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주 Nov 17. 2019

수레를 끄는 여행자

다시 태어나도 못 따라갈 부모님의 마음

후- 심호흡을 크게 내쉬었다. 부모님께 사고 소식을 말씀드리기로 결심했다. 사실을 숨길까 고민도 해봤지만 나중에 아시면 더 속상하실 것 같았다. 부모님의 반응을 짐작해보니 심장이 쫄깃해졌다. 떠날 때도 걱정이 많으셨는데 그 걱정에 충격을 더할 것 같았다. 당장 한국에 오라는 말 정도는 들을 각오를 하고 휴대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뚜르르- 뚜르르- 달칵.

"응, 딸내미! 웬일이야?"

오랜만에 듣는 엄마 목소리에 울컥 차오르는 마음을 누르고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응 엄마, 잘 있었어? 어... 나 일이 좀 생겨서 연락했어."

"일? 무슨 일?"

옆에 있던 아빠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게 횡단 열차 2층 침대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병원에 입원했어. 갈비뼈 두 대가 부러졌대."

말을 잇고 있는 나도 이 상황이 믿기지가 않는데 부모님은 어떠실까.

"수술하거나 그래야 하는 건 아니고 갈비뼈는 내버려 두면 알아서 붙는다네."

서둘러 이 상황 속에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을 어필했다.


잠깐의 정적 이후, 엄마는 놀랐지만 놀란 것을 티 내지 않으려는 듯 차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휴 큰일 날 뻔했네, 지금은 어때?"

아빠의 약간 화가 난 것 같은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으휴! 어쩌다가 갈비뼈가 부러져"


"정말 조심해서 다녔는데 그렇게 되었지 뭐야.. 걱정 끼쳐서 미안해요."

엄마는 딸의 미안함을 덜어주고 싶었는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잘못은 아니고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다 있는 거지. 그나마 머리 안 다친 게 다행이다."

아빠는 딸내미가 웃길 바랐는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무 조심히 다녀서 그래! 앞으론 그냥 막 다녀!"


부모님은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지 물어보셨다.

"이대로 한국 돌아가긴 아쉬워서 여행은 계속해보려고. 물론 갈비뼈 회복을 최우선으로 하고."


서둘러 다시 이 상황 속에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을 어필했다.

"지금 뼈는 잘 붙고 있어서 무거운 거 드는 것만 조심하면 된대. 배낭만 어떻게 해결하면 될 것 같아."

거기서 그러지 말고 당장 한국으로 돌아오라는 두 분의 답변이 튀어나올 것만 같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 알았어. 밥 잘 챙겨 먹고, 잠 잘 자고. 얼른 나아서 또 재밌게 여행해야지."

네? 부모님은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돌아오라는 말 대신 거기서 잘 지내라고 하셨다.  


궁금해서 나중에 여쭤보았다. 그때 당장 돌아오라고 했을 법도 한데 어떻게 그러지 않으셨냐고.

아빠는 말씀하셨다."야, 돌아오라고 할 거였으면 진작에 보내지도 않았다!"

부모님의 마음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훠어얼씬 강하고 넓고 깊었다. 다시 태어나도 못 따라갈 마음이다.


두 분의 응원 덕분에 나는 한 결 가뿐해진 마음으로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해결하면 될 것 같은 배낭은 고민 끝에 접이식 손수레를 사서 끌고 다니기로 했다.

그렇게 배낭을 메는 여행자에서 수레를 끄는 여행자로 다시 태어났다.


이전 15화 매일매일이 감동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