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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Sep 24. 2019

<애드 아스트라>

진짜 '나'를 찾기 위해 때로는 아주 멀리 가야 할 때도 있다.

해왕성은 태양계에서 가장 바깥에 있는 마지막 행성이다. 2006년에 명왕성이 행성의 지위를 잃고 난 후 태양계에서, 지구에서 가장 멀리 위치하고 있는 행성은 해왕성이다.




가까운 미래에 인류. 인류는 그들의 삶을 좀 더 윤택하게 만들기 위한 신물질과 지적 생명체를  찾아 우주로의 탐험을 나서게 된다. 이미 가까운 달에는 또 하나의 지구가 만들어져 있고, 화성을 베이스로 이 우주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멀지 않은 미래에 인류는 우주의 더 먼 곳으로 떠나게 된다. 목성과 토성을 지나 천왕성과 해왕성까지 이어지는 긴 여정인 '리마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의 리더는 지구 상 최고의 우주 비행사 클리포드 맥브라이드 (토미 리 존스)이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영웅으로 생각하며 우주 비행사를 꿈꿨던 로이 맥브라이드 (브래드 피트) 소령. 로이는 아버지 클리포드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 지구에 이상 현상이 일어나고,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충격적인 얘기를 듣게 된다. 그리하여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머나먼 해왕성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화성이나 달을 탐험하는 지구인들 얘기는 여태껏 많이 있었다. 그런데 해왕성이라니. 현재의 기술력으로 해왕성을 가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걸까. 하긴 어차피 공상과학 영화인데 그런 게 뭐가 중요하나 싶다. 그렇다면 왜 굳이 그렇게 먼 길을 택했는가. 꼭 그렇게 멀리까지 가서 이 영화가 하고 싶은 얘기는 과연 어떤 것일까.


사실 영화는 기대했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진행된다. 예고편을 본 바로는 SF 장르 기반의 미스터리물이나 스릴러물의 영화일 줄 알았다. 우주 속에 숨겨진 거대한 비밀을 발견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이야기. 그리고 요소요소에 배치된 액션신으로 극의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그런 영화일 줄 알았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영화는 처음 예상과는 다르게 아주 정적인 템포로 진행이 된다. 로이의 독백이 중심이 되는 전개 방식은 결국 이 영화가 넓은 우주의 바깥이 아닌 하나의 소우주, '나'라는 우주의 깊은 내면을 탐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로이를 제외한 등장인물들은 영화의 배경과 밑그림만 그릴뿐이고, 이 우주를 탐험하는 일은 오로지 로이, 나, 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몫이다. 로이는 아버지를 만나러 해왕성까지 가면서 예상치 못한 일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나름의 방법으로 위기들을 헤쳐나간다.


흥미로운 점은 로이가 점점 지구에서 멀어질수록 본인의 내면과는 가까워진다는 사실이다. 오랜 시간 외면했던 내면의 상처들과 트라우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원망의 감정들이 자기의 집에서 멀어질수록 더 명확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끝을 알 수 없는 허공의 우주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더 명료하게 느껴진다는 것이 경험해보진 않았지만 꽤나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결국 태양계의 끝에서 자신의 우주 속 빛나는 별이었던 아버지와 조우하게 되지만, 직접 눈 앞에서 본 별은 자신이 기대했던 그 별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버지를 만나면, 그 별을 직접 보게 된다면 자신을 괴롭게 했던 그 모든 것들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멀리 와서 굳이 그 별을 보려 했을까.


 


우리가 흔히 하는 얘기들 중에 '소중한 것은 가까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말이지만, 막상 본인의 삶에서 실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소중함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후에야 진정한 소중함을 깨닫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어쩌면 로이의 긴 여정은 필연적이었던 것일 수도 있다. 해왕성의 위치가 물리적으로 상당히 멀리 있기 때문에 좀 과한 설정일지도 모르지만, 손에 잡히지도 않는 별 같은 것들을 눈감는 날까지 욕망하며 사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볼 때 나름 적절한 설정이었다고 본다. 결국 그 별을 손에 잡은 로이의 눈엔 그 별이 생각만큼 반짝반짝 빛나지도 않았고, 또 그 별을 잡자마자 놓아주어야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다짐한다. 가까이 있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겠다고.


보고 나면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이 드는 영화인데, 이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의외로 간단하다. '소중한 것은 늘 가까운 데에 있다'라는 너무나 흔하고 보편적인 진리. 해왕성은 좀 과하긴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사람들은 항상 멀리 떨어져야만 깨닫는 희한한 DNA의 소유자들이니까. 누구나 그렇다. 집을 떠나봐야 집이 귀한 줄 알고, 누군가와 헤어져봐야 그 사람이 소중한 걸 알게 된다. 오죽하면 관객을 태양계 가장 끝까지 데리고 갔을까 싶다.



다만 이 영화는 지나치게 정적인 것이 단점이다. 눈꺼풀의 무게가 소우주의 탐험을 방해하는 순간들이 여러 번 찾아온다. 다행히 영화가 플롯이 복잡하다거나 난해한 상징들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서 중간에 잠깐 졸더라도 전체적인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큰 무리가 없다. 그래도 영화를 보면서 한 번이라도 지루하다 라는 느낌이 든다면 그 자체가 영화의 큰 단점이다. 영화의 여러 장점들을 무색게 하는 참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2시간 남짓한 소우주 여행은 영화 이상으로 깊은 울림을 준다. 이제껏 살아온 삶을 반추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앞으로 어떤 자세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하게 만든다.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처럼 삶의 진리라는 것도 결코 멀리 있지 않은 것 같다.  우주의  실한  복을 위하여.



ps: 웬만하면 피곤하지 않을 때, 맑은 정신일 때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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