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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재성 Mar 23. 2016

SS GREAT EASTERN

역사에 남은 배들

대양을 가로지르는 선박들은 이미 대항해시대를 거치며 엄청나게 쏟아져나왔지만 실상 기술력이 뒤받침해주지 않던 시절에 대양을 건너는 일은 늘상 큰 희생을 치르기 마련이었고 바다는 늘 배와 선원들을 집어삼키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증기기관이 발명되며 시작된 산업혁명의 불길은 바다를 향한 인간의 도전에도 기름을 부었고 더이상 바람에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기관을 장비한 배의 출현은 적도무풍대 - 적도 부근에서 지구의 동서로 뻗어 있는 기압골 영역을 뜻하는 말로 지표면이 흡수하는 태양복사에너지의 양이 어느 지역보다 많아 대기의 상승 운동만이 발달하여 바람은 거의 불지 않는 지역 - 에 발이 묶여서 바람이 불면 움직이고 바람이 불지않으면 죽음을 기다려야했던 바다의 선배들이 공포에서 벗어나는 개가이기도 했다.

 

보다 빨리 움직이고 무엇보다 스스로의 힘만으로도 달려갈 수 있는 기선의 출현, 그것은 대륙과 대륙사이의 물류의 움직임도 빨라지는 것을 의미했고 그에 따라 배의 크기도 점점 커져야 했다. 하지만, 큰 덩치를 움직이기 위한 기관의 크기와 힘, 그에 따라 엄청나게 소모되는 연료를 감당하는 이중고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대형선의 건조는 큰 모험이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만재배수량 17,400톤, 전장 211미터, 승객정원 4,000여명, 승무원 400명.


최근의 눈으로는 그다지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흔한 배의 재원이지만 운항을 시작한 해가 1858년이라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여전히 외륜선 - 배의 현측에 물레방아 모양의 휠을 돌려서 움직이던 원시적인 기선 - 과 프로펠러를 사용하는 배들이 함께 떠다니던 시절이었던 당시의 눈으로 이 배는 그야말로 바다를 떠다니는 섬과 같은 크기였던 것이다. 

SS GREAT EASTERN. 우현에 접안한 다른 배의 크기와 비교된다.

그 배가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GREAT EASTERN호이다.

6개의 마스트 - 돛을 달 수 있는 기둥 - 에 외륜 2개, 스크류 2개를 지닌 이 거대선은 애초 영국에서 호주까지 달려가기 위해 만들어진 배였다. 하지만, 늘 ‘처음 총대를 맨’ 다른 모든 것들이 그러했듯 이 배는 출생 때부터 큰 문제를 안고 있었다. 


먼저 이와 같은 대형선이 처음이었던 탓에 발생한 설계상의 문제가 발목을 잡게 되는데 처음 진수 당시 배의 선수와 선미의 균형이 맞지 않아 선체가 앞으로 틀어박히는 사고를 겪었다. 뿐만 아니라 운항이 시작된지 1년만인 1859년, 기관실의 보일러가 폭발하여 5명의 화부가 숨지는 인명사고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레이트 이스턴호의 가장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는데 애초 원했던 15노트 이상의 고속이 나오지 않았던 것도 오히려 사소해 보일 정도의 결정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당시까지 이 배가 정박할만한 항구가 손가락에 헤아릴 정도였다는 것. 정박할 곳이 얼마 없다는 얘기는 갈 곳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와 같은 것으로 결국 수지타산을 맞춘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치명적인 문제였다. 


이와 같은 문제로 애초 화물운송과 여객운송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했던 목표를 잃고 1865년부터는 유럽과 미국 사이의 해저전선 부설선으로 그 명을 이어가게 된다.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않게 된 후, 리버풀 항구에 정박하여 배의 목적을 잃고 사교클럽과 선상 호텔로 전용되는 운명으로 전락했다가 1888년, 당시의 기준으로는 그다지 늙은 나이가 아닌 30살의 선령을 끝으로 폐선된다.


그레이트 이스턴호의 시도는 결국 참담한 실패로 돌아갔지만 루시타니아호가 건조된 1906년까지 세계 최대의 상선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후 운항을 시작한 대형 정기선의 시작을 알린 역사적인 선박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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