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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Oct 03. 2019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영화를 사랑한다면 타란티노처럼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69년엔 어떤 일이 있었을까.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에 착륙을 하게 된다. 이렇듯 인류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놀라운 일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베트남 전쟁의 장기화로 극렬한 반전운동이 절정에 이르고 있었다. 히피족이 탄생되고,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이 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또한 보잉 747 여객기가 개발되고 시카고의 100층짜리 빌딩인 존 핸콕 센터 (현재는 875 노스 미시간 애비뉴)가 세워지는 등 과학 기술의 놀라운 업적이 있었던 해였다. 대중문화적으로도 비틀스를 필두로 황금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전설적인 락밴드 레드 제플린의 데뷔도 1969년이다. 1969년은 냉전시기 이후 가장 역동적인 한 해로 꼽히고 있다.

 그렇다면 천재 영화광이 기억하는 1969년도는 어떤 모습일까.




영화를 보기 전 참고하면 좋을 실제 사건이 하나 있다. 바로 1969년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찰스 맨슨 패밀리 살인사건'이다. 찰스 맨슨의 지시를 받은 맨슨의 추종자들이 당시 영화계의 가장 잘 나가는 감독 중 한 명이었던 로만 폴란스키의 저택에 들어가 그의 아내와 아내의 친구들 일하는 하인까지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당시 미국 사회는 물론 대중문화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폴란스키가 살인사건이 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1969년도의 할리우드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이다. 영화에서는 실제 사건의 결말과는 좀 다르게 전개가 되는데 실제 사건에 대해서 미리 알고 영화를 본다면 보는 재미가 더욱 늘어날 것이다.



once upon a time..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자면 '옛날 옛날에..' 이런 뜻이 될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라떼는 말이야.. latte is horse..' 와도 어찌 보면 같은 뜻일 거다. 비록 최근에 생긴 신조어는 기성세대에 대한 다소 조롱의 의미가 담겨 있는 말이지만, 한 명의 영화광이 들려주는 그 시절 할리우드 이야기는 너무나 재밌기만 하다.


이 영화의 감독처럼 주인공도 과거를 아주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 한때는 잘 나갔던 서부극 스타 릭 달튼. 현재는 영화가 아닌 티브이 시리즈의 단역을 전전하며 그나마 남은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것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악역으로 근근이 배우의 수명을 연장하고 있다. 그래도 열심히 오늘을 살고 있다. 과거에 비해 화려하진 않아도 언제나 카메라 앞에서 열연을 펼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릭 달튼이다. 과거에 대한 향수와 오늘을 살아내는 악착, 미래에 대한 불안함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끝내주는 연기로 아주 잘 전달되고 있다. 과거는 지나갔어도 알 수 없는 미래가 있기에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 이 단순한 진리가 사람이 아닌 영화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릭 달튼이 아니다. 바로 영화 그 자체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타란티노 감독은 본인이 너무나도 사랑하는 영화를 가장 영화적인 방법을 통해 영화로 만든 것이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에게 편지를 쓰듯 그때의 추억을 회상하며 카메라로 편지를 써 내려간 것이다.



사실 1969년의 할리우드 산업은 다른 산업과 달리 그다지 좋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30~40년대의 황금기는 지나가고, 50년대 들어서는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극장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비슷한 스타일, 비슷한 이야기의 영화들에 사람들은 점차 스크린보다는 브라운관 앞으로 모여들었다. 주인공인 릭 달튼도 영화에서 티브이 시리즈로 무대를 옮기게 되는데, 이 당시 대다수의 배우들이 처했던 현실과 다르지 않다.


할리우드 산업의 효자였던 서부극도 이제는 이탈리아의 스파게티 웨스턴에게 센터 자리를 넘겨주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타란티노 감독이 영화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면서 1969년도와 서부극을 소재로 삼았다는 것. 정말 영화광 다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감독의 개인적인 취향도 있겠지만, 1969년도 넓게는 1960년대 말. 이 시기는 미국 영화사에 있어 아주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의 획일화된 시스템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뿐만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사람마저도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고 있었다. 기존의 영화산업에 반기를 든 새로운 형태의 영화들이 등장하게 된다. 1967년에 나온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그 시발점이었으며, 1969년에 개봉한 <이지 라이더>가 그 불을 댕긴다. 바로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태동이었다. 이렇듯 1969년은 미국 영화사의 큰 전환점이 되는 아주 중요한 해이다. 70년대를 거치며 할리우드는 다시 예전의 영광을 찾았으며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흐름은 미국 독립영화의 큰 뿌리가 된다.



어쨌든 릭 달튼은 계속 연기를 한다. 불안한 미래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싫어하던 이탈리아의 서부영화에도 출연한다. 단역이든 악역이든 열심히 연기하다 보니 자기를 알아보고 기억해주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싫어했던 과거를 좋은 추억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 릭 달튼의 묘한 표정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한 명의 스타가 한 편의 영화가 어느 한 사람에게 추억이 되고 또한 그 추억이 한 편의 멋진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 이게 바로 타란티노가 영화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아주 영화적인 방법인 것이다. 찰스 맨슨의 광기가 죽이려 해도 죽지 않는 오히려 보란 듯이 그 광기에 불을 질러버리는 불같은 영화에 대한 사랑은 앞으로도 쭉 이어질 것이다.




타란티노 감독은 1969년도를 그리면서 마냥 과거의 향수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는다. 느린 호흡으로 진행되지만 감독 특유의 말발은 여전하며 한층 더 깊어진 시선이 긴 러닝타임을 굉장히 짧게 느끼게 만든다. 그 시선은 단순히 '라떼는 말이야' 식의 옛날이야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과거의 추억이 현재를 살아가는 힘을 주고 현재의 노력이 미래를 꿈꾸게 해 준다는 것. 그 추억의 매개체가 바로 영화라는 것. 이것이 바로 그가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 것이다.


한 명의 영화광이자 천재. 이제는 거장이 된 타란티노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나와 같은 영화광은 다시 한번 설레며 추억에 잠긴다.


그리고 추억은 영원할 것이다.



ps: 끝나자마자 릭 달튼의 쿠키영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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