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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재성 Mar 22. 2021

USS JOHNSTON(DD-557)

역사에 남은 선박들

단기필마(單騎匹馬)라는 말이 있다. 삼국지에서 촉의 장수 조운이 주군의 아들인 아두(유선의 아호)를 가슴 갑옷에 넣고 조조의 대군 사이를 말을 타고 혼자 누볐음을 표현했던 사자성어인데, 장판파에서 장비가 혼자서 조조의 대군을 막은 일과 더불어 용감무쌍함의 대명사로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 전투에서 수많은 적들 사이를 뻔히 보는 앞에서 혼자 누비는 일은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이며 정신 나간 짓으로 보이기 딱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 실례(實例)가 있었으니…

2020년 개봉했던 영화 그레이하운드에 등장한 구축함. 이 급이 바로 플레쳐급 구축함이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 이후, 전시체제로 돌아가기 시작한 미국의 엄청난 공업력은 전시 표준선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그야말로 배를 찍어내기 시작했다. 빅토리급, 리버티급으로 대표되는 상선들은 물론이고 전쟁의 전반부에 격침된 렉싱턴이나 요크타운과 같은 항공모함도 그보다 더 많은 수의 항모를 만들어내며 빈자리를 채우고 남을 정도였으니… 만재배수량 2,500톤급의 플레쳐급(Fletcher Class) 구축함들도 그런 ‘바로바로 찍어내는 미국의 공업력’을 보여준 규격화된 전선(戰船)이었다. 


5인치(127mm) 주포 5문과 10여 발의 21인치 산소 어뢰를 장비했고 35노트를 넘는 경쾌한 기동성을 지닌 플레쳐급 구축함은 취역하기 시작한 1942년 6월 이후 생산이 중단되는 1944년까지 2년간 무려 175척이 건조되었고 태평양전쟁과 유렵의 바다에서 벌어진 대잠수함 작전 내내, 그리고 대전 이후, 한국전쟁에서도 활약하게 된다. 


이후 우방국에 공여되어 대한민국 해군에서도 우리 해군 최초의 구축함이었던 DD-91/911 충무함과 그 뒤를 이어 도입되어 DD-912 서울함, DD-913 부산함으로 운용되었던 예가 있었다. 최근 개봉했던 영화 ‘그레이하운드’에서 수송선들을 공격하는 독일군의 U-BOAT들과 결전을 치르던 호송선단을 이끌던 미국 군함으로 이 급의 구축함이 등장한 바 있다.

오늘의 주인공, USS JOHNSTON(DD-557)

레이테만 해전(1944.10.23~10.26)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 이후 일본 해군은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미국은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어도 바로 그것을 보충할 수 있는 공업력이 뒷받침이 되었지만 일본의 경우, 계속 늘어지는 보급선과 미국과 달리 피해를 입은 후 보충해줄 수 있는 공업력이 한계상황에 직면하면서 작은 승리로는 오히려 더 많은 피해를 입는 악순환에 들어가게 된 것. 남방군도까지 진출해서 호주를 압박하던 일본 육군 역시 보급이 끊기고 대전 초기의 수세에서 공세로 돌아선 미군에게 계속 밀리기 시작하면서 필리핀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군은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필리핀을 잃었을 때, 이전의 다른 섬들을 잃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충격을 각오해야 했기 때문에 일본 해군은 필리핀을 방어하고 미국의 예봉을 꺾기 위해 모든 전력을 긁어모아 결전을 치러야 했고 그것이 1944년 10월, 4일간 벌어졌던 레이테만 해전이었다.

한때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기함이었던 전함 나가토(長門)
전함 하루나(榛名). 일왕 히로히토의 즉위 기념식에서 일왕이 승선했던 전함이기도 했다
전함 야마토(大和). 동급의 무사시(武藏)와 더불어 일본 해군의 상징이었던 세계 최대의 전함

