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7일 응원하는 야구팀 9연패 한 날
반려인 일기를 읽다 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가 있다. 바로 응원하는 야구팀 이야기다. 점수와 승패를 언급하고 그 결과에 따라 비난과 안도가 잇따른다. 예를 들면 "OO(응원하는 팀)는 오늘 14:2로 졌다" "밖에서 식사할 땐 분명 3:0으로 이기고 있었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역전패를 당했다" 그의 일기 속 야구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우리팀은 매일 어떻게 색다른 방법으로 질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팀 같다. 분노가 체념이 되고 오기와 찰나의 기쁨이 뒤섞인 일기는 2018년에 정점을 찍는다. 그해 우리팀은 처음으로 리그 꼴찌를 했다. 창단 이후 내내 가을야구를 했던터라 충격은 꽤 컸다.
응원하는 야구팀이 있으면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분노 중 무엇이 더 클까. 그의 일기를 보면 후자같다. 승률이 높지 않을 땐 경기를 안 보거나 조금 덜 좋아하면 분명 화(火)랑도 거리두기를 할 수 있을텐데.
"처가 나에게 뭐하냐고 묻기에 일기 쓰는 중이라고 하니 '오늘 당신의 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바란다'고 기원해주었다. 내 일기가 늘 NC 성적으로 끝나는 걸 안다. 시리즈가 시작하기 전, 우리 팀에게 바란 건 두산에게 그저 1승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 욕심이 끝이 없는지 기적 같은 이변을 일으켜주길 바란다. 한 편으론 이제 이런 마음 졸이는 시즌이 이쯤에서 끝나길 바라기도 한다. 야구는 이런 양면적인 감정으로 본다.
NC는 14:3으로 졌다. 오늘로 9연패다. 심신이 쌩쌩한 상태로 끝까지 가는 게 팬의 마음이지만 선수의 심정이라면 이쯤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매번 극도의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경기를 9번째 하는 중인데 나가떨어지지 않는 게 이상하다. 투수들은 팔도 안 올라가서 카드 서명조차 힘들지 모른다. 처는 내게 왜 당신과 결혼해서 야구에 빠지는 바람에 이런 힘든 응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우리가 엔씨팬이라 얼마나 다행이냐며 만년 꼴찌팀이라면 시즌 내내 그런 기분으로 살아야 한다고 위로해 주었다."
- 2018년 9월 27일 반려인의 일기
화의 원천은 어디에서 오는가. 못하거나 못해서 지는 것도 물론 화난다. 게다가 십여만 원을 들여 지방 경기장에 갔는데 눈 앞에서 역전패를 보면 화를 더욱 참기 힘들다.
화의 정점은 '나는 이렇게 간절한데 왜 너희는(선수, 코치, 감독 등) 나만큼 간절하지 않고 열심히 하지 않느냐'는 것에 있다. 이기고 싶은 간절함, 가을야구 가고 싶은 마음은 응원하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팬들에게만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 그라운드에 있는 선수의 모습에서 나와의 심리적 간격이 느껴지고 그게 점수에 여실히 반영되면 더욱 마음이 안 좋아진다.
이 추측이 터무니없지 않다고 생각한 건 얼마 전 타 구단의 SNS 채널에서 경기 기록을 적은 게시물에 팬들이 남긴 댓글을 보게 됐다. 현재 부동의 1위를 달리는 팀인데도 지면 누구나 마찬가지라는 듯 성난 팬이 많았고 그중엔 ‘계속 1위로 남고 싶은 건 팬들 뿐인 것 같다'는 댓글도 있었다.
여기서 이기고 싶은 사람은 나뿐이지, 또 나만 진심이야. 이렇게 생각하는 팬들의 마음에 공감한다. 동시에 잘하고 싶고 이기지 못해서 아쉬운 건 선수들도 마찬가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뒤를 잇는다. 내 마음이 상대에게도 전해지고 그가 응원의 마음을 에너지원 삼아 유의미한 성과를 낸다면야 더할나위 없이 좋다. 그런 바람과 무색하게 결과는 가차없고 늘 더 잘하거나 실력에 운까지 따라주는 팀에게 승리가 돌아간다.
사람관계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사람이 내 마음을 공감하고 바라는 바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희망하나, 실상 쉽지 않다. 설령 상대가 나의 바람에 따라 줬다고한들 당연한 것이 아니며, 내 마음과 같게 상대를 바꿀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인정할 때라야 나는 나대로 상대를 바라보고 응원하며 건강하게 사랑할 수 있다.
덧. 그래서 야구팬은 영원히 행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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