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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Feb 13. 2020

<조조 래빗>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

조조 래빗. 본명은 요하네스 베츨러. 애칭인 조조 베츨러로도 불리는 한 10살짜리 꼬마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조조 래빗' 은 히틀러 유겐트 캠프에서 얻은 조조의 별명이다. 토끼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는 약하고 어리숙한 모습을 비꼬며 다른 단원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조조는 나치즘을 신봉하고 히틀러를 우상화하며 강한 남자가 되려고 하지만 상황은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전쟁에 참여하고 싶었던 아이는 또 다른 전쟁을 하며 점차 성장해간다.




그동안의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했던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조조 래빗> 은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전쟁의 참혹함과 잔인함은 이 영화에서는 다소 옅게 그려지고 있다. 물론 간접적으로 전쟁의 분위기나 실상들이 언급되기도 하지만 <조조 래빗> 은 단언컨대 성장 드라마가 확실하다. 조조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 그건 아마도 전쟁 중에 피어난 전쟁과도 같은 사랑이었을 것이다.



조조는 아버지 없이 엄마랑 단 둘이 살고 있다. 대화가 필요할 때마다 불러내는 상상 속 인물은 다름 아닌 히틀러다. 그의 우상이자 친구인 히틀러는 조조의 가장 좋은 말동무다. 이 어린 친구가 항상 조언을 구하고 의지하는 게 희대의 독재자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영화에서는 유머러스하게 표현되고 있지만, 전쟁의 그늘 속에 10살짜리 소년의 심리가 얼마나 불안했을지 짐작이 간다. 다만 <조조 래빗> 은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고 있으며, 주인공 조조의 매력이 보는 내내 미소를 머금게 한다.


하긴 10살 때쯤이면, 이맘때쯤이면 누구나 다 마음속에 우상이 있기 마련이다. 대개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같은 유명인들이다. 그래서 그들처럼 되고 싶어 하는 꿈을 매일 꾸기도 한다. 2차 대전의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우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조조는 히틀러를 우상으로 섬기고 친구같이 지내며 훌륭한 나치가 되어가는 듯했다. 괴물을 만나기 전까진.



조조는 나치 신봉자답게 유대인을 괴물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그 괴물이 자기 눈 앞에 나타난다면? 10살의 소년에게 일어난 이 일생일대의 사건은 조조의 내면에 큰 변화를 불러온다.


처음에는 적이자 괴물이었다. 하지만 점점 히틀러보다는 이 괴물과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조조의 마음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생겨난다. 뱃속에서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만 같은 느낌. 10살의 조조에게 사랑이라는 것이 찾아온 것이다. 오로지 전쟁 생각밖에 없었던 그에게 사랑이 침투하면서 조조의 마음은 내적 전쟁을 치르게 된다. 그렇게 전쟁 같은 사랑이 찾아왔고, 조조는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조조의 주변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들. 죽음과 이별과 만남과 사랑. 전쟁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고려하더라도 10살의 나이에게는 매우 가혹한 현실이다. 그래도 사랑을 알았으니 참 다행이다. 전쟁 중에 찾아온 사랑이라는 괴물은 다행히도 괴물 같은 우상을 날려버리게 만들었다.


<조조 래빗> 은 굉장히 귀엽고 사랑스러운 영화다. 전쟁영화 라기보다는 한 편의 동화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배경이 2차 대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전해주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히틀러 유겐트 캠프에서 아이들이 책을 불에 던지는 장면이라든지 (2차 대전 당시 독일인들이 유대인이 쓴 책들을 불에 던져 태워버린 일이 있었다.) 나치의 정치경찰 게슈타포가 활개 치는 모습이라든지. 영화 <조조 래빗> 은 주인공 조조가 사는 시공간이 끔찍한 전쟁의 한가운데라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이러한 영화적 배경이 조조가 겪는 내면의 변화와 맞물려 더욱 감정을 고조시킨다.


전쟁이 끝나감과 동시에 이 영화도 막을 내릴 준비를 한다. 조조는 사랑을 지키기 위한 또 한 번의 내적 전쟁을 하게 된다. 전쟁 끝에 내린 조조의 마지막 선택은 진정 10살 다운 선택이었다.



<조조 래빗> 은 어찌 보면 굉장히 보편적인 이야기다. 어렸을 때 흠모의 대상이 멀리 있는 우상 같은 존재에서 가까이에 있는 이성으로 옮겨지면서 겪게 되는 내적 변화. 이것은 전쟁 중에 있는 독일이나 지금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 아니 그 어느 나라라도 비슷할 것이다. 그렇게 이성에 눈을 뜨고 처음으로 사랑을 발견할 때 우리는 한 단계 더욱 성숙해지는 것이다. 설령 그 사랑이 실패한다고 해도 말이다.



ps: 영화 <조조 래빗> 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수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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