레이테만 해전 당시, 공세의 주력이었던 중앙 함대의 전력은 일본이 긁어모을 수 있는 모든 전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전함 야마토와 무사시, 공고와 하루나, 나가토까지 5척의 전함과 중순양함 10척, 경순양함 2척에 구축함 15척의 엄청난 대군이었다. 모든 전력을 합치면 정규 항모 즈이카쿠(瑞鶴)와 경 항공모함 3척, 전함 9척에 중순양함 14척, 경순양함 6척과 구축함 35척의 규모로 이후, 일본은 그 어떤 해전에서도 이만큼의 전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이에 맞서는 미 해군의 규모는 이미 일본의 규모를 확실히 넘어서고 있었는데 레이테만 해전에 투입되었던 정규 항공모함만 8척이었고 그중 엔터프라이즈를 제외한 모든 항모들이 새로 지어진 에섹스급(ESSEX CLASS)의 신형 항모들이었다. 이전 해전에서 일본에게 침몰당했던 호넷, 렉싱턴, 와스프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아 더 큰 규모의 신형 항모로 재탄생해서 등장할 정도였으니 이 해전에서 일본이 승리를 거두었다고 해도 이후를 기약하기는 어려운 일로 보였을 정도. 뿐만 아니라 속속 미국의 손으로 들어온 주변 도서들에서 가용할 수 있었던 항공기의 수도 미국이 일본을 압도하고 있었다.


애초 일본이 단 한 척뿐이었던 정규 항공모함을 8척이나 보유하고 있던 미국의 손쉬운 승리로 끝날만한 전투였지만 애초 필리핀을 탈환하기 위해 전력을 동원했던 쪽은 미국이었고 서로 다른 명령권을 가진 지휘관이 존재하면서 벌어진 명령계통의 혼선과 손발이 맞지 않는 작전으로 인해 해전 내내 혼선을 빚은 쪽도 미군이었다. 태평양 지역의 모든 군 명령권은 체스터 니미츠 제독에게 있었고 남서태평양 지역의 모든 군 명령권이 미 육군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에게 있던 상황에서 벌어진 해프닝이었지만 이로 인해 정보의 공유가 늦어지고 명령 계통의 혼선이 빚어지게 된 것. 이로 인해 제공권을 장악한 상황에 훨씬 강력한 해군력을 보유하고서도 서전에 일본 함대를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고 말았다.


Battle of Samar (1944.10.25)

밀고 당기는 공방전 속에 점차 일본의 열세가 확연해지고 있을 무렵 벌어졌던 사마르 해전은 일본이 본진으로 미국의 주력이었던 3함대를 해협의 북쪽으로 끌어낸 상황에서 해협의 남단에서 벌어진 전투였다. 일본 측은 항공모함 없이 전함 4척, 중순양함 6척, 경순양함 2척에 구축함 11척으로 구성된 공격 부대였던 구리다 함대였고 미국 측은 만재배수량 10,000톤이 살짝 넘던 호위 항공모함(Escort Carrier) 6척에 그 호위를 맡은 플레쳐급 구축함 3척과 호위 구축함 4척으로 구성된 7함대의 분대였던 TAFFY-3였다. 

구리타 다케오 중장(栗田健男, 1889. 4.28~1977.12.19)

TAFFY-3의 목적은 일본 함대와의 전투가 아니라 레이테섬에 상륙하고 있던 맥아더 장군 휘하의 미 제6군 병력의 지원이었고 적의 주공을 막아내기에는 터무니없는 상황이었다. 해전 당일, 정찰기로부터 날아온 전문을 받아 든 지휘관 클립턴 스프레이그 제독은 적의 분견대 정도가 아닌 주공을 담당한 대규모 함대가 자신의 함대 앞으로 쇄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지상공격 지원을 위한 전폭기와 구형 F4F와일드캣이 전부인 호위 항모의 항공기들과 단 7척의 구축함으로 적의 주공을 대낮에 상대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떠안게 된다. 적을 피해 무작정 남쪽으로 후퇴할 경우, 적 전함의 포화가 상륙하고 있던 병력들과 보급 함대의 목숨을 위협하게 될 것이고 맞서서 싸우기에는 중과부적인 절망적인 상황. 

