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어버이 날
결혼 전,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의 휴대폰으로 부모의 전화가 자주 걸려왔다. 아마 대학 입학 후 고향을 벗어나 부모와 오래 떨어져 살다 보니 그런가 보다 했다. 나는 결혼 전까지 내내 가족과 함께 살아서 그런지 부모와 자식 간의 전화가 생경하게 다가왔다. 급한 일이 생기거나 가족 구성원과 외부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보이지 않을 때 아주 짧게 통화하는 게 전부라 거의 전화를 안 하는 편이다.
“당신은 부모님과 통화를 자주 하는 것 같아. 멀리 떨어져 살아서 그런가?”
“글쎄? 그렇게 자주 하진 않는데.”
“그래도 나보단 자주 하잖아.”
“그건 그렇지. 근데 그렇게 자주 하는 건 아니야.”
결혼 후엔 ‘전화’에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았다. 통화 대상과 상관없이 통화 자체에 기피에 가까운 불편함을 느끼는 것, 명확한 용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편한 사람도 아닌 시부모와의 통화라는 사실, 평소 내 가족에게도 자주 전화하지 않는다는 오래된 생활습관의 차이 등으로 비롯된 스트레스였다.
회사에서 일하다 시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오면 난감했고 정신없이 업무 하면서 부재중 통화가 생겨났다. 원체 나의 아버지에게도 전화하지 않는데 반려인의 부모 또한 마찬가지라 어떤 타이밍과 빈도로 전화해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사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게 진심에 가까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해진 답이 있을 리가. 설령 이게 답이라고 해도 그 답을 모른 척하고 맞추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적당한 타이밍과 빈도, 방법을 찾았다.
반려인의 부모가 그에게 전화하는 건 상관없다. 반려인의 부모가 내게 할 말이 있으면, 카톡을 보내거나 반려인을 통해 전한다. 둘이 함께 있는 타이밍에 전화가 오면 그가 먼저 통화한 후에 휴대폰을 건네받아 안부 인사를 나눈다. 특정한 날(어버이날, 부모님의 생신, 명절, 연말, 새해)에는 반려인의 전화로 통화한다. 아예 전화를 안 하는 것도 사실 마음 한쪽은 불편하므로 적당한 선으로 합의점을 찾은 것이다.
"어버이날이라고 처가 내 부모에게 전화하는 걸 당연케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 나부터 부모와 자주 통화하지 않을 만큼 할 말이 없고 살갑지 못한데, 막말로 생판 남이었던 처는 여북할까.
해주면 고맙지만 그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며 통화가 불편하다면 그건 그거대로 존중해주면 그뿐,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같은 체념 어린 설득을 부부라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내뱉고 강요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요컨대 나나 잘하면 되지, 아무리 생각해도 처까지 끌어들일 일은 아닌 것 같다."
- 2018. 05.08 반려인의 일기
나는 통화가 어렵고 불편하다. 누군가가 불편을 느끼고 그 불편함을 호소하면 이를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하거나 묵인하는 대신, 어떻게 해결해야 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게 우리가 이러한 문제를 마주할 때 가장 먼저 내건 전제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