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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Nov 15. 2019

<타이페이 스토리>

떠도는 마음 어데 하나 둘 곳 없어

청춘은 아프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설교하지 않아도 청춘은 원래 아프다. 현재는 불안하고 미래는 불확실하며 과거는 불필요하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일과 사랑. 가족과 친구. 안정과 변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지만 현실은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여러 가지 꿈을 꾸는 동시에 아무런 꿈도 꾸지 못한다. 망망대해에 툭 던져진 마음은 시대의 파도에 방향성 없이 표류할 뿐이다. 흐르고 떠돌다 보면 언젠가 낙원에 도착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알 수 없기에 계속 파도에 몸을 싣는다. 이미 키를 돌리기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성장에는 언제나 그늘이 있기 마련이다. <타이페이 스토리>는 1980년대 초고속 성장을 이룩한 대만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으로 전 세계적인 거장이 된 에드워드 양 감독의 1985년 작품이다. <공포 분자>,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으로 이어지는 에드워드 양 감독의 타이페이 3부작 그 시작이 되는 작품이다.


영화는 두 연인 아룽과 수첸 을 중심으로 그 당시 대만 젊은이들의 우울과 불안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실직과 이별로 인한 상실감은 화려한 타이페이의 야경 때문인지 더욱 어둡게 비치고 있다. 내가 있든 없든 점점 무의미 해지는 이 도시의 풍경은 자칫 쓸쓸하기까지 하다. 경제는 성장하고 도시는 발전했지만 젊은이들에겐 희망이 없고 세대 간의 갈등은 더 깊어졌다. 도시의 그늘은 이 청춘들의 영혼을 잠식해갔다.



아룽은 오랜 미국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그곳에서 그는 주변인에 가깝다. 가족 없이 홀로 대만으로 건너온 그는 뭔가를 해보려 하지만, 실제로 뭔가를 하진 않는다. 그저 과거에 기대 위로를 구하고 과거에 대한 연민으로 현재를 살아갈 뿐이다. 학생 시절 야구선수였던 그의 유일한 낙은 야구를 보는 일이다.  LA와 타이베이가 똑같다는 그의 말에 이미 권태로움이 깊게 배어있다. 이 권태로움은 오랜 연인인 수첸을 계속 불안하게 만든다.


수첸은 겉보기에는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이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독립해 혼자 사는 그녀는 아룽의 귀국으로 잠시나마 안정감을 찾는 듯 보였다. 그러나 달라진 아룽의 모습은 수첸의 기대와는 달랐다. 떨어진 시간만큼이나 변화된 이 도시만큼이나 둘 사이의 거리는 멀어 보인다. 잘 나가던 회사도 더 잘 나가는 회사에 합병이 되고 수첸은 일자리를 잃고 만다. 휩쓸리듯 떠밀려 나온 수첸은 휩쓸리듯 하루하루 살아간다. 아룽에게 기대어 보지만 그는 위로가 되지 못한다. 이민과 결혼을 얘기하는 수첸에게 아룽은 모호하고 공허한 답변만 할 뿐이다.


불안감은 조급함이 되고 결국 서로를 옥죄게 만든다. 끝내 극단적 결말에까지 이르게 되는 이 둘의 관계는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과거와 현재를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타이페이 스토리>는 변화와 발전 뒤에 따라오는 정서적 빈곤을 두 연인의 감정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룽과 수첸 뿐만이 아닌 주변의 인물들도 예외 없이 도시의 불안과 쓸쓸함을 조명하고 있다. 카메라가 비추는 타이페이는 화려하기보다는 되레 황량하기 그지없다. 영화 전체에 흐르는 쓸쓸한 기운은 도시의 젊은 연인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몸소 '체험' 하게 만든다. 어쩌면 이 타이페이 이야기는 지나치게 늦게 서울을 찾아온 건 아닐까.



1985년 산 타이페이 이야기가 34년이 지난 서울에서도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은 지금의 서울도 그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겉모습이야 많이 다르겠지만 두 도시의 청춘들이 느끼는 고독과 불안감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답이 없는 미래에 기대를 하고 현실을 살아가는 모습들. 발달된 사회에 오히려 주변인이 되어 수많은 파도에 휩쓸리는 모습들. 그들의 떠도는 마음은 어디 하나 둘 곳 없다. 겉으로는 화려한 듯 보여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들이 얼마나 아파하고 있는지를.


영화 속에서 아룽은 친구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 "넌 사람을 연민하려 할 뿐 진정한 사랑을 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아" 그런데, 아마도 그건 아룽이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래, 결론은 사랑이다. 결국 마음의 빈 공간을 채우는 일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다. 그것이 떠도는 마음을 그나마 진정시켜줄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청춘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조금만 덜 아팠으면 좋겠다.


이제 더 이상 청춘의 아픔이 당연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PS: "결혼은 만병통치약이 아니야" - 영화 속 아룽의 대사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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