연막을 치며 적의 시야를 교란시키던 USS Heermann(DD-532)과 USS John C.Butler(DE-339)

물론, 일본 함대에는 항공모함이나 공중에서 지원할 항공전력이 전무한 상태였지만 TAFFY-3의 경우에도 원래의 목적이었던 지상군 지원에 특화된 전력으로 적의 구축함 전력에는 대응 가능한 수준이었지만 전함이나 중순양함과 같은 강한 장갑을 장비한 대형 선박에는 턱없이 부족한 항공전력을 가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일본 해군이 큰 판단 착오를 하게 되는데 함대 사령관이었던 구리다 다케오 중장이 자신들 앞에 있는 함대가 호위 항공모함으로 이루어진 함대가 아니라 에섹스급 항모로 이루어진 정규 항모전단으로 판단한 것이다. 물론, 이런 판단의 배경에는 항모에 있던 항공기들을 무장과 상관없이 모조리 이함시켜서 상당한 수준의 항공전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이게 만든 스프레이그 제독의 빠른 판단도 있었지만, 제대로 전함과 맞설만한 무장이 없는데도 육상용 폭탄을 떨구고 기총소사로 목숨을 건 공격을 감행했던 전투기 조종사들의 분투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결국 항공기의 위협을 막아내는 것이 가장 큰 급선무로 판단한 구리다 함대는 진형을 항공기에 대항하는 진형으로 넓혀서 TAFFY-3에게 쇄도하기 시작한다. 항공기를 모두 띄운 항모들은 호위를 맡았던 구축함들이 연막을 뿌리며 일본 함대의 견시를 교란하기 시작하자 적 함포로 인한 유폭에 대비해 항모에 적재되어 있던 모든 폭발물을 바다에 던지며 선수를 남쪽으로 돌리고 일제히 후퇴하기 시작했다. 처음 적과 조우했을 때 31km의 지근거리에 육박한 상황이었기에 느린 호위 항모의 선속으로는 도저히 빠른 일본 해군 전함들을 따돌리기 어려운 절망적인 상황. 이 상황에서 오늘의 주인공이 등장하게 된다.

USS JOHNTON 함장으로 임명되었을 당시의 어네스트 에반스 중령

모든 함대가 선수를 돌리고 기만전술을 쓰며 후퇴를 시작했을 때, 연막을 치던 구축함 한 척이 선수를 반대로 돌려서 적진으로 돌진하기 시작한 것. 그야말로 죽음을 각오한 돌격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일본 쪽이었다. 일본 전함과 중순양함의 대구경포와 맞서기에는 사정거리도 짧고 위력도 적은 5인치 주포와 10여 발의 21인치 어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가까이 적에게 붙어야 한다는 단순한 이유였지만 수세를 바로 공세로 전환한 이 용감한 구축함의 돌격은 해전 자체의 양상을 뒤집는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어차피 엄청난 화력 차이 앞에 패배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오히려 공격으로 전환했던 구축함이 바로 USS 존스턴이었고, 적들의 포화를 지그재그로 피하며 점차 적함대를 사정거리로 넣기 시작하자 뒤따라 플레쳐급 구축함 USS HOEL(DD-533), HEERMANN(DD-532)이 그 뒤를 따라 전선으로 향했고 플레쳐급 덩치에 절반 간신히 넘는 존 C. 버틀러급 호위구축함 USS Samuel B. Roberts(DE-413)도 존스턴을 따라 적진으로 뛰어들게 된다.


연막을 피워 올리며 적진으로 돌진한 존스턴의 첫 목표물은 모가미급 중순양함이었던 쿠마노였다. 10문의 6.1인치(155mm) 주포를 모조리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존스턴을 향해 날렸지만 한 발의 명중탄도 맞추지 못했고 비로소 유효사정거리 안으로 접근한 존스턴은 5인치 주포로 쿠마노의 함교를 날려버리고 어뢰로 선수를 명중시키는 성과를 내게 된다. 여섯 배가 넘는 덩치를 가지고도 어이없이 일격을 당한 쿠마노는 바로 전투불능 상태로 떨어졌고 바로 이웃하고 있던 동급의 중순양함 스즈야도 맥없이 선수를 돌리는 쿠마노를 피하다 밀려든 TAFFY-3의 폭격기들에게 육상용 폭탄을 두들겨 맞고 전열에서 빠지게 된다. 순식간에 구축함 한 척이 자신보다 덩치가 여섯 배나 큰 중순양함 두 척을 전투불능 상태로 빠뜨려버린 것. 이쯤 되면 운도 따라주고 있다고 할만했지만 쿠마노가 이탈하자마자 전함 공고와 야마토로부터 날아온 포탄이 존스턴에 명중하게 된다. 포탄의 폭발에 휘말리지 않고 관통당하는 수준의 손상을 입었기에 마침 몰려든 비구름 속으로 피하며 적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긴급 수리에 들어가게 된다.

USS Samuel B.Roberts(DE-413) 사마르 해전 당시 가장 작은 전투함이었지만....

