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되는 축구 후반전, 인생 후반전은 한숨만

by 갸비

“재미없어”


서른 중반이 되고 가장 많이 듣고 내뱉은 말이다. 어른들은 ‘서른 중반, 한참 좋을 나이지’라고 하던데 적어도 우리는 아니었다. “재미없어”, “노잼이야”를 입에 달고 산다. 표정은 일자 눈, 일자 입이 기본이다. 가령 이런 모습 (-_-) 말이다. 십 대, 이십 대를 같이 보낸 친구 얼굴에는 더 이상 밝고 빛나는 눈빛, 환한 폭죽처럼 퍼지는 웃음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하나같이 동태 눈깔을 단 목각 인형 신세다. 우리가 모이면 1시간에 3분의 2인 40분은 푸념, 3분의 1인 20분은 창밖이나 주변 사람을 보며 풍경을 보는 게 전부다. 무념무상 멍한 눈빛으로 말이다.


서른 중반은 이제 막 반환점을 돈 나이다. 신체도 정신도 정정한 건강 수명이 일흔인 점을 고려하면 서른 중반은 딱 중간이다. 인생이 스포츠라면 전반전 종료, 승패를 결정지을 후반을 앞두고 잠시 휴식 겸 작전 타임을 보내는 때가 바로 서른 중반이다. 냉철한 이성으로 후반 전략을 짜는 시기이자 승패를 앞두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후반전이 기대되지 않는다. 투지가 불타오르지도 않는다. 어른들 말처럼 ‘한참 좋은 나이’ 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노잼이다.


서른 중반, 처음 노잼을 맞닥뜨리고 당혹스러웠다. 서른 초반만 해도 새로움이 있었는데, 시간이 훅훅 지나가더니, 모든 순간이 데자뷔(Dejavu)처럼 느껴졌다. 이미 해본 일, 이미 겪어본 일 같았다. 새로움이 사라지니 설렘도 느껴지지 않았다. 매너리즘에 빠졌다. 일상을 채우는 건 권태와 지루함, 하품뿐이었다. 이 반환점을 지나 내가 도달할 결승점은 과연 어디일지, 그곳에서는 누가 날 반기고 있을지, 몇 등으로 결승점을 통과할지 궁금하지 않았다. 기대감도 없었다. 애써서 굳이 인생 종점까지 가야 하나는 의문마저 들었다. 한 발짝도 움직이기 싫었다. 여기, 이렇게, 평생 머물러도 별 문제없겠다 싶었다.


꽤 오래, 이렇게 머물러있었다. 하는 일이라고는 제자리에 앉아 멍 때리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한 번은 여태 지나온 길이 있던 쪽을 멍하니 바라봤다. 지나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한 발, 두 발 과거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발걸음을 내딛을수록 가까운 과거부터 먼 과거까지 나아가게 됐다. 별 다른 의도는 없었다. 할 일이 없었기에 그저 걸을 뿐이었다. 가깝고, 먼 과거 속을 한참 헤매다 어느 날은 ‘노잼’이란 놈이 대체 언제부터 내 삶에 끼어들었나 알아보고 싶어졌다. 그 지점만 알아낸다면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멈추고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다시 설렘과 기대가 가득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가슴 한 구석에 자리했던 것 같다.


먼 과거에서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오기로 했다. 걷다가 노잼이란 놈이 보이는 때가 나타나길 바라면서 말이다.


시작은 중,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다람쥐 챗 바퀴 인생을 살던 때였다. ‘학원-집-도서관’의 무한 반복이었다. 대체로 지루했지만 질풍노도의 시기인 만큼 이따금 친구들과 주먹다짐도 하고, 마음에 드는 이성에 푹 빠지는 일도 생기는 등 소소한 이벤트들 덕분에 재미도 있었다. 하긴, 노잼을 느낄 겨를이 없는 시기가 이때이기도 하다. 대입이라는 목표에 매달리느라 상념에 젖을 시간조차 없던 때였다. ‘대학생만 되면…’이라는 꿈에 빠져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토록 바라던 대학생이 된 이십 대는 크게 보면 십 대의 연장선이었다. 이때도 노잼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십 대 초, 중반은 연애하고 놀고 군대에 다녀오고 망가진 학점을 복구하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 이십 대 중, 후반은 직장을 구하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어렵사리 얻은 직장은 적성과 맞지 않았다. 그러나 일을 못한다는 얘기는 듣기 싫었다. 인정받기 위해 업무 관련 학습도 많이 하는 등 시간을 쏟아붓느라 나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 노잼이 껴들 시간도 없었다.


