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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네이 Oct 24. 2021

그 생각은 어디에서 왔을까

5월 7일 통영에 다녀온 날

얼마 전 식당에 갔을 때의 일이다. 식당 안에 실내를 가로지르는 긴 테이블이 있었는데 우리도 그 자리에 앉게 되었다. 자리가 이렇다 보니 마주 앉은 반려인보다 난생처음 보는 옆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기분이 들었다. 


옆자리 일행이 마주 앉은 남성에게 어떤 이슈에 관해 의견을 물었다. 그 남성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자기 생각을 얘기했다. 별로 궁금하진 않았지만 거리 두기가 되지 않는 테이블 탓에 남성의 목소리가 아크릴판을 훌쩍 넘어 또렷하게 들려왔다. 우린 그 이슈를 잘 알고 나름 의견도 있었다. 반려인은 이에 관해 따로 일기까지 쓴 적이 있다. 그 남성의 이야기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내용이었는데 한 스포츠 커뮤니티와 포털사이트 뉴스의 댓글과 거의 일치했다. 커뮤니티 이용자들과 생각이 비슷할 수 있으나 스스로 생각해서 도출한 것이 아닌, 남들도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 하는 말이 근거였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목소리를 크게 내는 글에 많은 사람이 결합할 때 자주 노출되어 힘을 받는다. 반대 의견이 있어도 침묵의 나선 이론에 의해 제기되지 못하거나 올라왔다 한들 다수에 의해 묵살된다. 그러니 주류에 올라탄 의견은 커뮤니티의 폐쇄성에 따라 더욱 공고한 지지를 받고 그게 이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의견이자 성향이 된다. 반대 의견이 자유롭게 오가고 정화를 거치며 더 낫거나 올바른 의견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며 심지어 대세인 의견이 혐오를 포함하거나 사실과 달라도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식당의 옆자리 남성처럼 커뮤니티 게시물과 이를 옹호하는 댓글만 읽은 후, 사실 확인이나 비판적 사고 없이 자신의 의견으로 차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이에 반론이 제기되면 커뮤니티 댓글을 근거로 주장하기도 한다. 그 어디에도 본인의 생각은 없다.


세상만사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고 거기에 자신만의 생각을 갖추는 건 더 어렵다. 다만 내가 중요시하는 이슈에 관해선 자신의 분명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어떤 주제에 관해 고민할 때 뭐가 맞는지 누가 틀린 말을 하는 지 오래 생각할 필요가 없으며, 커뮤니티나 타인의 댓글에 따라 쉬이 휘둘리지 않는다. 


한 창작자가 오랜 세월을 들여 만든 창작물을 소화하고 그게 누적되어 형성된 가치관이라야 의미 있다. 책이나 영화를 접할 때 창작자의 세월만큼은 아니더라도 내가 들일 수 있는 나의 시간과 노력을 투여한 뒤에야 그것을 비로소 접했다고 할 수 있다. 박경리 작가의 '토지'를 쓰는데 들인 43년여의 세월만큼 독자가 '토지'를 읽는 데에 동일한 시간을 들일 필요는 없지만, 유튜브의 <5분만에 토지 읽기>로는 그것을 접했다고 볼 수 없다.

내가 만나는 사람은 자신만의 신념이 명확하한지 그리고 그 신념이나 가치관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연휴에 뭐했냐는 동료의 질문에 통영에 다녀온 이야길 했다. 박경리 기념관을 다녀왔다고 말하며 혹시 <토지>라는 작품을 아느냐 물으니 소설이 아니냐고 묻는다. 나도 너무 길어서 읽어볼 엄두를 못 냈는데, 기념관에 다녀오고 나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토지가 얼마나 기냐고 다시 묻길래 총 20권으로 이뤄져 있다고 했더니 기함을 하며 유튜브에 가면 10분 요약이 있을 거라고 했다.


“유튜브 요약도 좋지만 그래도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서 완성한 창작물이라면 한 번쯤 진지하게 들여다봐도 괜찮지 않을까? 20권이 적은 양은 아니지만 몇십 년에 걸친 노고에 비할바겠니” 라고 했는데 알아들었는지 잘 모르겠다.

2021년 5월 7일 반려인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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