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같고 다름이 아니라
호감 있는 사람에게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면 관심 세포가 더욱 커지곤 했다. 운명까진 아니더라도 어떤 연결고리를 찾은 것 같았다. 특히 취향이 대중적이지 않을수록 기쁨은 사뭇 커졌다. 그의 휴대폰에서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을 발견하거나 들고 온 가방이 내 것과 매우 비슷할 때.
그런데 취향은 관계의 시작에 영향을 미칠 뿐이다. 조금 더 알아가면 비슷해 보이던 취향에서 불현듯 차이를 발견하고, 서로 반대되어 끌렸던 관계는 맞물리는 점이 도저히 없다는 이유로 종결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관계의 지속은 취향의 같고 다름이 아닌, '내 취향이 그에 의해 확장되어도 괜찮은가'에 대한 답변에 달려있다. 내 세계의 잠금장치를 풀 만큼 그의 취향에 매력을 느껴야 한다. 타인의 취향이 내 세계에 입주하는 것에 거부감이 든다면 관계는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인정은 받아들이는 것과 다르다. 인정은 그의 세계에 남아있지만, 받아들이는 건 내 세계의 침투한다는 의미다. 대부분의 사소한 다툼은 인정조차 하지 못해서 시작된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나는 쇼스타코비치나 바흐의 연주곡을 듣고, 그는 에디 히긴스나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등의 재즈 음악에 흥미가 생겨 앨범을 사들이고 있다. 내가 알려준 재즈, 그가 알려준 클래식. 세계의 확장은 자연스럽고 느릴수록 부작용이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