이십 대 후반은 참고 또 참다가 시간을 다 보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직장과 직무 속에 허우적거렸다. 서른이 되고 더는 참고 살 수 없었다. 직장을 그만뒀다. 대학생 때부터 꿈꿨던 일을 하기 위해 1년을 온전히 바쳤다. 다행히도 서른 살이 되던 해 1월에 직장을 그만두고, 같은 해 12월에 원하던 직업을 얻었다. 눈 코 뜰 새 없이 시간이 흘렀다.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 건 일이 손에 잡힐 즈음이었다. 남는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 해 정도는 ‘시간을 죽이며’ 보냈다. 그래도 괜찮았다. 난 충분히 바빴으니까,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두 해 째는 슬슬 불편해졌다. 아마 이맘때였던 것 같다. 노잼이란 놈이 내 삶에 끼어들기 시작한 게 말이다. 거울을 보니 어느 날 발견한 뾰루지, 여드름, 흰머리, 주름처럼 노잼은 참, 불편하고 불쾌한 놈이었다.


노잼을 처음 맞닥뜨린 후 든 감정은 당혹감이었다. 다음으로는 궁금증이 들었다. 대체 놈은 어디서 왔고 정체는 무엇이며 왜 하필 내 앞에 나타났는가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 내밀한 비밀을 털어놓기에는 동갑내기 친구가 제일이다. 결혼 5년 차, 내일모레면 아들이 유치원에 들어가는 ○○○을 찾아갔다. 고민을 털어놨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까 ‘노잼’이란 놈이 내 옆에 있더라. 문제는 떼어놓고 싶어도 떨어지지를 않아.” 친구는 잠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대뜸 내 어깨에 손을 얹더니 천천히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야, 나도야. 토요일 오전에 아들내미 키즈 카페에 데려다 놓고 노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보면, 굳이 더 살아야 되나 싶은 생각이 든다? 결혼하고 애 낳고 집도 마련하고 원하던 차도 사니까, 이만하면 해볼 것은 다 해봤다 싶더라. 물론 애가 커 나가는 모습을 보는 행복도 있겠지. 그런데 당장 내일 죽어도 별 아쉬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나도 사는 게 재미가 하나도 없다.”


고민을 털어놨는데 해결은 안 되고 고민이 더 늘어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머릿속이 복잡했다.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어 보이던 친구가 나와 같은 ‘노잼 증후군’을 겪다니, 심지어 ‘굳이 더 살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하다니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괜히 나를 위로해주려고 힘든 척 하나?’라는 의구심도 들었다. 다양한 친구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결혼은 했지만 자식은 없는 친구, 결혼도 안 했고 자식도 없는 친구 등. 내친김에 직장 동료, 동종 업계 또래에게도 물어봤다. 돌아오는 답변은 대동소이했다. “나도 노잼이야”라고들 했다. 위안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 한 구석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한때는 꿈 많고 패기 넘쳤던 우리였는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됐지, 싶었다.


책을 뒤졌다. 사람은 끼리끼리 만난다고 하지 않던가. 내 주변에서만 벌어지는 특이한 현상일 수도 있다는 의구심을 떨치기 위해서였다. 한편으로는 우리 또래에 광범위하게 퍼진 노잼 증후군이 왜 생겨났고 어떻게 떨쳐내나 알아보는 차원이었다. 보유 장서 기준 국내 2위인 전자책 플랫폼 A사에서 ‘서른’을 검색했다. 총 114권의 책이 검색됐다. 스크롤을 내려가며 제목을 쭉 훑어봤다.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묻고 답하다』, 『서른이면 어른이 될 줄 알았다』, 『어른은 아니고, 서른입니다』 『서른 살 청춘표류』, 『서른, 머뭇거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 살에게』, 『서른 다섯, 출근하기 싫어졌습니다』. 맞다. 서른은 흔들리고 고민하고 주저하고 또 결심하지만 이내 포기하고 싶은 나이대였다.


