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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혜윤 Oct 03. 2019

당신에게 고마운 일들

우주 최고 남편의 모범답안

우리의 계절, 우리의 달이 되었어.

임신을 하고 10달을 함께 지내는 동안,

해든이를 낳고 보름이 지나는 동안,

넘치게 들었던 사랑한다는 고백의 대답을 길게 써 봐야지.


당신에게는 어떤 다짐이 있었을까.

어떤 마음이었길래 그렇게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배부른 나를 봐주고

묵직하고 따뜻한 손으로 상해 가는 얼굴을 큼직하게 쓰다듬었을까.

가끔은 전해지는 당신의 마음이 너무 크고 대단해서

이 순간에 지어진 것이 아니라 나를 위로하려는 당신의 다짐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였어.


하루 종일 약하고 불안하고 예민한 사람들과 고통과 슬픔들에 치이고 갈리고서

잘 수 있는 세 시간의 틈을 나누어 나에게 오고는

함께 더 같이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현관문을 열고 나를 세게 안을 때마다

그 품이 너무 가득해서 당신이 거인만큼 커져서 나를 품는 것 같았어.


연애하던 때보다 몇 배는 자주 들었던 예쁘다는 칭찬은 고맙다는 인사에 빠뜨릴 수 없지. 

매일 몇 번씩이고 왜 이렇게 예쁘냐, 어떻게 이렇게 예쁠 수 있나, 너무 예쁘네 하고

다양하게도 감탄해주던 당신의 칭찬 덕분에

임산부 다워져가는 내 모습도 괜찮은 듯 꽤 의연하게 지나왔어.


당신의 고민들을 나누어 주던 것.

당신의 투정과 심각한 사건들과 속으로 겉으로 갈등하던 문제들 모두

나와 나누고 함께 의논하고 의견을 물어보던 것들이 더 당신과 함께 살아가는 느낌이 들게 했고,

누군가가 나아지거나 주로는 더 아파져 가는 동안

그리고 그걸 해결해 가는 성공과 실패들을 자주 전해줘서 나의 평온 사이에도 자극과 영감을 주는 것.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사소한 특징들을 내게 전해준 덕분에 당신의 일상을 좀 더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었어.


처음 해든이에게 젖을 물리던 때에  

'이렇게 안 먹으면 엄마가 얼마나 속상하겠어' 하던 다정한 꾸짖음을 기억해.

아가에 대한 걱정보다 나를 앞서 걱정해주던 그 다정함이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당신에게는 가장 우선이고 싶은 기대에 대답이 되었지. 


칙칙한 보라색 두둥실한 조리원복에 젖이 새어 얼룩지는 동안도

'너무 대단해 여보, 멋진 일이야, 존경스러워'라며 

자연스러운 과정에 부리던 내 투정을 나무라지 않고 세차게 격려해 준 거.

어른이 되어야 하고 엄마가 되어야 하는 불안에도

당신에게는 여전한 내 모습으로 어리광 부리고 기댈 수 있어서 얼마나 든든했나 몰라.


그렇게 한 사람이 태어나고, 한 세대가 교체되고, 한 세상이 시작되는 벅찬 때에

수반되는 불편과 아픔들도 당신의 사랑으로 촘촘히 메워졌고

당신이 곁에 없을 때에도

그 마음들이 쉼 없이 나를 데우고 감싸서 언제나 가득 차있다는 걸,

너무 행복하다고 전하고 싶었어.


고마워 여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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