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온 점들이 모여드는 시간

[평일의 의식의 흐름. 여름] #21

by 임재훈 N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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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존재는 종종 점으로 표현되고는 한다. 스마트폰의 지도 애플리케이션이 얼른 떠오른다. 길 찾기 기능을 실행하면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이 점으로 나온다.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면 실시간으로 그 점도 이동한다. 그 점은 나의 현 위치일 뿐만 아니라 바로 나 자체인 것이다. 몰링형 복합 상가, 컨벤션 센터 등 대형 순환 공간의 안내도 또한 보행자를 점으로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 ‘점=사람’이라는 시각적 약식(略式)은 현대인들에게 익숙한 기호다. 이런 맥락에서 ‘사람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거나 ‘산보객들이 점점이 무리 지은 모습이다’ 같은 문장을 곱씹어 보면, 꽤 현대적(?)인 서술 방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내 눈앞에 실재하는 사람이 점으로 인식될 때가 왕왕 있다. 넓은 장소의 낯선 이들을 볼 때 특히 그렇다. 사람을 점으로 나타내는 문화의 향유자 겸 공유자인 탓이다, 라는 변명을 굳이 덧붙여 본다.

서울 자양동에 용무가 있어, 간 김에 근처 ‘뚝섬한강공원’을 거닐었다. 마침맞게 카메라도 챙겨 온 참이었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만 해도 ‘뚝섬유원지’였는데 2024년 초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정식 명칭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1990년대 꼬마 시절에는 나와 친구들을 비롯해 대부분의 어른들 모두 이곳을 ‘한강고수부지’라고 불렀었다. 지명의 변경에서 세월의 흐름을 체감한다.(에버랜드를 ‘자연농원’으로 기억하는 세대라면 공감해 주시리라.)

온통 혼자인 사람들이다. 혼자 앉아 있거나, 혼자 걷는 중이거나, 혼자 낚시하거나, 혼자 멈춰 섰거나. 지하철의 지상 구간 철교를 받치는 우람한 기둥 앞에 아저씨들 몇 분이 보인다. 동료 여럿이 한 점을 이룬 게 아니라, 혼자인 점들이 잠깐 웅기중기한 것일 뿐이다. 가까이 가 보니 장기 대국 중이다. 둘 줄도 볼 줄도 모르면서 나도 아저씨들 틈에 껴서 실없이 기국을 구경했다. 그렇게 나도 한 점 보탰다. 장기판 주변을 점점의 존재들이 둘러싼 모습이 꼭, 평일 오후 네 시경 뚝섬한강공원 풍경의 축소판 같았다. 혼자 온 점들이 모여드는 시간.

익명의 점으로서 가만히 존재하고 싶을 때, 그러면서도 나와 비슷한 점점의 타인들을 응시하며 아주 약간은 동질감을 느껴 보고도 싶을 때, 그런 아주 괴이쩍은 기분일 때 찾을 장소로 평일 늦은 오후의 뚝섬한강공원은 퍽 알맞다.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

- 저자 소개. 포트폴리오 / 인스타그램


※ 『평일의 의식의 흐름』 브런치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으로 분재됩니다. 각 계절당 25편의 글과 그보다 많은 사진들을 실을 계획입니다. 혹시 모를 무단 전재 및 배포 행위를 예방하고자 브런치북에는 원본 사진이 아닌 해상도(용량)를 줄이고 텍스타일 효과를 입힌 사본을 게재합니다. 추후 출간 작업이 진행되면 출판사와 원본 사진들을 공유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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