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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Apr 02. 2020

<파수꾼>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상처를 주는 아이러니

질풍노도의 시기. 흔히 청소년기를 우리는 이렇게 부르곤 한다. 모든 것이 불안정하기만 한 이때를 잘 표현한 말이다. 요즘에는 청소년기를 지난 성인들도 사춘기를 겪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청소년의 시기는 감정적 동요가 매우 거센 시기라 하겠다. 그래서 이 시기에 많이 무너지기도 하고 다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이 시기의 상처가 평생을 가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예민하고 섬세한 시기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러한 정서적 동요를 막상 당사자들은 잘 인식을 못한다. 인식을 겨우 한다 하더라도 이것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알지 못한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감정의 폭풍 속에서 능수능란하게 제 갈길을 찾아가는 소년소녀들은 아무도 없다. 이러한 감정의 폭풍은 때로는 거칠게 만들기도 하고, 반대로 아주 약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둘 다 그들이 겪는 성장통인 것이다. 때로는 본인 마음에 우상을 만들어 폭발하는 감정을 전가시키기도 한다. 어쨌든 그들만의 방법으로 질풍노도를 버티고 헤쳐 나가는 것이다.


그들은 마음을 전달할 방법도 잘 모르고, 안다고 해도 방식이 여간 서툰 게 아니다. 그러다 보니 종종 주변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키기도 한다. 서로 싸우고 때리고 상처를 주고받고. 다시 화해하고. 다시 또 다투고. 이러한 과정들이 관계를 더 돈독하게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주기도 한다.


내가 다치는 게 무서워서 했던 말과 행동이 도리어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인생이 처음이듯 그들도 그런 감정은 처음이었을 테니까. 몰아치는 폭풍우 속에서 버티기 위해 했던 몸부림에 누군가 맞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몸부림쳤던 그 사람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들도 이런 폭풍은 처음일 테니까.


청소년들은 어른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해서  '주변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말을 천천히 곱씹어보니, 그만큼 주변 사람들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는 시기이기 때문에 '주변'인 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강한 듯 보이지만 어찌 보면 굉장히 연약한 시기인 것이다.



<파수꾼>의 세 친구들도 그렇다. 기태, 희준, 동윤 세 사람은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단짝들이다. 매일 하교를 같이 하며 서로의 시간과 생활을 공유하던 친구들. 서로 비밀이 없을 정도로 절친했던 이들은 사소한 오해들로 인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사이가 된다. 하지만 이 시기를 지나온 사람들이 보기엔 이들의 행동이 결코 본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 영화가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영화 후반부로 가면 이들이 서로에게 주었던 상처들을 후회하면서 괴로워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친구를 아프게 하면서까지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나 되묻게 만든다. 그리고 가장 강하다고 생각했던 기태가 사실은 가장 약한 존재였다는 것. 그 부분이 <파수꾼> 이란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경고이자 충고가 아닌가 싶다.


<파수꾼>은 여러모로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과 닮았다. <우리들> 이 초등학교 여학생들의 감정을 펼쳐 보여준다면, <파수꾼>은 남자 고등학생들의 감정을 펼쳐 이야기하고 있다. 초등학생은 초등학생대로 고등학생은 또 그들 나름대로 감정을 나누고 상처를 주고받는다. 그 시기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의 변화들을 포착해 그 나이 때에 맞는 옷을 입혀 이야기하는 방식이 많이 닮아있다.


남자 고등학생들은 서로 주먹도 휘두르고 욕설도 뱉으며 몰아치는 감정을 달랜다. 하지만 여전히 혼자 감당하기에는 버겁다. 버거워서, 나도 힘들고 무서워서 내친 건데 그게 그렇게까지 큰 상처가 될 줄 그들은 몰랐다. 차마 그럴 줄은 몰랐어서 더 미안하고 힘들다.




<파수꾼> 은 학원폭력의 소재를 빌어 누구나 겪는 성장통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고 있는 영화다. 욕설과 폭력으로 일관하는 그 시기의 남학생들이 사실은 굉장히 아픈 날들을 견디고 있다는 것. 영화가 주는 성찰과 울림이 정말 대단하다.


내가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아파하고 자기 마음을 지키려는 '파수꾼' 같은 소년들이 있을 것이다. 혹시 내 주변에는 그런 친구들이 없는지 살펴봐야겠다. 소년이 아닌 청년일지라도. 그들의 진정한 주변인이 되어 너무 아파하지 말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먼저 아파해본 사람으로서.



ps: 과연 이제훈과 박정민은 될성부른 떡잎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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