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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Mayfeng Nov 16. 2019

Y의 할아버지





Y 할아버지




Y의 책꽂이를 들여다 보다가 어느 책에 쓰여진 키릴문자를 소리내어 읽게 되었다. 발음을 마저 끝내기도 전에 나는 그 책이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The Stranger>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 차렸다. 그 옆에는 카뮈의 <페스트 The Plague>가, 또 그 옆에는 사르트르의 <구토 Nausea>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Thus Spoke Zarathustra>가 나란히 꽂혀 있었다. 직감적으로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같은 책을 읽는다는 것, 그리고 그 책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 나아가 좋아하는 작가가 같다는 것은 서로가 긴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무언가 연결 고리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일까? 부쩍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또 한 권의 다른 책이 눈에 들어왔다. 양장본으로 만들어진 묵직한 책이었다. 그 안에는 프로 사진가가 찍었을 법한 세피아톤의 사진들과 서신들, 글들이 채워져 있었다. 



“이건 무슨 책이야?”

“우리 할아버지를 위해 내가 만들었어.”

“정말?”



놀라웠다. 어떤 삶을 사셨길래 책까지 엮었을까, 나 또한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있기에 그 책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편집 실력은 물론이고, 손자의 남다른 애정이 느껴져 마음이 뭉클했다.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늘 지쳐보이는 인상을 갖고 계셨어. 웃음기라고는 전혀 없는, 이미 30대에 백발이 되었을 정도로 힘든 삶을 사신 분이셨지. 아버지께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그는 어린 손자들을 볼 때마다, 그러니까 나와 우리 형과 누나가 뛰어 노는 것을 볼 때마다 “저 녀석들은 어찌 저리 에너지가 넘치는고?”하고 의아해 하셨다고 해. 안타깝게도 당신은 그러지 못 하셨으니까. 우리 할아버지 성함은 블라디미르 이바노비치 바라코프스키. 1921년 모스크바에서 농민 가족과 귀족 여성 사이에서 태어나셨어. 할아버지의 가족들은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에도 참여를 하셨었대. 할아버지는 아주 영리한 기술자로, 피아노도 연주하고, 유화로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셨어. 할아버지는 전쟁의 기록이 담긴 일기장과 메달 등이 담긴 나무 박스를 남겨 놓고 돌아가셨는데, 어릴 때 나는 그 안에 담긴 메달들을 가지고 놀았어. 



우리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16세 때 여의셨어. 그러니까 나의 증조부는 1937년에 총살로 돌아가셨어. 스탈린 시절 피의 대숙청 기간이었지. 억울하게도 공공의 적으로 찍혔는데, 그래서 그 자식들의 삶도 한마디로 지옥이었대. 그렇게 낙인된 사람들은 좋은 대학에 간다거나 좋은 직업을 얻는 것도 힘들었다고 해. 할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공산 정부로부터 평생 부당함을 느끼며 사셨어. 



19세가 되던 해, 그러니까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1년 전에 할아버지는 붉은 군대에 징용되어 가셨어. 1941년 6월 22일 아침 독일군(Wehrmacht)이 침공했는데, 그 때는 모스크바 근처 군사 기지에 계셨고, 1941년 가을에는 벨라루스 최전선에 파견되어 가셨어. 거기는 나치의 공격을 가장 먼저 받은 곳이었어. 사상자가 많았지. 



회고록을 읽다가 소름 끼친 이야기를 하나 발견했어. 그의 연대가 하룻밤 동안 어느 마을에 들렀는데, 그 연대는 아직 경험이 없는 어린 군인들로 이뤄져 있었대. 어느 밤, 우리 할아버지와 몇몇 친구들이 외곽에서 오두막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잠시 눈을 붙였대. 아침에 동료 군인 한 명이 할아버지의 어깨를 건드리면서 “저기 보세요! 저기 보세요!” 하더래. 그래서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마을에 독일군들이 가득 차 있었대. 그리고 몇 분 후에 오두막 문이 열리면서, 나치군이 들이 닥쳤대. “Raus!(나와라!)”하고 소리를 치면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고 적혀 있었어. 



다행히 할아버지는 히틀러에 의해 살해 되지는 않았는데, 대신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 캠프 생활을 하셨다고 해. 그곳은 하늘이 다 보이는 땅 위의 감옥이었대. 같은 연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 수용소에서 사망했고, 또 유태인처럼 총에 맞아 죽거나 아니면 아파서 죽었대. 캠프 생활은 6개월 정도 지속되었는데, 생존의 희망이라고는 전혀 없는, 한마디로 악몽이었대. 어느 날,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 죽을 때가 다 된 것 같다고 느끼셨는데, 만약 나치의 눈에 띄었으면 할아버지의 목숨도 위태로웠을거야. 그런데 한 친구가 잘 보살펴 준 덕분에 살아서 돌아오실 수 있으셨다고 해. 








그의 말대로라면, 그의 할아버지가 비록 애국자는 아니었지만, 모든 삶을 소비에트 유니언(소련)에 바쳤기 때문에 나라가 사라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슬픔이었다고 한다. 러시아의 모든 참전용사들은 새로운 나라인 러시아에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고, 그러한 이유로 상당수가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 남은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았다고. 그의 할아버지는 소련이 붕괴된 다음 해인 1992년에 노환으로 생을 마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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