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성을 개조한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크론베르크로 왔다.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다이애나 비로 나왔던 영화 <스펜서>의 배경이기도 하다. 늦은 밤에 체크인을 해서 몰랐는데, 빛이 들어오니 성의 곳곳에 박물관을 온 듯, 귀족들의 초상화와 은으로 만든 촛대, 고급스러운 장식품들이 여기저기 존재감을 드러낸다.
든든하게 아침을 먹은 후 산책에 나섰다. 마트와 식당이 있는 시내까지 가려면 거대한 잔디밭을 뱅 둘러 지나야 하는데, 현재 골프장으로 사용 중이다. 아마 골프장이 아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우회하여 지나갈 필요는 없을 테다. 원래 이 지역에 살던 동물들 또한 서식지와 통로를 모두 빼앗긴 셈이다. 그뿐 아니라 엄청난 양의 물을 지속적으로 써야 하는 환경파괴의 주범이 바로 골프장이다. 이마저도 아주 소수의 사람만을 위한 것이기에 골프장도 골프를 취미로 즐기는 사람도 전혀 달갑지 않다. 이 성도 사유재산이고 주변 잔디밭을 놀리기보다 어떻게든 수익을 내려고 골프장으로 만든 거겠지만 이용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아쉬울 따름이다.
산책길에서 만나는 이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눴다. 큰 개 두 마리를 산책시키는 노부부는 강아지들에게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기와 앉기 재주를 선보이고 우리는 충실한 관객이 되어 환호했다. 여행하며 노부부나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어떻게 하면 근사하게 나이들 수 있을까 생각한다. 그동안 관찰하며 얻은 지점은 호기심을 잃지 않고 계속 배우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빨리 흐른다고 느끼는 이유는, 경험해본 것이 많아지면서 비슷비슷한 하루가 반복되면 뇌가 이를 하루가 아닌 뭉텅이의 시간으로 셈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주 작더라도 매일 새로운 요소를 접하고 잘 모르면 시간을 들여 배워야 한다. 여전히 배울 게 많다. 그럼 내일은 어떤 걸 배울 수 있을지 생각만으로 설레지 않는가. 한국에 돌아가서도 독일어를 계속 배우고 수영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
REWE(레베)라는 마트에서 초밥 도시락과 병맥주 두 병을 사와 공원의 분수를 바라보며 벤치에서 점심을 먹었다. 나름 유동인구가 있는 시내로 내려왔으나 평일 낮이기도 하고 다들 바삐 일하러 갔는지 마을 전체가 적막하다. 딱히 마음 쓸 것도 할 일도 없었다. 아이를 돌보는 할머니, 콜라로 “짠” 건배하고 마시는 부자와 함께 해바라기를 하며 맥주를 마셨다. 베를린에서 적어두었던 위시 리스트에 있던 ‘공원에서 점심먹기’를 지웠다.
10월 23일, 독일 크론베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