존스턴에 이어 일본 함대에게 빅엿을 날린 배는 사마르 해전에 참전했던 배들 중 가장 작은 덩치의 호위구축함 사무엘 B. 로버츠였다. 덩치는 존스턴의 절반(배수량 1,370톤)에 가까스로 미치는 작은 배였지만 초전에 자신의 덩치보다 10배 더 큰 중순양함 초카이에게 어뢰를 발사하고 동시에 중순양함 치쿠마와 포격전을 시작하게 된다. 명중탄에 주포 2문 중 하나를 잃었지만 치쿠마의 함교와 3번 주포를 날려버리며 선전하게 된다. 가용할 수 있는 모든 포탄을 사용하고 조명탄까지 사용하며 적함에 화재까지 일으켰지만 뒤이어 날아든 전함 공고의 14인치 주포에 얻어맞고 전투불능 상태에 빠지게 된다. 

USS HOEL(DD-533)

존스턴을 따라 적진으로 뛰어들었던 4척 중 가장 먼저 최후를 맞은 배는 USS HOEL이었다. 역시 존스턴과 동급의 플레쳐급 구축함으로 적진에 뛰어들자마자 전함 공고를 앞에서 틀어막고 주포와 어뢰를 쏘며 분전했지만 전함 공고의 호위함대에게 포위당하여 40여 발의 명중탄을 얻어맞고 8시 55분, 침몰했다.


이처럼 존스턴의 뒤를 이어 전장으로 돌입한 구축함들에 의해 일본 함대의 진격이 지연되고 있는 동안, TAFFY-3의 긴급한 요청에 TAFFY-1과 2의 항공기들이 일본 함대를 향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이전 긴급 이륙을 감행하느라 제대로 된 무장을 하지 못했던 TAFFY-3의 항공기들과 달리 이들은 함정들을 상대하기 위한 무장을 탑재한 상황이었고 전황은 서서히 일본 측에서 미국 측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피해를 감수하고 뛰어들었던 네 척의 구축함 중 한 척이 침몰하고 한 척이 전투불능에 빠진 상황에서 존스턴은 수리에 집중하고 있었고 이 사이 또 다른 영웅이 등장하게 된다. 플레쳐급 구축함 USS HEERMANN(DD-532).


전장에 뛰어든 히어만은 역시 자신의 덩치보다 다섯배에 이르는 중순양함 치쿠마에게 포격을 가하며 전함으로 향하는 진로를 틀어막은 순양함들의 방어진 안으로 뛰어들었다. 5인치 주포로는 큰 타격을 입히지 못할 것을 이미 알았던 탓에 타격을 가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한 것이 21인치짜리 산소 어뢰였고 순양함들의 뒤에 숨어 아군에게 원거리 포격을 날리고 있던 전함 공고와 중순양함 하구로를 향해 어뢰를 발사했다. 순양함들 사이를 뚫고 전함 하루나를 향해 가지고 있던 모든 어뢰들을 부챗살처럼 펼쳐서 발사했지만 이 모든 어뢰 공격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지만, 공고, 하루나, 하구로가 모두 어뢰를 피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릴 무렵 그들을 지나친 어뢰는 곧장 쿠리다 제독의 기함 야마토와 또다른 거함 나가토를 향했고 갑작스럽게 떼로 등장하여 달려오는 어뢰를 피하기 위해 두 척의 대형전함들은 회피기동을 하며 전장에서 벗어나고 만다. 2,500톤짜리 구축함이 대낮에 일본 해군의 자랑이었던 두 척의 초대형 전함을 전장에서 몰아낸 것. 


하지만, 함께 전장에 돌입했던 사무엘 B. 로버츠가 전함 공고와 호위 구축함들에게 무력화되며 야마토와 공고, 나가토의 포격이 히어만에게 집중되기 시작했고 결국 주포 포탑 하나를 상실하고 뱃머리에 직격한 포탄으로 인해 함수가 물에 잠기기 시작하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된다. 하지만, 꼼짝없이 희생되기 직전 하늘에서 구원군이 투입되는데 바로 TAFFY-2의 뇌격기 편대 4대가 나타난 것. 

