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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Dec 12. 2019

<포드 V 페라리>

트랙 위를 달리는 순수와 열정

미국의 유명한 자동차 제조사 포드사는 1903년 창립되었다. 세계에서 최초로 생산라인에 컨베이어 벨트를 도입한 걸로 유명하다. 이것은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단숨에 미국을 대표하는 국민 자동차 회사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러나 생산성과 효율성에만 몰두한 나머지 후발주자들에게 쫓기고 시장 점유율이 하락하며 오랜 침체기를 맞는다. 1960년대에 새로운 차종 개발로 인하여 재기에 성공하고,  카레이싱으로까지 눈을 돌리게 된다.


르망 24시는 매년 6월 프랑스 르망 지역에서 열리는 자동차 경주대회이다. 24시간 동안 쉴 새 없이 달리는 자동차의 내구성이 중요한 승리 요건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60년대 이 르망 24시 최강자는 이탈리아의 자동차 회사 페라리였다. 이 페라리를 이기기 위해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바로 <포드 v 페라리> 주된 줄거리다.



<포드 V 페라리>라는 제목은 얼핏 기업과 기업 간의 전쟁을 다루는 영화처럼 보인다. 포드가 이기기 위한 경쟁상대는 페라리가 맞지만, 영화는 기업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온몸과 마음을 바치는 사람들. 그 땀냄새나는 열정이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뛰어난 드라이버 켄 마일스 (크리스천 베일)와 훌륭한 자동차 디자이너 캐럴 셸비 (맷 데이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이 영화는 기대했던 대로 두 배우의 명연기가 영화에 상당한 힘을 더해 주고 있다. 특히 켄 마일스를 연기한 크리스천 베일은 이번에도 30kg 가까운 체중감량으로 실존인물과의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제목은 <포드 V 페라리>이지만 포드와 페라리는 그저 배경으로 등장만 할 뿐, 사실 이 영화는 두 남자의 순수와 열정을 자동차 엔진으로 노래하는 영화다. 자본주의의 횡포에도 굴하지 않고 끝내 목표를 달성하는 모습은 내심 존경심까지 들게 만든다. 크리스천 베일이 연기한 켄 마일스는 특히 더 그렇다. 실화와는 좀 다르게 각색되었겠지만 영화 속에 켄 마일스는 본인의 순수가 꺾이는 경험을 여러 차례 겪게 된다. 하지만 이 남자는 절대 분노하거나 포기하는 법이 없다. 오히려 더 열정을 쏟아부을 뿐이다. 이 바보 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자세는 결국 포드가 페라리를 이기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결승점의 피날레 그 순간에도 이 남자의 순수함은 기만당하고 마는데 그래도 켄 마일스는 잠시 미동할 뿐 절대 요동치지 않는다. 죽을힘을 다해 열정을 바친 자의 여유랄까. 마치 '난 최선을 다 했으니 결과야 어떻든 상관없어'라고 얘기하는 것 같다.



영화의 시작부터 울려 퍼지는 엔진 소리와 카레이싱 장면은 단연코 백미다. 그 어떤 영화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액션 영화에서 보던 차량 추격씬처럼 총격전이나 폭발도 없다. 달리는 차들과 엔진 소리만 있을 뿐인데도 굉장한 시청각적 흥분을 제공한다. 자동차에 대해서 잘 알고 평소에 마니아라고 자청하는 사람이라면 흥분지수가 더 높아질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이 영화는 역대급의 카레이싱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계기판의 RPM 숫자가 올라갈 때마다 주먹을 쥐게 하고, 계기판의 바늘이 빨간색을 넘어갈 때면 순간적으로 숨이 멎게 된다. 박진감!! 진부한 표현이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포드 V 페라리>는 이렇듯 현실감 넘치는 카레이싱 연출로 보는 재미를 줌과 동시에 과하게 순수한 켄 마일스를 통해 의미 있는 메시지 전달도 놓치지 않고 있다. 깊이 들어갈수록 이 영화는 포드나 페라리 같은 자동차 회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켄 마일스라는 한 드라이버의 꿈과 열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찌 보면 전기영화와도 같다.


르망 24시니, 포드니 페라리니 하는 자동차 관련 배경지식이 전혀 없어도 상관없다. 이 영화는 열정과 우정, 노력과 배신, 성공과 좌절 같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들을 다룬다. 포드와 페라리, 르망 24시 경주대회는 이 이야기들을 하기 위한 상황을 만들어 주었을 뿐이다.


트랙 위를 달리는 자동차는 순수와 열정의 상징이다.




켄 마일스와 캐럴 셸비 그리고 이들의 팀이 만든 열정의 결과물은 거대 자본에게 또 하나의 역사를 선물하게 되는데, 이 자본주의 신화가 부정한 방법이 아닌 온전한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것은 차라리 다행인 듯싶다. 영화 속에 나오는 자본주의가들의 모습은 분노를 유발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고 하니 그마저도 참 다행이다. 하지만 그래도 개인의 희생과 열정의 열매가 다른 사람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참 씁쓸한 현실이다. 이 씁쓸함이 지금 현시점에 대입해봐도 낯설지 않은 것은 조금  슬픈 일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고 오랫동안 잊었던 가치들이 떠올랐다. 촌스럽다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그런 단어들이었다.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거나 열정만 있으면 된다거나 하는 뻔한 얘기들도 떠올랐다. 물론 이 말들을 내 삶에 직접적으로 대입할 순 없겠지. 그래도 주인공 켄 마일스가 주는 메시지는 강렬했다. 그리고 해가 바뀌길 기다리는 지금 다시 생각해본다.


나의 열정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을까. 아직 있기는 한 걸까.



PS: 최대한 넓은 화면과 좋은 사운드 환경에서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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