



돌아가는 길은 시내까지 지하철을 탔다. 처음으로 타보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지하철은 플라스틱 토큰 같은 것을 사서 타는 시스템이었다. 



예쁜 거리의 초입 정도에 테이크 잇 이지(Take Eat Easy)라는 베이커리에 들어갔다. 부드러운 크림이 든 크루아상에 화이트 에끌레어를 사고 카드를 내밀자, 직원 여인은 “몇 분만 더 기다리면 50% 할인이에요.”라고 말했다. 우리는 몇 분을 기다렸다가 정말 착한 가격에 맛있는 빵 두 개를 사서 나왔다. 에끌레어는 가방에 넣고, 크루아상 하나를 나눠서 오물오물거리며 피터와 폴 성당을 지나, 마켓 플레이스라는 곳에 들어가 베리들이 가득 든 차에 꿀을 타서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 했다.








다시 집. 우리는 명상을 하기로 했다. 인센스를 피우고, 내가 즐겨 듣는 튠인라디오의 명상 음악 채널인 ‘Nirvana Meditation’을 플레이 시켰다. 30분 알람을 맞추고 불을 껐다. Y는 매트 위에, 나는 방석 위에 앉았다. 알람이 울리고도 나는 꼼짝 않고 앉아 있었는데, 그래서 그는 30분을 더 연장을 하자고 했고 나도 동의했다.



고교 시절 ‘명상의 시간’은 그저 지루하기만 했었다. 시키니까 할 뿐, 아무런 동기 부여가 없었다. 이제는 스스로가 원해서 명상을 한다. 그저 마음의 고요가 필요할 때, 단 몇 분이라도 가만히 앉아서 이렇게 되내인다. ‘내가 행복하기를, 내가 안전하기를, 내가 건강하고, 평온하며, 감사를 주고 받기를…….’ 그리고 다시 내 주변의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리며, ‘그대가 행복하기를, 그대가 안전하기를, 그대가 건강하고, 평온하며, 감사를 주고 받기를…….’ 명상을 하고 나면 한결 개운해지고 착해지는 기분이다. 



우리는 한 시간의 명상을 어렵지 않게 마쳤다. 누군가가 그랬다. 명상은 ‘눈을 감는 행위가 아닌 눈을 뜨는 행위’라고. 정말 맞는 말이다. 



이전 22화 Y의 할아버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