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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Oct 21. 2019

<메기>

의심할수록 커져가는 마음의 구멍

 의심이 커지면 소문이 된다. 아니, 소문이 있기 때문에 의심이 생기는 걸까. 어떤 것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소문의 낚싯바늘에 낚이고, 의심의 그물에 걸리고 결국 마음의 커다란 씽크홀, 구멍을 만들게 된다. 자칫 철학적일 수 있는 주제를 재기 발랄한 톤으로 이야기하는 영화가 바로 <메기> 다.


 매운탕의 주 재료인 메기가 의심이라는 영화의 주제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이 영화는 메기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중학교 국어 시간에 배웠던 '3인칭 관찰자 시점'의 3인칭이 메기가 되는 것이다. 아니 메기니까 3어(魚) 칭이 되는 건가. 개연성은 찾기 어렵지만 매우 독특한 설정임에는 틀림없다.



이야기는 한 병원에서 시작된다. 엑스레이 사진에 민망한 사진이 찍히게 되고, 이 사진 때문에 병원은 발칵 뒤집어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작 이 사진을 누가 찍었는지보다는 찍힌 사람이 누구인지가 궁금하다. 소문의 진상은 결국 자기 자신의 의심을 확인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의심이 엉뚱한 데로 가 있다. 찍힌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로 말이다. 심지어 그 다른 사람조차도 본인일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바로 이 병원의 간호사 여윤영 씨. 그녀는 이 사진의 주인공이 그녀와 자신의 남자 친구 일거라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퇴사를 결심한다. 그러나 이내 사람들을 잘 믿지 못하는 병원의 부원장과 파트너가 되어 계속 근무를 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이야기의 발단 부분에 해당된다.

그다음 전개는 윤영의 남자 친구 성원의 이야기다.


성원은 딱 봐도 전형적인 백수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울 시내 커다란 씽크홀이 생기면서 일자리가 생기게 된다. 하지만 윤영이 선물한 반지를 잃어버리면서 같이 일하는 동료를 의심하게 되고 동료와의 관계는 흐트러지게 된다.


그리고, 성원의 전 여자 친구의 등장으로 이 의심의 이야기는 절정에 다다르게 된다.


성원의 전여친이 현여친 윤영에게 던진 한마디는 윤영이 성원을 계속적으로 의심하게 만들고, 결국 둘이 헤어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영화 속 성원과 윤영을 보듯 결국 의심의 결과물은 관계의 깨어짐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의심을 멈출 수 없는 것일까.




<메기>는 왜인지 알 수 없지만, 계속 커져가는 그 의심이라는 풍선을 아주 가볍지만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시종일관 장난스럽게 굴지만 메시지는 확실하게 전달되고 있다. 농담인 듯 진담인 듯 건네는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콕콕 박힌다.



 아쉬운 점도 있다. 의심에 관한 각각의 이야기들의 이음새가 매끄럽지 못하다. 단편영화 여러 편을 이어 붙인 느낌인데 제대로 붙어있지 못하고 각자 따로 놀고 있다. 하나의 주제 안에서 하나가 되지 못한 서사는 주연배우들의 호연에 빚을 지고 있다. 평면적으로 나열된 이야기 구조는 끝내 영화의 커다란 구멍을 만들고 만다.


 구멍을 메우기 위해 던지는 상징과 유머들은 다소 무리수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소 강박처럼 느껴지는 미장센도 신경이 쓰인다. 영화적 의미를 찾기 힘든 마치 SNS에서나 유행할법한 소녀감성 다분한 미장센 들은 서사의 구멍을 메우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있다. 아이디어와 재기 발랄함 만으로 긴 러닝타임을 끌고 갈 순 없다. 독립영화라고 해서 봐주는 그런 거는 없다는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오히려 단편영화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래도 독특한 설정과 확실한 메시지는 머리와 가슴에 확실히 박혔다. <메기>는 여러모로 독립영화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게 하는 그런 영화인 것 같다.




의심도 잘하면 좋을 때가 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 하지 않았던가. 뭐든지 확실히 해서 나쁠 건 없다. 하지만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의심이 아닌, 한 사람에 대한 근거 없는 의심은 결국 마음의 구멍을 만들고 그 구멍에 자신을 빠지게 만든다. 영화에서도 나오는 얘기지만,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일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물론 먼저 구덩이에 빠져있는 것을 인식하는 일이 더 중요하겠지.


   

ps: 힙합팬이라면 반가울만한 얼굴이 등장을 합니다. 그의 연기도 나름 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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