TBF Avenger 뇌격기

제대로 된 무장을 하고 나타난 항공기들의 등장에 양측의 희비가 엇갈리던 상황, 히어만을 쫓던 중순양함 치쿠마는 함미에 히어만을 지원 나왔던 어벤져 뇌격기의 어뢰가 명중하게 되고 기관부와 방향타를 잃고 조종불능 상태로 빠지게 된다.


지원 항공 병력이 속속 투입되기 시작하자 히어만의 어뢰를 피해 전장을 벗어났던 지휘관 구리다 중장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항공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진격과 후퇴 중 한 가지를 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 바로 이즈음 처음 돌입했던 존스턴이 긴급수리를 마치고 다시 전장으로 복귀하게 된다.


결정을 못 내리고 있던 상황에서 일본의 함대는 계속 호위 항모들을 추격하고 있었고 점점 포격이 미 항공모함 인근에 떨어지기 시작하던 상황, 구축함 4척을 이끌고 항모를 추격하던 중순양함 야하기 앞을 막아서고 포격을 시작한 존스턴. 당황한 일본 함대가 발사한 어뢰들을 떨어진 기동력으로도 피하는 놀라운 회피기동을 보여주며 남은 포탄을 모조리 쓸어 넣던 존스턴의 운도 결국 여기에서 다하고 말았다. 이어진 포격에 주포와 모든 기관을 상실하고 말았고 함장의 전원 퇴함 명령이 떨어지고 30분 후, 태평양 아래로 침몰하고 만 것.

호위 항모 USS Gambier Bay(CVE-73). 사마르 해전 당일 일본에게 격침당한 유일한 항모였다

전선에서 구축함들이 사투를 벌이는 동안 TAFFY-3의 본진에서도 희생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일본 함대의 원거리 포격에 직격된 USS Gambier Bay(CVE-73)가 격침되는 피해를 입게 된다. 겜비어 베이는 태평양전쟁 중 항공기가 아닌 전함의 포격으로 인해 침몰에 이른 최초의 항모로 남았다. 이튿날, 일본의 가미가제 공격에 의해 또 하나의 호위 항모 St.Lo(CVE-63)가 희생되며 1,583명의 장병을 잃게 되는데 이처럼 TAFFY-3는 사마르 해전에서 세 척의 구축함과 두 척의 호위 항모, 그리고 그 승조원들 다수를 잃는 적지않은 타격을 입었다.

자살공격 직후 기관 유폭을 일으키며 폭발한 USS St.Lo(CVE-63)

구리다 제독은 항공전력의 부재와 애초 기함이 전장에 벗어나며 상황 파악 자체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결국 후퇴를 선택했다. 이렇게 TAFFY-3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애초 임무였던 상륙병력과 보급 함대를 보호하는 임무를 완수하게 된다. 쿠리다의 후퇴에 따른 수많은 가설이 쏟아져 나왔지만 만약 쿠리다가 TAFFY-3을 초전에 일소하고 상륙 중이던 육군 병력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고 하더라도 전황은 이미 일본이 이길 수 없는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목숨을 바치며 함대를 구한 세 척의 구축함과 두 척의 호위 항모의 희생은 일본에게 사마르 해전에서 상실한 세 척의 중순양함보다 더 큰 상처를 입히게 된다. 이후, 그 어떤 전선에서도 이와 같은 규모의 함대를 꾸릴 수 없었던 것.


승조원 327명 중 에반스 함장을 포함한 186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피해를 입었지만 가장 먼저 적진으로 돌격했던 존스턴은 불리한 상황에서도 불굴의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승산이 없던 해전을 승리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에반스 함장에게는 사후 의회 명예훈장(Medal Of Honor)이 추서 되었으며 그가 소속되어있던 TAFFY-3에게는 대통령 부대표창의 영예가 주어지게 된다.


그리고.....

끝까지 살아남아 영예를 본 USS HEERMANN(DD-532)

주포를 직격 당하고 6명의 승조원을 잃고서도 끝까지 포격을 멈추지 않고 싸웠던 히어만은 함께 돌격했던 전우들이 죽어서 받은 영예를 살아남아 보게 된다. Amos Hathaway 함장은 명예훈장 바로 아래의 영예인 해군 십자장을 수훈하였고 Heermann 역시 전후까지 해군의 주전력으로 활동하였다. 

1957년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1961년, 아르헨티나 해군에 공여되었으며 1982년까지 Almirante Brown이라는 이름의 선박으로 활동하다 폐기되며 군함으로써의 수명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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