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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자 Oct 11. 2018

우리가 서로의 주석이 된다면

영화 <타인의 삶>

아픔을 오롯이 혼자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감당할 수 없어서 결국 아프게 되었으니까. 혼자서는 차마 채울 수 없는 새벽이 있다. 텅 빈 하루가 있다. 예술이 사람을 위로한다는 건, 결국 누군가의 삶이 나를 이해하고 어루만져 준다는 가장 일반의 위안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도 서로의 삶을 묻고, 나누고, 그걸로도 부족해 책을 펼치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또 다른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나에게 꼭 맞는 이야기를 만나 마음 내어주고 엉엉 운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얼마나 독립적일 수 있을까. 그래도 되긴 하는 걸까. 나는 당신의 삶에 얼마나 깊숙히 들어갈 수 있는 걸까. 그래도 되긴 하는 걸까. 당신에게 물을 수도, 끝내 스스로 해결하지도 못할 그런 물음이 있다. 나는 당신에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가끔은 누군가의 어깨 너머로 경험하는 익명의 삶 자체가 나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것만 같아서.


영화 <타인의 삶> 주인공은 동독 비밀정보국에서 예술가들을 감시, 도청하는 역할을 맡은 인물이다. 그는 당의 지시에 묵묵히 따르는 모범적인 인물이었으나, 감시하던 예술가의 삶에 빠져들게 되고 당의 지시를 어기고 예술가를 돕는다. 결국 그는 좌천되고, 예술가는 통일 뒤에 이름 모를 누군가 자신을 지켜줬다는 걸 알게 되어 그 이야기를 책으로 만든다. 훗날 그는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며 “이 책은 절 위한 겁니다.” 말한다.


첫 눈에 멋지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열 살 정도 차이가 났는데, 그가 하는 일이 참 대단해 보여서 동경을 담아 바라봤다. 나도 언젠가는 그처럼 멋진 작업을 할 수 있을까, 현재의 상황을 탓하며 그에게 당시의 나를 한탄했다.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나에게 그는 이전의 시간을 이야기 했다. 내가 투정한 그대로의 모습을 한 어린 시절의 그가 회사에서 몇 시간이고 앉아 작업하던, 그 지루한 하루의 반복을. 아, 나는 내내 그를 보고싶은 대로만 보고 있었구나. 그가 지금에 닿기 전에, 나를 만나기 전에 지나왔을 시간을 나는 함부로 지나쳤다. 마치 그가 처음부터 이 자리에 서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그의 노력은 세지 않은 채.


그 부끄러운 날이 한동안 마음에 남았다. 얼마나 어리게 보였을까. 현재에는 늘 핑계뿐, 노력도 없이 한 번에 멋진 결과로 시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뻔뻔함. 참 오래도록 작은 세상에 갇혀 살았다. 편협한 시선에 갇혀 스스로를 업신여겼다. 과정을 부끄러워했던 마음에 대한 부끄러움이 한동안 나를 쑤셨다. 그저 흐를뿐인 시간에 기대고 있어서는 어디로도 갈 수 없어서, 원하는 모습이 되기 위해 무거운 엉덩이를 힘껏 들썩여야 한다는 사실을 당신 덕에 뒤늦게 깨달았다.


비즐러가 예술가를 도왔던 이유는 자신의 삶에 대한 욕망과 희망을 타인의 삶에서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당신들을 통해 나의 일부를 발견하고, 이해 가능한 삶의 범위를 넓힌다. 겪어본 적 없던 힘든 시간을 마주할 방법을 배운다. 비즐러가 자신을 위한 책이라는 말을 한 것도, 예술가를 도왔던 것도 사실 스스로를 살리기 위해서 였는지 모른다.


이 영화를 많이도 추천하고 다녔다. 우리가 서로의 바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나를 짓기 위해 당신이 필요하다는, 당신의 일부분이 내 안에 필요하다는 이야기였고, 타인의 삶이 너를 위로하게 해주기를 바라서 그랬다. 당신에게 위로 받았듯 내가 당신의 밖이자 안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2018 언리미티드에디션 10 참가 예정입니다.
해당 글이 수록된 위로의 예술을 담은 책 <망가진 대로 괜찮잖아요>가 텀블벅에서 펀딩 중입니다.
www.tumblbug.co.kr/incomplete
instagram. @jaen1126 / @warmgrayand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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