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그런 곳은 없다
어제 만난 독일인 친구에겐 프랑크푸르트는 그저 다른 도시를 가기 위한 거점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무색하게 프랑크푸르트 구시가를 고샅고샅 누볐다.
슈타델 미술관Städel Museum에 내가 좋아하는 막스 리버만 그림이 있어 반려인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막스 베크만Max Beckmann이란 화가는 자화상을 표현주의의 마지막 작품으로 그리곤 그 이후 기존과는 다른 자신만의 그림을 그렸다. 선을 긋듯 확연히 달라진 그림에서 날카롭고 선명한 의지가 보였다. 나치 치하에서는 ‘퇴폐적인 그림’ 이 모두 벽에서 내려졌다. 나치를 비판하거나 그들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는, 자유와 혁명을 부르짖고 사람들에게 더 깊은 사유를 요하는 그림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퇴폐적인 그림’에 속한다. 괴벨스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거나 나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모두 잡아서 수용소에 보냈기 때문에 배크만도 포함됐다.
프랑크푸르트는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에 의해 많이 파괴되었다. 그 흔적은 파괴된 모습 때문이 아닌, 누가 봐도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새것 같은 건물을 통해 처참함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하나 독일은 늘 본인들이 저지른 잘못으로 온전한 동정도 받지 못하고 슬픔도 그들의 몫이 아니다.
구시가의 유서 깊은 교회에 들어가 50센트를 기부하고 내 야구팀의 건승을 빌었다(포스트시즌에 마침 3위인 팀과 경기 중이었다) 반려인도 옆에서 기도하는데 좀 여러 가지를 비는 것 같아서 50센트면 소원 하나밖에 못 빈다고 하니, 1유로를 냈다고 두 가지를 빈다고 한다. 경제관념이 투철한 독일인의 피가 하루 만에 흐르기 시작한 걸까.
뢰머광장Römerberg이 보이는 식당에서 사과 와인을 마시며 일기를 쓴다. 이 도시엔 한인이 많다더니 광장 한 가운데에 한국인들이 부산엑스포 개최를 응원한다는 선전표어를 만든다. 주말이라 놀러 나온 주민들과 여행자들이 한데 모여 광장 전체에 활기가 넘친다. 이런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며칠 더 이곳에 있고 싶어진다.
프랑크푸르트를 떠올리면 대체로 ‘이동’과 ‘환승도시’가 따라 붙었다. 기차역으로 공항으로 프랑크푸르트를 지나가거나 밟기만 했지 밖을 나가 잠을 자고 시내를 제대로 둘러본 건 처음이었다. 예전부터 어떤 지역에 관해 ‘별 거 없는 곳’ ‘하루 이틀이면 충분한 도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멀리해 왔다. 세상에 그런 곳은 없다. 특별한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사람이 세상을 지극히 획일화된 기준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함이 없다고 여기는 건 이 도시가 아니라 바로 그의 상상력이 빈곤해서다.
10월 2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