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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Nov 17. 2019
매일매일이 감동
부러진 갈비뼈가 이어준 찐한 인연들
러시아 병원 입원은
여행 중 가장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당시에는 정말 운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횡단 열차 2층 침대에서 떨어져 갈비뼈는 부러졌지만 머리를 다치치는 않았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러시아 병원에 입원했지만 낯선 외국인을 챙겨주는 마음 따뜻한 친구들을 만났다.
한국 축구의 한 획을 그은 러시아 월드컵 독일 전 관람은 놓쳤지만 내 인생의 한 획을 그은 일주일을 보냈다.
갈비뼈 회복을 위해 입원해 있던 그 병원에서 나는 매일매일 감동했다.
감동 하나. 뜻밖에 병문안
오후 두 시에서 다섯 시 사이. 예카테린부르크 병원의 병문안 가능 시간이다. 병문안 올 사람이 없는 나에게 그 시간은 조금 외로운 시간이었다.
하루는 병실 메이트 베로니카와 레나의 병문안을 온 가족들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누가 병문안 와주면 좋겠다.'
매일 같은 시간에
병
문안을 오는
가족들을 보며 내심 부러웠
던 것이다.
아무 연고가 없는 러시아에 누가 병문안을 올리가 없지.
헛된 바람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런데 그때, 짐 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쇼> 같은 상황이 거짓말처럼 벌어졌다. 나만 모르는 짜인 각본이 있는 것처럼 병실 문이 열리며 누
군
가 나를 찾아온 것이 아닌가.
처음 본 얼굴의 두 사람이
나에게 "네가 유진이니?" 하고 물었다.
그들이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것에 깜짝 놀라며 들고 있던 밥숟갈을 내려놓았다.
"응, 내가 유진인데, 무슨 일이야?"
토끼 눈을 뜨고 있는 나에게 그들은 활기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녕, 우리는 올리아, 율리아 자매라고 해! 네 소식을 듣고 병문안 왔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지역 스타라도 된 것인가.
내 소식을 어떻게 들었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나에게 그들은 상황설명을 해주었다. 알고 보니 나와 같은 병원에 입원 중이신
자매
의 어머니가 베로니카를 통해 내 소식을 듣고
자매
에게 이야기를 전달하신 것이다.
올리아, 율리아 자매는 이렇게 말했다.
"
우리가 만약 너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거든.
아무도 모르는 타지에서 병원 입원까지 했으니 얼마나 무섭고 힘들까 싶더라.
걱정돼서 찾아왔어.
"
세상에.
상상을 초월하는
그들의 공감 능력과 마음 씀씀이에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횡단 열차 2층 침대에서 떨어졌을 때와는 또 다른 의미로 이게 꿈인가 싶었다.
얼굴도 모르는 나를 걱정하며 이렇게 찾아와 준 것도 고마운데 그들은 예쁜 종이 가방 하나를 나에게 내밀었다. 그 속에는 과일과 빵, 초콜릿 등이 담겨 있었다.
"작은 선물이지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들은 준비한 선물이 작다고 했지만 내게는 너무도 큰 선물이었다. 가슴 깊숙이 밀려오는 감동을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나는
그
저
그들을 껴안으며 러시아어로 고맙다는 말
만
되풀이했다.
감동 둘. 문의 병문안
병문안 복이 터졌다. 병원에 입원하고 며칠 지났을 무렵 이르
쿠츠
크 호스텔에서 만났던 한국인 여행자 문에게 연락을 했다. 기회가 되면 한국 VS 독일 월드컵 경기를 보러 카잔에서 만나기로 했던 약속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카잔에 갈 수 없게 된 나는 문에게
그
소식을 알렸다. 그런데 이미 카잔 근처 도시에 있을 줄 알았던 문이 지금 예카테린부르크에 있다는 것
이
아닌가!
아는 사람이 같은 도시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위로가 되었는데 문은 내 소식을 안타까워하며 병문안을 오겠다고 했다.
관광 명소를 구경하기도 바쁠 텐데 시내 중
심
에서 가까운 것도 아니었던 병원에
직접
온다는 문에게 너무 고마웠다.
문은
병문안
을 왔을 때
수줍게 커피 믹스를 내밀었다. 한국 음식은 이미 다 먹어서 가져올 게 이것밖에 없었다며 미안해했지만
문의 방문 자체가 이미 나에게는 대단한 선물이었다.
문은 올혼 섬 방문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어주었고 나는 갈비뼈 골절 스토리를 풀었다.
오랜만에 한국말로 수다를 잔뜩 떨고 나니 스트레스가 팍팍 풀리는 기분이었다.
감동 셋. 병실 메이트, 베로니카
병실 메이트 베로니카의 감동 지분은 대주주에 가까웠다. 입원 첫날, 나는 베로니카를 환자들과 상주하는 간호사로 착각했을 만큼 그는 나와 레나를 살뜰히 챙겨주었다.
하루는 병원에서 나오는 밥을 먹으며 나도 모르게 옅은 한숨을 쉰 적이 있다. 음식을 앞에 두고 그러면 안되지만 한국에서도 병원 밥은 질린다던데 러시아에서 병원 밥을 삼시세끼 먹으려니 물릴 대로 물리고 만 것이다.
베로니카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식사로 나온 감자 퓌레를 가져다 숟가락으로 예쁜 무늬를 내주었다. 그녀가 내게 써준 마음이 너무 고맙고 귀여워서 회오리 퓌레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뿐만 아니라 베로니카는 맛있는 간식이 생기면 우리에게 꼭 나누어 주었다. 그것이 바나나 한 개든
,
귤 한쪽이든
,
초콜릿 한 조각이든. 자리를 비운 사이 귀여운 간식이 탁자에 놓여 있는 경우가 셀 수 없이 많았다. 베로니카
는
답답한 병원
생활에
나를 웃게 해주는
존재였다.
병원 퇴원 날, 베로니카와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 베로니카는 잠깐 기다려 보라
는 듯하더니
집에서 가져온 드레스
로 갈아입고
뾰족구두를 챙겨
신었
다.
나에게 눈썹 정리를 부탁했던 그가 뷰티에 관심이 많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드레스까지 챙겨 왔을 줄은 몰랐다.
(ㅎㅎㅎ)
베로니카에게 너무도 잘 어울리는 하얀색과 파란색이 섞인 드레스를 입고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그동안 고마운 마음을 담은 엽서와
한국에서 가져온
책갈피를 베로니카에
게 선물했다
.
구글 번역기로 번역한 러시아어로 쓴 엽서를 베로니카는 무척 마음에 들어하며 큰 소리로 여러 번 읽었다.
베로니카는 그동안 나에게 차고 넘치게 준 것들로도 모자라
마지막 날까지
나에게 선물을 주었다. 손수 뜬 냄비 받침이었다. 그 선물은
베로니카
의 마음처럼 무척이나 귀엽고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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