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공녀>, 빚 지는 삶
“내 인생의 목표가 빚 없이 사는 거야.”
미소의 모든 말과 행동이 삐딱하게 보였다. 빚 지지 않는 삶도 가능할까. 검은 비닐 봉지가 터져 쌀을 다 흘리고 온 미소를 보고 생각했다. 무엇이 새는 지도 모르고, 앞도 뒤도 보지 않고 걸어가는 구나. 남들 다 하고 사는 거 하고 싶다며 해외 파견을 나가겠다는 한솔에게 “사람답게 사는 게 뭔데?” 묻는 미소는, 자신에게 늘 해준 게 없다고 미안해하는 한솔에게 빚지지 않았으므로 관계가 온전하다고 믿었을까. 계란 한판에 한 밤을 보내고 그들의 이야기를 껴안고 다시 거리로 나오는 미소는 어떤 등가 규칙을 가지고 관계를 지나올까. 신세한탄을 늘어놓지 않는 것, 아무도 미소가 어떻게 사는지 모른채로 살아간다고 해도 상대에게 자신의 짐을 지우지 않고 싶은 걸까.
대학 졸업을 앞두고 떠난 여행에서 만난 사람에게 이 짧은 도피가 의미하는 바를 이야기했다. 부모님에게 느끼는 같잖은 부채의식이 나를 숨막히게 만들던 시절이었다. 여태껏 나를 키워준 부모님을 위해 어떻게든 변변한 인간의 몫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질식하기 직전이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자식은 원래 부모한테 빚 지러 오는 존재야. 네가 신경쓸 일이 아니야.“ 언젠가 학교 선배에게 다음엔 제가 살게요 했다가 “아냐 너희 후배한테도 이렇게 해주면 돼.” 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이 떠올랐다.
모르겠다. 세상에 ‘원래 그런 게’ 있어서 정말 받은 만큼 돌려주지 못해도 괜찮은 건지. 아니면 결국 어떤 경로로든 서로 돌려주며 살아가는 건지. 나는 어쨌든 그 말을 내키는 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전날 밤의 술자리 이후 나른한 오전, 공용거실에 앉으면 바다가 보이는 숙소였다. 그냥 흐르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부딪히기도 하고 부서지기도 하고 더 많이 주고 더 많이 받기도 하면서.
관계는 빚 지며 넓어지고, 서로를 나누어 질수록 깊어진다. 내가 당신에 대해서 아는 것이 늘어나고, 조금은 뻔뻔하게 우리를 들먹여야 내 인생에 당신을 깊이 데려올 수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서로에게 ‘그래도 괜찮은’ 범위를 조금씩 늘려가면서 다정한 침범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때가 관계가 무르익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신세 지고 싶다. 네가 나에게 신세졌으면 좋겠다. 의지해도 괜찮은 사이로 지내고 싶다. 문득 생각이 나서 연락하고, 힘든 일 생기면 기대고, 네가 우리 집에 찾아와서 울다가 잠들고, 그런 거.
나는 우리가 좀 염치 없었으면 좋겠다. 서로의 삶에 끼어들어서 운전대를 휘적휘적 투닥 거리면서, 안맞으면 각자 갈 길 가는 거 말고. 내가 어떤 선택을 해도 너는 내 편이라고 믿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