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걱정, 염려. 그로인한 불안, 불면에 시달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둔감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미래에 대한 불안, 삶에 대한 불안, 직장에 대한 불안, 건강에 대한 불안 등은 있기 마련이다. 결국, 걱정과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내일은 나의 영역이 아니다!
만약 오늘 밖에 살 수 없다면, 내일은 나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내일은, 내일 벌어질 일들은 나의 소관이 아니며 내일보다 더 먼 미래의 날들은 더더욱 컨트롤 영역 밖에 있다. 하지만, 우리 중 대부분은 내일, 그리고, 앞날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잠을 설치고, 오늘을 낭비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집착을 버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접어두는 것이다. 그리고, 주어진 오늘, 주어진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열심히 살았지만, 달라지는 게 없어요"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럴 수도 있다. 주어진 시간을 성실하고 충실히, 그리고 열성을 가지고 살았지만 내일이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엄격히 주어진 오늘을 100% 충실하게 살았는지 자문해 보면, 일정 부분은 나태로, 일정 부분은 내일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낭비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단하루, 며칠을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내일의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조급한 것이다.
총, 폭탄보다 무서운 걱정과 불안
어느 책을 보니 제2차 세계대전때 사망한 젊은이들은 대략 30만명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들, 남편을 전장으로 보낸 가족들, 즉, 배우자, 부모들이 자신의 아들과 남편이 전사할까봐 걱정하고 염려하며 불안에 빠져 심장병 등으로 사망한 미국시민의 수가 대략 100만명이라고 한다.
거듭 말하지만 어느 누구도 걱정과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것들을 줄여나가는 것, 쓸데없는 걱정과 불안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경우를 줄여나가는 것이다. 총탄보다 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바로 스스로 야기한 걱정과 불안, 염려임이 분명하다.
타살보다 더 많은 자살!
걱정, 불안, 염려 등은 자기부정을 확장시킨다. 이렇게 되면 삶의 의욕이 떨어지고, 잘 하던 일도 하기 싫어지거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까지 악화될 수 있다. 심장질환, 혈관질환 등은 물론 정서적으로도 절망에 빠져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극단적인 선택, 즉,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이들의 수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 자살로 죽는 경우가 타살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보다 더 많다. 걱정과 불안의 지속이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형편없는 사람이라도 부모로부터, 형제로부터, 친구로부터 소속감을 가질 수 있다.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생각이 들 때면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잠시 지쳐서 그런 것이다'라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 개별 각각은 무엇과도 교환할 수 없는 나름의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태어났다. 분명하다.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그 속에 걱정과 불안을 포함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