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머물기엔 너무 아쉬운 곳
-잠깐 머물기엔 너무 아쉬운 곳-
도시 이름에 프로방스가 붙어 있다면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을 대표하지 않을까! 역시나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는 마르세유, 아비뇽과 아를을 차로 40분 내로 갈 수 있으며 프로방스의 가장 중심지이다. 짧게 Aix라고 부른다. 엑상프로방스를 떠올리면 폴 세잔(Paul Cézanne)의 작품인 20년 연작, ‘생빅투와르 산’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세잔의 고향이며 그의 삶과 예술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생빅투와르 산은 파리에서 니스로 TGV 타고 오면서 잠깐 봤는데 다른 산 중에 존재감이 확실했다. 라벤더 향기를 품은 채로 마노스끄에서 밤을 보내고 바로 엑상프로방스로 향한다. 차로 60km이면 적당하다.
로마 제국이 세운 오래된 도시로 Aix는 라틴어로 물이며, 엑상프로방스는 ‘물이 많이 나는 지역’을 의미한다. 베르동 자연공원에서 본 그토록 큰 산에서 물이 흘러 지중해로 내려가는 길이라 지하수가 풍수한 곳이다. 로마시대에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며, 광장이나 교차로 곳곳에 분수가 많은 '분수 도시'이다. 로통드 분수(Foutaine de La Rotonde)는 가장 큰 분수이고 도시의 상징이다. 12마리의 청동 사자가 지키고 있으며 세잔 동상도 있다.
미라보 광장으로 들어가면 17~18세기에 지어진 건축물에 예쁜 카페나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엑상프로방스가 파리의 21번째 구라고 불린다더니 파리 어느 한 광장에 서 있는 것 같다. 니스의 빨간색 건축물이 즐비했는데 Aix는 노란빛 건축물이 도시의 특징을 제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프랑스는 도시마다 분위기가 다 달라서 더 매력적이다. 반짝이는 남프랑스 햇빛 아래 은은하고 고풍스럽다. 광장에서 시장 구경도 하고 예쁜 기념품 샵이나 카페를 기웃거리다 맛집을 찾아 겨우 빈 테이블에 앉았는데 웨이터가 도대체 오질 않는다. 파리에서 식사하는데 2시간이 넘게 걸린 기억이 나 붐비지 않은 레스토랑으로 옮겨서 식사를 했는데 고기가 설익고 맛은 별로였다.
유럽 어느 도시에나 성당이 있는데 모두 긴 역사와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꼭 들어가게 된다. 무엇보다도 앉아서 쉴 수 있고 건축 스타일과 스테인드글라스도 보고 운 좋으면 파이프 오르간 연주도 들을 수 있다.
Aix의 생소뵈르(Saint-Sauveur) 대성당은 로마 시대 아폴론 신전 자리에 세워진 교회이다. 5세기부터 18세기까지 건축되었고 문은 로마네스크 양식, 벽은 고대 그리스 로마 양식, 고딕 양식, 15세기에 만들어진 종탑을 볼 수 있다. 성당 안쪽 세례당에 아폴론 신전 흔적도 있고 추가로 계속 확장하며 나타난 다양한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는 귀한 성당이다.
세잔 아뜰리에(Atelier Paul Cezanne)를 빠트릴 수 없다. 세잔이 파리를 떠나 1903년부터 1906년 사망할 때까지 거주하며 작업했던 곳으로 개방하고 있다. 다소 높은 곳에 있지만 걸어갈 만하다. 2층 세잔의 작업실에 생전 미술 도구, 발표하지 않은 그림과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예약(6.5유로)해야 입장할 수 있다. 오후 늦게야 입장이 가능했기에 아쉽게 세잔 아틀리에 내부는 들어가지 못했다. 여기저기 세잔의 작품을 감상하며 꼬불꼬불 예쁜 산책길을 걷는 것으로 만족했다.
엑상프로방스에서 세잔이 연작으로 남긴 생빅투와르 산을 보려고 찾아갔으나 길이 막혀있어서 보지 못했다. 알고 보니 세잔 아틀리에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되는 것 같은데…. 역사가 깊고 돌아볼 곳도 많은 도시인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해 아쉽고 아쉽다. 엑상프로방스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고풍스럽고 품격있는 도시의 분위기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