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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네이 Oct 23. 2021

그대 맘도 나와 같다면

9월 27일 응원하는 야구팀 9연패 한 날

반려인 일기를 읽다 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가 있다. 바로 응원하는 야구팀 이야기다. 점수와 승패를 언급하고 그 결과에 따라 비난과 안도가 잇따른다. 예를 들면 "OO(응원하는 팀)는 오늘 14:2로 졌다" "밖에서 식사할 땐 분명 3:0으로 이기고 있었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역전패를 당했다" 그의 일기 속 야구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우리팀은 매일 어떻게 색다른 방법으로 질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팀 같다. 분노가 체념이 되고 오기와 찰나의 기쁨이 뒤섞인 일기는 2018년에 정점을 찍는다. 그해 우리팀은 처음으로 리그 꼴찌를 했다. 창단 이후 내내 가을야구를 했던터라 충격은 꽤 컸다.


응원하는 야구팀이 있으면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분노 중 무엇이 더 클까. 그의 일기를 보면 후자같다. 승률이 높지 않을 땐 경기를 안 보거나 조금 덜 좋아하면 분명 화(火)랑도 거리두기를 할 수 있을텐데.


"처가 나에게 뭐하냐고 묻기에  일기 쓰는 중이라고 하니 '오늘 당신의 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바란다'고 기원해주었다. 내 일기가 늘 NC 성적으로 끝나는 걸 안다. 시리즈가 시작하기 전, 우리 팀에게 바란 건  두산에게 그저 1승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 욕심이 끝이 없는지 기적 같은 이변을 일으켜주길 바란다. 한 편으론 이제 이런 마음 졸이는 시즌이 이쯤에서 끝나길 바라기도 한다. 야구는 이런 양면적인 감정으로 본다.


NC는 14:3으로 졌다. 오늘로 9연패다. 심신이 쌩쌩한 상태로 끝까지 가는 게 팬의 마음이지만 선수의 심정이라면 이쯤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매번 극도의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경기를 9번째 하는 중인데 나가떨어지지 않는 게 이상하다. 투수들은 팔도 안 올라가서 카드 서명조차 힘들지 모른다. 처는 내게 왜 당신과 결혼해서 야구에 빠지는 바람에 이런 힘든 응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우리가 엔씨팬이라 얼마나 다행이냐며 만년 꼴찌팀이라면 시즌 내내 그런 기분으로 살아야 한다고 위로해 주었다." 

2018년 9월 27일 반려인의 일기


화의 원천은 어디에서 오는가. 못하거나 못해서 지는 것도 물론 화난다. 게다가 십여만 원을 들여 지방 경기장에 갔는데 눈 앞에서 역전패를 보면 화를 더욱 참기 힘들다.

화의 정점은 '나는 이렇게 간절한데 왜 너희는(선수, 코치, 감독 등) 나만큼 간절하지 않고 열심히 하지 않느냐'는 것에 있다. 이기고 싶은 간절함, 가을야구 가고 싶은 마음은 응원하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팬들에게만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 그라운드에 있는 선수의 모습에서 나와의 심리적 간격이 느껴지고 그게 점수에 여실히 반영되면 더욱 마음이 안 좋아진다.


이 추측이 터무니없지 않다고 생각한 건 얼마 전 타 구단의 SNS 채널에서 경기 기록을 적은 게시물에 팬들이 남긴 댓글을 보게 됐다. 현재 부동의 1위를 달리는 팀인데도 지면 누구나 마찬가지라는 듯 성난 팬이 많았고 그중엔 ‘계속 1위로 남고 싶은 건 팬들 뿐인 것 같다'는 댓글도 있었다.


여기서 이기고 싶은 사람은 나뿐이지, 또 나만 진심이야. 이렇게 생각하는 팬들의 마음에 공감한다. 동시에 잘하고 싶고 이기지 못해서 아쉬운 건 선수들도 마찬가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뒤를 잇는다. 내 마음이 상대에게도 전해지고 그가 응원의 마음을 에너지원 삼아 유의미한 성과를 낸다면야 더할나위 없이 좋다. 그런 바람과 무색하게 결과는 가차없고 늘 더 잘하거나 실력에 운까지 따라주는 팀에게 승리가 돌아간다.


사람관계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사람이 내 마음을 공감하고 바라는 바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희망하나, 실상 쉽지 않다. 설령 상대가 나의 바람에 따라 줬다고한들 당연한 것이 아니며, 내 마음과 같게 상대를 바꿀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인정할 때라야 나는 나대로 상대를 바라보고 응원하며 건강하게 사랑할 수 있다.





덧. 그래서 야구팬은 영원히 행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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