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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웰다잉 플래너 Mar 16. 2021

학교에서 가르쳤으면 하는 것들

[어차피 죽을꺼] 연재2


어른이 되었어도 아직도 세상에는 모르는 것들이 참 많다. 그렇다고 어디 가서 돈을 주고 배우기도 애매한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자영업자의 경우 매년 해야 하는 부가가치세와 종합소득세 신고가 참 복잡하고 번거롭다. 소득이 적은 터라 세무사를 통해 하기도 부끄러운 금액이다. 그리하여 국세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어떻게든 혼자 해볼려고 노력을 해보았지만 돈을 셈하는 능력과는 거리가 멀어 늘 헤매기 일쑤이다. 

또 매일 몰고 다니는 자동차임에도 불구하고 자동차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도 난감하다. 그저 예정된 킬로수가 다가오면 정비소의 권유대로 엔진오일을 교체하는 수준 인터라, 다양한 소모품들을 어느 주기에 어떻게 갈아야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정비소에 맡기며 “혹시 교체해야 할 부분이 있으면 자세히 한번 봐주세요”라고 부탁은 하지만, 정말 교체할 때가 된 건지, 금액은 정확히 맞는 건지, 돌아올 때도 고개를 갸웃갸웃 거리며 정비소를 나서곤 한다. 옛말처럼 알지 못하니 호구가 되기 딱 십상이다. 교통 사고가 났을 때에도, 당황한 나머지 그저 보험회사에만 연락을 하고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어린 아이처럼 멍하니 서있는 경우도 있었다. 

회사에 입사했을 때도 근로계약서가 과연 제대로 된건지, 방을 구할 때도 전세계약서가 올바르게 작성된 건지, 은행을 방문하여 대출을 받고자 할 때, 보험에 가입할 때 약관이 올바르게 된건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어렵고 복잡하다. 그리고 살면서 이 중요한 것들을 왜 중고등학교 의무교육 과정에서는 배우지 못한 건지 의아한 생각이 든다. 유럽의 어떤 나라에서는 아이들에게 노동법과 함께 임금 협상을 하는 법,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법을 가르친다. 학창 시절 시험을 위해 달달달 외웠던 수학 공식과 물리 법칙, 시적 표현 등을 살면서 과연 몇 번이나 사용했을까. 진학을 위해, 취업을 위해 하는 교과목의 공부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살면서 반드시 알아야 할 삶의 기술들도 배웠다면 삶이 덜 번거롭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서 죽음을 가르쳤으면 좋겠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죽음의 순간들을 직접적으로 그리고 간접적으로 마주한다.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고, 떠나보낸 슬픔을 마주해야 하며, 삶의 끝에 자신도 역시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죽음을 마주하는 것을 불편하고 이야기 꺼내는 것을 재수 없어 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불편 듯 불청객처럼 죽음이 다가오면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 어쩔 줄 몰라한다. 풀어내지 못한 죽음의 슬픔은 곪고 썩어 상처가 되고 영혼에 흉터를 남긴다. 그러므로 죽음의 기술은 곧 삶을 살게 하는 기술이다. 

사랑하는 금붕어와 햄스터와 강아지를 떠나보낸 아이들에게 죽음이란 무엇인지 가르쳤으면 한다. 생명이란 무엇인지, 왜 태어나고 죽는지 함께 이야기 나눴으면 좋겠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떠나 보낸 아이들에게 그들이 정말 천국에 있는지, 어디로 갔는지, 다시 만날 수 있는지를 말해줬으면 좋겠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친구를 떠나보낸 슬픔을 함께 나누고 위로하는 방법을 가르쳤으면 좋겠다. 학업에 대한 부담, 따돌림, 학교폭력, 우울증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할려는 친구를 알아보고 그의 이야기를 묻고 귀를 기울이는 방법을 가르쳤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들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가르쳐줬으면 좋겠다. 자살의 유혹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살아야 하는지, 삶의 이유는 무엇인지, 삶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 모든 꽃이 봄에 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줬으면 좋겠다. 

부모님을 떠나 보낸 친구에게 어떤 말을 건내야 할지,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가르쳤으면 좋겠다. 장례식이 끝난 다음에도 오랜 슬픔에 젖어있는 그에게 어떻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지 가르쳐줬으면 좋겠다. 엄마를 떠나 보낸 아빠와, 아빠를 떠나 보낸 엄마, 그리고 엄마 아빠를 떠나 보낸 자녀들이 어떻게 서로를 위로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가르쳤으면 좋겠다. 

또 먼 훗날 나의 죽음이 다가온다면, 말기암 판정을 받게 된다면,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치료가 더 이상 가망이 없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안아프게 인간답게 죽을 수 있을지 가르쳤으면 좋겠다. 자녀들에게는 부모의 인공호흡기를 어떻게 떼고 어떻게 존엄하게 보내드릴지에 대해 가르쳤으면 좋겠다. 눈을 감은 이후에 장례방식과 장례식과 남은 이들을 위해 무엇을 정리하고 어떤 것을 남겨야 할지를 가르쳤으면 좋겠다. 또 죽음 이후에도 정말 다음 생이 있는지 영혼이란 것이 있는지 알려줬으면 좋겠다. 



그러므로 결국엔 죽음을 통해서 삶을 가르쳤으면 좋겠다. 죽음을 통해 우리 앞의 소중한 것들은 무엇인지, 사랑하는 이들은 무엇인지, 어떻게 용서하고 화해하며 삶을 누리고 만끽해야 할지, 그래서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를 학교에서 가르쳤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조금 더 애타게, 열심히, 더 깊게, 더 뜨겁게 서로를 마주하며 삶을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학교에서 배우고 싶은 건 삶과 죽음과 사랑, 이 세 가지를 배우는 것이 인생 학교에서의 목표가 아닐까. 그런 것들을 학교에서 가르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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