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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자 Mar 29. 2021

별 네 개 준 영화 내용이 기억 나지 않을 때

당신은 어떤 순간에 살고 있나요

별 네 개 준 영화 내용이 기억 나지 않을 때

<엣지 오브 투모로우>와 <500일의 썸머>


무슨 영화를 틀까 화면을 뒤적이다가 눌러본 영화에 이미 별 네 개를 줬더라. 봤던 것 같긴한데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별을 네 개나 줬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 건 참 이상한 일이다. 이상한 일은 자주 생긴다. 왓챠피디아에 1200여 편의 평점을 남겼다. 가끔 왓챠피디아를 시작하기 전의 영화들도 찾아서 평점을 매기곤 하는데, 분명 본 영화지만 내용이 잘 기억나진 않을 때 기분에 맞춰서 평점을 주어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이 정도였지, 하고 별점을 주는 일은 역시 어색하다. 지난 과거에 이제와 새로운 평가를 내리는 건 정의로운가.


본 영화를 또 보는 건 나에게 익숙한 일이다. 늘 그래왔듯 다시 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내 기억은 어디로 간 걸까 자꾸 하소연 하게 된다. 본인의 유년 시절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겨우 두세 시간 짜리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충실한 그날 그날의 행동이 나를 구성하는 얇은 퇴적층이 되었을 거라고 믿을뿐이다. 하지만 역시 별을 ‘네 개나’ 주고도 기억하지 못하면 인생을 기만 당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좋아하는 걸 기억하지 못하는 마음은 때로 얼마나 초라한지. 싫어하는 이유를 떠올리지 못하는 건 참을만 하지만 적어도 왜 좋아하는지 정도는 기억하고 살아갔으면 싶은 마음을 욕심이라고 할 수 있나.


대부분의 기억은 고만고만한 일상 속으로 사라진다. 과거는 기억의 재구성으로, 상상력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정확한 기억을 원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미래의 깨달음 덕에 과거가 더 선명해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릴케는 사랑에 대한 글을 쓰기를 최대한 늦추라고 말했다지만, 나는 잘 돌아보기 위해 오늘의 서툰 마음결 까지도 적어두고 싶다.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는 것들을 기록하기 위해 분투하고 나서야 감정의 세밀한 결을 구분할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 하고. 아무래도 지금의 나를 쌓아올린 순간들을 잊는 사람이고 싶진 않다.



기억을 잃어버려서 좋은 점이 하나 있다면, 나는 분명 그 영화가 달리 보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흔한 일이다. 중학생 때 지루함을 참아내며 겨우 다 읽자마자 그 내용을 완전히 까먹은 고전 문학 필독서를 다시 읽고 인생 책으로 삼는 운명 같은 일.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그랬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그래서 어쩌라고 싶었던 삐뚠 마음은 몇 년 뒤 고분고분하게 “외부 세계는 마음 속을 비추는 거울이다.”라는 문장을 인생의 지침으로 받아들인다.


실제로 이 글은 <엣지 오브 투모로우>라는 톰 크루즈와 에밀리 블런트 주연의 SF 영화에 별 네 개를 주었지만 결말이 기억이 나지 않는 데서 시작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틀었다. 딴짓도 하고 간식도 먹으면서 띄엄띄엄. 멋진 CG와 액션, 매일 죽으면서 하루를 반복해 살아간다는 설정이 핵심이지만, 이번에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단 한 장면 뿐이었다. 빌(톰 크루즈)은 같은 날을 반복하며 리타(에밀리 블런트)의 죽음을 수도 없이 겪는다. 그녀에겐 늘 단 하루일 뿐이지만, 빌에게는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늪 같다. 둘 사이엔 관계의 시간차가 생긴다. 그녀도 그와 마찬가지로 과거에 매일을 반복하며 산 적이 있었고, 한 남자의 죽음을 매일 목격해야 했다. 리타는 그 기억에 괴로워하면서도 같은 상황에 놓인 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듯 보인다. 과거의 남자 이야기를 하는 리타를 지긋이 바라보는 빌의 모습이 자꾸만 아른거린다. 경험해본 일이라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도 다른 입장에 서고 나면 상대의 마음이 잘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여태 각자 지나온 관계의 무수한 합을 몸에 새긴 채로, 자꾸만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500일의 섬머>는 영화를 보는 시점의 개인의 상황에 따라서 남녀 주인공 두 사람 중 누구에게 공감하는 지가 뒤바뀌는 희한한 이야기다. 한 번은 썸머가 나쁜 년이 되었다가, 한 번은 톰이 나쁜 놈이 된다. 초연한 마음은 두 사람 모두를 이해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인간은 줏대 없는 박쥐처럼 부끄러운 ‘인간적인’ 존재인 것이다. 그것은 그날의 변덕에 따라 좋은 영화 였다가 나쁜 영화가 되고, 인간은 상대가 주근깨가 있어서 좋아했다가 주근깨가 있어서 싫어하는 식의 기적의 논리로 그날 그날을 살아가는 것뿐이다. 이 변덕 덕분에 나는 별 네 개 준 영화의 내용을 까먹어도 괜찮은 마음이 된다. 우리는 똑같은 것을 똑같이 느낄 수 없는 존재니까.


500일의 썸머 스틸컷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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