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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Sep 02. 2019

<벌새>

현미경으로 본 성장통

'나는 너의 영원한 형제야.. 나는 너의 친구야...'

윤복희의 노랫말에 마치 한 마리의 벌새처럼 몸부림치는 은희. 은희의 친구와 형제는 어딨을까. 어딘가에 있긴 한 걸까. 아니면 어디에도 없을까.




요란하거나 특별한 마케팅 없이 오로지 '25관왕'이라는 홍보문구로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영화 <벌새>.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건을 소재로 삼았다는 것 외에는 이 영화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제목은 왜 벌새 일까. 포스터에 저 여자아이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 어쨌든 기대가 참 많이 되는 작품이었다.



영화 <벌새>를 이야기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성수대교 사건을 언급한다. 주로 하는 이야기들은 '개인의 아픔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돌아본다'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로 한 시대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등의 감상평이 많이 보인다. 혹자는 영화를 보면서 세월호 사건을 떠올렸다고도 한다. 한 영화잡지는 성수대교 사건이 <벌새>의 서사의 축이라고 말하고 있다. 서사의 축이라, 일견 공감이 되는 말이기도 한다.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사건은 이 영화의 중요한 내러티브 중 하나이며, 주인공인 은희의 세계도 이로 인해 큰 변화가 일어난다. 확실히 이 부분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러한 국가적 재난을 등에 업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는 충분히 훌륭하다. 그냥 은희의 이야기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은희의 날갯짓. 그 의미들을.




영화는 마치 한 소녀의 일기장을 보는 듯하다. 학교를 가고, 학원을 가고, 남자 친구를 만나고, 때론 일탈하는 모습도 보이고. 15살, 중학교 2학년의 소녀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왔다 갔다 그 불안한고 들뜬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영화는 은희라는 소녀의 세계를 담담하지만 아주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다. 은희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현미경처럼 보여주고 있다. 기쁨, 두려움, 분노, 상처, 안도, 희망, 사랑, 아픔, 상실, 즐거움, 열정, 호기심. 인간의 거의 모든 감정들, 희로애락이 이 세계 안에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이때쯤 감정의 영역이 더 넓어지고 지각의 단계가 올라갔었던 것 같다.

나도 1994년에 중학교 2학년이었다. 친구관계의 어려움이나 부모님과의 갈등, 성적인 호기심, 주변 세계에 대한 관심이 다 이때부터 시작이었던 것 같다. 기억하기로는 김일성 사망 소식이나 성수대교 붕괴사건을 보면서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뉴스를 봤던 기억이 난다.


이맘때쯤의 청소년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나는 다 알고, 다 컸다 생각하는데 주변 사람들이나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들은 나의 자아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 계속 외부세계와 부딪히고 상처 받고 그러면서 또 하나씩 마음의 방법들을 터득하고, 조금은 생뚱맞지만 영화를 보면서 중2병의 원인이 여기 있지 않을까 하는 나름 발견 아닌 발견도 하게 되었다. 그만큼 이 영화는 그 시기의 심리를 너무 디테일하고 정성스럽게 표현을 하고 있어서 마치 은희의 마음속 세계를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 굳이 성수대교 붕괴사건 같은 큰 사건은 이 영화를 감상함에 있어서 필수요소는 아니었던 것이다.



아쉬운 것은 내가 여중생이 아닌 남중생으로서 그 시기를 지나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장면에서는 잘 공감이 되지 않고, 은희의 감정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가부장적인 은희의 아버지와 폭력적인 은희의 오빠는 다소 작위적인 설정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캐릭터를 과잉적으로 그리지 않고, 은희의 감정을 전달하는 용도로만 사용되니 이해가 가는 설정이 아닐 수 없었다.




성수대교 붕괴사건은 분명 이 영화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후에 은희가 영지 선생님을 찾아가는 장면에서는 꽤나 깊은 울림을 준다. 은희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그 사건은 반드시 필요한 설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담담히 소녀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도 너무나 아름다운 경험이다.


누구나 마음속 세계가 하나만 존재하진 않을 것이다. 은희는 다리가 무너지면서 한 세계를 잃었지만, 무너진 다리를 보면서 기도함으로 성숙하게 이별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앞으로 또 다른 수많은 세계들을 만나고 헤어지게 될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면서부터 그렇게 간절히 부르짖던 엄마라는 세계는 영화가 끝날 때쯤 은희의 세계와 마주하게 된다. 그제야 내내 불안하던 은희의 눈빛에 평온함이 깃든다.


은희의, 우리들의 세계는 신기하고 아름답다. 그것을 깨닫기까지 누구나 은희였던 시기를 지나오며 여러 세계들과의 이별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멋지게 이별하는 법을 배웠고, 그 세계들을 친구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2019년의 어딘가에 있을 은희도 나와 같은 생각이길 바란다.




ps: 벌새 (Hummingbird) - 벌새란 이름은 벌 같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1초에 19~90번의 날갯짓을 한다. 날아다니는 힘이 강하며, 꽃에 있는 꿀을 먹고, 꿀벌보다 더 부지런히 날갯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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