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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재성 Apr 02. 2016

HMS ENDURANCE

역사에 남은 배들

배는 사람의 손으로 움직인다. 이것은 인간이 처음으로 뗏목을 엮어서 바다로 나갔을 때나 최첨단 선박이 위성으로 위치를 잡아가며 돌아다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변치않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 배를 움직이는 선원들의 역량은 여전히 수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최초의 세계일주 항해에 나섰던 마젤란과 함께 했던 산티아고호나, 캡틴 제임스 쿡과 함께 했던 인데버호, 콜롬버스와 함께 신대륙으로 향했던 산타마리아호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낸 배들은 그 배가 위대해서라기 보다는 그 배를 이끌던 선원들의 역량에 따라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배의 이름들이 여전히 역사의 한 자락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사람의 힘이 가장 위대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위업을 달성함에 있어서 그 배들의 역할이 적지 않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리라.

Endurance

1914년 3월, 영국은 1년 전 남극점에 도달했다가 세상을 떠난 로버트 팰컨 스콧의 뒤를 이어 남극횡단 탐험대를 꾸리게 된다. 이렇게 꾸려진 탐험대는 스콧 이전 남위 81도까지 접근했던 유일한 영국인이었던 어니스트 셰클턴(Sir Ernest Henry Shackleton)을 대장으로 총인원 28명의 승무원으로 구성되었고, 영국 해군의 관측함이었던 엔듀어런스 호에 몸을 싣고 남극으로 향하게 된다. 


남극에 접근하여 탐험을 시작할 무렵,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는데 출발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기던 중 당시 영국 해군장관이었던 윈스턴 처칠이 출발을 명령함으로서 시작된 남극탐사,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훗날 인류의 가장 '위대한 실패'로 까지 일컬어지는 섀클턴의 2차 남극 탐험의 시작이었다.

재난의 시작 - 부빙군에 갇힌 엔듀어런스호

남극의 웨들 해에 진입해서 상륙을 시도하던 섀클턴 탐험대는 남극이 얼어붙지 않는 여름을 택해 탐험을 시작했지만 예년과 달리 얼음이 녹지않고 오히려 부빙군(떠다니는 작은 빙산군)으로 변하여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계절상으로는 분명히 한여름이었지만, 바다가 꽁꽁 얼어붙고 말았던 것이다. 이때부터 엔듀어런스 호는 1915년 1월 20일부터 10월 27일까지 아홉달을 얼음에 갇힌 채 남극해를 표류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바다사자와 팽귄들이 풍족히 머무는 곳에 머물게되면서 식량조달과 같은 임무에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았지만 조금 녹았던 부빙군이 겨울을 앞두고 얼어붙기 시작하면서  재앙이 시작되었다. 얼음사이에 낀 배가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지기 시작한 것. 결국 운명의 날인 1915년 10월 27일, 엔듀어런스호는 공식적으로 선박으로는 사형선고를 받게된다.

부빙사이에 끼어 난파된 엔듀어런스호

섀클턴 탐험대는 개인소지품 대부분을 버리고 쓸모 있는 물건들만 건져낸 후, 부서진 배 근처에 임시캠프를 설치했고 이후 비교적 안전한 부빙을 찾아 위에 'Ocean Camp'라는 이름의 새로운 캠프를 설치한 후, 난파해 있던 인듀어런스호의 잔해에서 쓸 만한 물건을 모조리 꺼내며 장기전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11월 21일, 인듀어런스 호의 잔해도 물 속으로 가라앉았고, 이후 섀클턴은 과거 스콧의 탐험대가 남극탐험을 시작하면서 물자를 비축해둔 바 있었던 폴렛 섬으로 진로를 잡고 이동을 시작하게 된다. 부빙군이 이동하면서 탐험대 역시 계속 육지에서 멀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파한 엔듀어런스호에서 Ocean Camp로 짐을 옮기던 썰매개들

이때부터 섀클턴의 탐험대의 목숨을 건 탐험이 시작된다. 유빙군이 갈라지기 시작하면서 옮기는 캠프마다 위기에 처하기 시작했고 남극으로 찾아온 겨울의 혹독함이 함께 덮쳐오기 시작한 것. 1916년 4월 15일, 마침내 빙산 위의 생활을 마치고 남극대륙의 엘레판트섬에 상륙하게 되었지만 무인도에 아무 식량도 얻을 수 없는 곳이었던 탓에 결국 대장이었던 섀클턴은 결단을 내리게 된다. 가장 가까운 유인도인 사우스 조지아섬 - 국제 포경전진기지가 있던 - 으로 가서 구조대를 데리고 엘레판트섬에 고립된 나머지 인원들을 구하러오겠다고 선언한 것. 4월 22일, 섀클턴은 엔듀어런스호의 Rescue Boat였던 제임스 커드호에 5명의 자원자들을 태우고 한겨울 남극해를 1,300km 가로지르는 장도에 오르게 된다. 아무런 방법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자살행위로 보여질만한 일이었지만 엘레판트섬을 떠난지 16일만에 사우스 조지아섬에 도착하게 된다. 

James Caird호에 올라 사우스 조지아섬으로 향하는 섀클턴과 일행들

당시 사우스 조지아섬에 있던 노르웨이 포경선들의 도움도 받았지만 한겨울 남극해로 들어갈만한 배를 찾기는 좀처럼 어려웠고 한창 전쟁 중이던 모국(영국)의 도움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엘레판트에 남겨진 나머지 탐험대원들을 구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섀클턴. 결국 칠레 정부로부터 증기 예인선인 엘코호를 빌려서 사우스 조지아섬에 도착한 지 4개월만인 8월 30일, 다시 엘레판트섬으로 돌아가 나머지 22명의 탐험대원들을 구조하게 된다. 역사상 2년 가까운 기간을 극지방에 아무런 보급없이 고립된 상태에서 단 한 사람의 인명도 잃지않고 귀환하는 기적은 전무후무한 것이었는데 이와 같은 섀클턴과 그의 탐험대의 전설은 지금까지도 놀라운 일로 회자되고 있다. 

Sir Ernest Henry Shackleton(1874~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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