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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자 Feb 22. 2021

영화 <애니 홀>: 오늘도 거미를 잡으며

영화 <애니 홀>: 오늘도 거미를 잡으며



애니 “알비,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헤어지기 싫어.”
알비 “알아, 이제는 성숙해서 그럴 일 없을 거야.”


두 사람의 희망과는 다르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이별을 맞은 알비는 “이별의 아픔 따윈 없다.”는 독백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합리화와 자기 최면을 반복하며 쿨한 관계로의 전환에 어물쩍 적응한 척하는 둘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고 이내 사랑스러워진다. 전혀 성숙하지 못한 태도 때문에.




옛 연인을 화장실에 나온 거미를 잡기 위해 새벽에 호출하는 사람. 내키지 않는 상대와 밤을 보내다 호출을 받고 태연하게 찾아가는 사람. 옛 연인을 자동차만한 거미로부터 안정시키기 위해 아무 말이나 지껄여지는 대로 떠들어대는 알비를 보며 생각한다. 아무튼 거미 잡는 일은 서른 살이 훌쩍 넘어 배워도 괜찮다. 거미 잡는 일뿐만이 아니다. 사실 우리는 아무것에도 능숙해지지 않은 채로 거미도 못잡으면서 나이만 먹는다. 


인생에서 매일의 베일을 벗기며 사는 기쁨과 슬픔이 이런 걸까. 아무리 많은 관계를 지나온다고 해도 능숙해지지도 성숙해지지도 못할 거란 핑계로 지난 사랑을 딛고 계속 새로운 사랑에 목매도 괜찮은 것. 예정된 실망과 다툼이 기다려도 내일로 넘어가고 싶어지는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는 태도가 우리를 계속 입맞추게 한다. 어떻게든 사랑하고 울고 불며 또 순진한 척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어지는 나를 어떻게 하나.


알비의 독백 “비이성적이고 미쳤고 말도 안 되지만, 하지만 계속 극복해가는 거죠.”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면서도 잘할 수 있게 되기는커녕 후퇴와 눈물은 잦아지고 나잇살만큼 경험 많은 어른이 된 척해야 하지만 사실 십 년 전보다 나아지지 않았다는 걸 들켜도 괜찮은 것. 그게 다시 사랑할 이유가 되어주는 것이 삶일까. 


극복할 것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오늘 넘어져도 내일로 넘어가도 괜찮은 게 아닐까. 거미 잡는 법을 영영 익히지 못한대도 거미는 또 다시 나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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