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의 제철은 언제인가

여름수영 겨울수영

by 중앙동 물방개

최근 유행했던 말 중에 ‘제철코어’가 있다. 기후위기로 봄, 가을 같은 선선한 계절은 짧아지고 흡사 재난 같은 여름이 길어지면서 각각의 계절을 ‘제철에 맞는 무언가’를 하면서 소중히 보내자는 움직이라고 할까. 보면 뭐 특별한 건 없다. 어르신들이 여름에 원두막에서 수박 드시며 옆집 영감 욕하고 겨울엔 뜨듯한 아랫목에서 귤 까먹으며 화투치는 것과 유사하다.

아무튼 저마다 제철코어가 있다면, 나는 계절과 상관없이 하는 게 있는데 여기까지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수영’이다.


보통 사람들은 수영이 여름과 가장 맞닿아 있다고 여긴다. 이를테면 ‘한강에서 수영하기’는 일반적으로 여름 제철코어 목록에 넣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수영은 겨울에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이만하면 되겠지’ 싶을 정도로 껴입어도 속수무책인 겨울의 찬바람을 맞으며 수영장에 가서 한 겹의 폴리에스테르 천에 의지해 차가운 물속으로 뛰어들며 “앗 차거” 외마디 비명으로 시작하는 겨울의 수영.

가을까지 잘 다니던 이들도 자연히 겨울에는 곰처럼 자취를 감춘다. 그러면 여름 내내 수영을 배우려고 홈페이지에서 새로고침 버튼을 눌렀으나 수차례 실패를 겪은 이들 중, 마지막까지 집념으로 포기하지 않은 이가 그 빈자리를 채우고 수영의 세계에 입문한다. 하여 겨울엔 수영장의 수온을 0.3도 정도 높여줄 열정 가득한 신규 수영인과 배가 고프면 밥을 먹듯 눈을 뜨면 수영장을 찾는 생활 수영인들이 모인다.


사실 수영 자체는 날씨나 기온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현재 기온에 따라 물과 실내온도를 조정하기 때문에 너무 춥거나 덥지 않게 수영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 문제는 수영장까지 가는 길이다. 나는 집에서 수영장까지 대략 13분을 걸어가는데 겨울엔 폭설, 여름엔 폭염과 폭우가 동행한다.


여름엔 그늘을 찾아 이리저리 이동하며 걷는데도 낮기온이 체온을 육박하기에 땀이 쏟아진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그분도 이랬을까 한없이 괴로우나 빠르게 씻고 시원한 물에 풍덩 뛰어들 모습을 상상하면 발걸음이 빨라지고 수영이 기다려진다. 어쩌면 더위로 달궈진 몸과 얼굴은 시원한 물에 뛰어들기 위한 예열단계가 아닐까. 더불어 여름엔 탈의실에서 샤워실로 가기까지 벗어야 할 옷이 몇 겹 되지 않는다. 반소매 티셔츠와 속옷 정도, 속옷이 일체화된 상의를 입는다면 더욱 빠르게 샤워실로 직행할 수 있다. 이런 시간 단축이 여름 수영의 묘미다.

영하 15도에 폭설까지 내리는 아침 7시에 수영장에 가며 생각한다. 오늘은 과연 몇 명이나 올까. 날씨도 날씨지만 겨울엔 특히 감기 등 장애물이 많이 등장해서 출석률이 다른 계절보단 낮은 편이다. 그런데 아무리 사람이 적게 와도 7명 이하였던 때는 없다. 한 레인에 15명에서 20명까지도 등록한다고 치면 삼분의 일은 꼭 수영에 온다는 의미다. 나는 수영장의 항상성이라 부른다. 날이 아무리 궂어도 독감이 유행해도 올 사람은 반드시 온다. 어떤 사람들에겐 수영은 몇 년의 세월 동안 굳은살처럼 생긴 루틴이라 할지 말지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그냥’ 하는 것. 폭설을 뚫고 수영장 가는 길에 유명 만화 이름처럼 ‘나혼자만 레벨업’ 되어 있을 걸 상상하지만 결국엔 다 같이 열심히 하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다. 모두들 함께 레벨업 되어도 내가 손해 보진 않으니까 어쨌든 매일 나갈 수밖에.


겨울은 잘 드러나진 않아도 실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는 시기다. 물론 그 시기엔 잘 모른다.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인 줄 알았던 것처럼 날이 따뜻해지고 수영장에 회원들이 많아졌을 때 어느 날 몇 바퀴를 아무리 돌아도 더는 이전처럼 힘들지 않다는 걸 느끼면 혹시 이게 그건가 싶다.

여름은 가는 길이 고되어도 청량함 덕분에 기다려지고 겨울은 자꾸 움츠러들고만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영을 했다는 효능감을 평소보다 배로 느낄 수 있다. 해서 수영은 모든 계절이 제철이라는 말을 남기며 체온을 높여줄 반신 수영복을 구경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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