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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재성 Mar 30. 2016

HMS PRINCE OF WALES

역사에 남은 배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던 영국. 전 세계에 식민지를 늘어놓고 승승장구를 구가하던 영국의 황금기를 이끈 것은 역시 막강한 해군력이었다. 무적함대를 잠재운 드레이크,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군을 박살 낸 넬슨, 모두 바다에서 뼈가 굵은 장수들이었고 이들과 같은 전설적인 명장의 뒤를 이은 훈련 잘된 장교들과 수병들, 거기에 뛰어난 전술을 가진 ‘대영제국 해군’은 그 자체로 적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중세를 넘어 범선 시대에 종언을 고한 뒤에도 여전히 영국 해군은 명성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었고 그를 바탕으로 독일 잠수함에 줄기차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1차 대전을 승리로 이끄는 - 미국의 도움이 큰 힘이 된 것은 부인하지 못하겠지만 - 저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거함 거포 주의에 머물러있던 영국 수뇌부의 판단은 이후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에서 그 대가를 치르게 되는데 그 ‘대가의 반열(?)’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전함이 바로 PRINCE OF WALES이다.

영국 해군의 상징이었던 HMS PRINCE OF WALES

 1941년 3월 31일 취역한 PRINCE OF WALES는 전장 227미터가 넘고 10개의 14인치포를 장비한 대형전함으로 최고속도도 28노트를 넘는 괴물이었다. 큰 기대를 안고 태어난 전함이었지만 시작은 좋지 않았는데 취역 두 달만에 독일의 최강전함인 비스마르크와의 일전에서 기함이었던 HMS HOOD를 일격에 잃고 자신도 조타함교에 일격을 당하고 해전에서 이탈하는 수모를 겪게 된 것.


이후 비스마르크는 다른 영국함대의 추격을 당하게 되고 결국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데 비스마르크에게 치명상을 입힌 것은 함대함의 포격전이 아니라 어뢰를 장비하고 있던 소드피쉬 뇌격기였다. 투하된 어뢰가 함의 타기를 망가뜨린 것. 배를 틀 수 없었던 비스마르크는 영국함대에게 그야말로 맛있는 먹이감이었고 결국 최후를 맞게 된다. 하지만, 영국 수뇌부의 PRINCE OF WALES에 대한 신뢰는 여전했고 1941년 8월, 처칠 수상을 태우고 뉴펀들랜드까지 이동하여 루즈벨트 미국대통령까지 승선, 대서양헌장을 선상에서 체결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Fairey Swordfish 뇌격기

두 나라의 정상이 전함 선상에 오르는 일은 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던 영예였지만 프린스 오브 웨일스의 영광은 딱 거기까지였다.


 1941년 10월말, 태평양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영국은 일본군의 동남아 침략을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함대를 아시아로 파견할 것을 결정하고 프린스 오브 웨일즈와 리펄스 두 척의 전함을 주력삼아 항모 인터미터블을 추가한 전력으로 동양함대를 구성, 싱가폴로 파견한다. 하지만, 항모 인터미터블이 출항 직후 좌초하는 불운을 겪게되며 전함의 전력으로만 일본을 견제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대체 항모조차 수배되지 않은 상태 - 대체 항모였던 허미즈(Hermes)는 선속의 문제로 제외되고 만다 - 에서 아시아를 향한 이 모험은 끝내 참담한 실패로 끝나게 된다.


 태평양 전쟁이 시작된 직후인 1941년 12월 10일, 육상에서 급습한 일본 항공기들의 공격을 맞아 말레이지아 해안에서 두 척의 전함 모두를 잃고 말았다. 충분한 대공화기로 적항공기의 내습에 방어력을 확보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기습 즉시 절망으로 바뀌고 말았고 야심차게 일본의 동남아시아 진출을 저지할 수 있을거라 여겼던 영국 동양함대는 전멸하고 말았다.


 이후, 일본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동남아시아에 대한 침략에 나설 수 있었고 싱가폴, 필리핀등을 석권하며 태평양 전쟁 초기의 파죽지세를 유지하게 된다.

퇴함 중인 선원들. 동양함대 사령관이었던 필립스 제독과 리치 함장은 배와 운명을 같이 했다.

 항공기에 의해 기동 중이던 전함이 침몰에 까지 이른 사건은 거함거포주의에 기대어 있던 연합군 측에 큰 충격을 주었고 이후 항공기의 엄호없는 전함의 단독 공격은 무모한 일로 바뀌게 된다. 프린스 오브 웨일즈의 최후는 진정한 거함거포 주의의 종언을 고하는 사건으로 이후 전함 자체가 현대전에 어울리지 않는 장비로 바뀌어 도태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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