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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갸비 Jan 09. 2023

한겨울, 양양, 물치해변, 서퍼

영하 10도 바다에서 서핑하실래요?

처음 본 순간, 눈을 의심했다. 눈을 크게 꿈뻑이고 다시 봤다. 분명한 서퍼였다. 때는 지난해 12월29일 오후 3시께였다. 밖은 영하 10도에 가까웠다. 강원도 양양 물치해변을 지나던 즈음 푸르른 바다에 첫 번째 탄성이 터졌다. 이어, 푸른 바닷물이 모래사장에 부딪히며 일으키는 새하얀 물거품이 일으키는 절경에 두 번째 탄성이 나왔다.


번째 탄성은 좀 달랐다. 비명 같기도 했고 환호성 같기도 했다. 분명한 건 앞선 두 번의 탄성보다 적어도 두, 세 옥타브는 높았다는 것이다. 높이 2미터 파도 사이로 새까만 슈트를 입은 이들이 한겨울 파도를 가르고 있었다. 제 아무리 전신 수영복을 입었다지만 한겨울 강원도 동해 바다의 냉기를 막기엔 여러모로 역부족으로 보였다.


저들의 정체가 의심스러웠다. 함께 동행한 분께 여쭤봤더니 “미친 거지”라는 답변이 나왔다. 무릎을 탁 쳤다. 촌철살인이었다. 하기사 미치지 않고서야 한 겨울 영하 10도 날씨에 강원도 동해 바다에서 서핑을 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미쳤으니까 가능한 일이다. 범인으로서는 차마 시도할 엄두조차 못할 한겨울 서핑을 몸소 실천하는 이들을 넋 놓고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멋지다는 생각이 스쳤다. 남들 보기에 대단한 일이든 아니든, 어떤 일이라도 한 번 미쳐볼 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근사한 일이지 않은가. 적어도 미쳐있는 그 순간만큼 내 모든 것을 걸었다는 의미니까 말이다. 지구라는 별에서 인간이라는 생명체로 태어나 무언가 하나에 모든 걸 쏟아붓는다는 건 찬란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한겨울 서퍼는 본능을 역행한 이들이다. 한겨울에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귤이나 까먹고 싶게 마련이다. 이들은 영하 10도 칼바람이 부는 날씨에 시퍼런 동해 바다 파도 속으로 뛰어들었다. 본능에 정면으로 맞선 셈이다. 미쳤으니 가능한 일이다. 부럽고 또 부러웠다. 기꺼이 나를 내던지는 삶, 본능에 맞서는 삶, 자연에 맞서는 삶. 이런 사람들이 더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한층 더 재밌어진다. 이런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아 몹시 즐거운 요즘이다. 이런 멋진 분들을 더 많이 만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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