이쯤 되니 서른 중반, 인생 노잼은 일종의 통과 의례처럼 보였다. 나와 내 주변뿐만 아니라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서른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면 다들 ‘나는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여태껏 살아왔던 삶을 또 살아내야 하는지’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들며 노잼을 맞닥뜨리는 것처럼 보였다.


내친김에 다른 연령대도 검색해봤다. 궁금했다. 노잼은 서른만의 특징인지, 다른 나이대는 어떤 고민을 하고 이에 따른 해결책은 무엇인지 말이다. 우선 스물. 68권이 검색됐다. 다음은 마흔. 133권이 나왔다. 서른보다 마흔을 다른 책이 더 많다니, 놀라웠다. 속으로 ‘서른보다 더한 나이대가 있다니, 인생 참 쉽지 않구먼’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쉰. 39권으로 뚝 떨어졌다. 다음으로는 예순 4권, 일흔 7권, 여든 12권 등이었다.


기왕 찾아보는 거 성야의 서른도 한국의 서른처럼 ‘노잼’에 시달리나 알아봤다. 유교 국가 한국의 서른과 서양의 서른은 다를 수도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에서였다. 전 세계 데이터 95%가 기록된 언어인 영어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구글에 영어로 ‘thirties’를 입력했는데 자동 완성으로 ‘no funny’ ‘not fun thirthies meme’ 등이 떴다. 엔터키를 누르고 이미지 탭을 눌렀다. 수많은 짤과 만화들이 떴다. 몇몇 기억에 남는 짤과 만화를 소개한다. ‘Welcome to Thirties’라는 제목 아래 한 남성이 소파에 퀭한 눈빛으로 앉아있다. 그 옆으로는 매 주말 베이비 샤워하고 한 번 술을 마시면 숙취는 적어도 이틀을 간다는 조롱조 내용이 글과 함께 그림으로 표현돼 있었다.


이십 대와 삼십 대의 체력을 비교한 그림도 눈에 띄었다. 이십 대 때는 교통사고를 당해도 웃으며 “I’m Fine(난 괜찮아)”라며 엄지를 들어 올리는데, 삼십 대 때는 목에 깁스를 하고 있어 동료가 물어보니 “(Last night I slept wierd position) 어젯밤 엉뚱한 자세로 잠들었나 봐”라고 울상을 짓고 있었다. 이 외에 신조어를 못 알아듣는 그림, 핸드폰 진동이 울리는 걸 보고 20대는 “어머 누가 날 찾네, 날 여전히 기억하고 있어”라며 기뻐하지만 30대는 “또 뭐야”라며 심드렁해하는 표정 등등. 건강도 꺾이고 호기심도 없고 새로운 걸 알려고도 않는 게 서른이라고 놀려대는 글과 그림들로 가득했다.


서른은 동양에서도 서른에서도 한풀 꺾이는 나이, 재미없는 나이였다. ‘서른 중반, 인생 노잼’은 우리 인류가 공통으로 겪는 ‘퇴행성 질병’이었다. 나이가 들면 신체 장기가 하나, 둘 노쇄하고 제 기능을 못해 근골격계부터 심혈관계 질환을 하나, 둘 앓는 것처럼 서른이 되면 노잼 증상을 앓는 게 당연했다. 한편으로는 허무했다. 서른 중반이 되면 너도 나도 우리 모두 노잼이 되는 게 당연한 수순이니 그냥 받아들이라는 식으로 결론 내리기 싫었다. 분했다. 오기가 생겼다. 인정하기 싫었다. 강산에의 노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가 귓가에 맴돌았다.


보이지도 않는 끝

지친어깨 떨구고

한숨 짓는 그대

두려워 말아요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걸어가다 보면

걸어가다 보면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노래의 한 구절을 흥얼거렸다. 그러다 정신을 차렸다. 괜한 오기가 생겼다. 서른에도 이십 대처럼 재미있을 수 있다고, 십 대처럼 꿈 꾸며 살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이 에세이는 서른 중반 인생 노잼의 현상과 원인 그리고 해결책을 찾아 나섰던 나의 분투(奮鬪)기다.


*분투,奮鬪(떨칠 분, 싸움 투). 있는 힘을 다하여 싸우거나 노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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