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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 Jan 30. 2024

도화지 결재판을 아시나요?

신입사원 시절 건설현장 이야기 

안녕하세요? 리더십과 조직문화를 돕는 Kay 작가 김우재입니다. 오늘은 저의 신입사원 시절 얘기로 시작합니다. 



저는 건설업 출신입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건설기업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1년 동안 근무하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그때의 배움이 저를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건설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내를 다닐 때면 공사 중인 곳의 펜스만 보이고, 빌딩보다는 타워크레인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타워크레인이 스스로 키(?)가 커지는 과정(Telescoping)의 짜릿함은 본 사람만 느낄 수 있습니다. 하루 몇백대 분량의 레미콘(Ready-Mixed Concrete/속칭 공구리) 차량이 현장으로 들어오는 웅장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씀드렸던 광경은 공사가 상당 부분 진행된 경우입니다. 진짜 건설의 재미는 바로 ‘동원’이라고 표현하는 건설현장의 시작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공사를 하기 위해서는 정말 어려움이 많습니다. 컨테이너를 먼저 갖다 놓고 사무실을 만들고 꾸밉니다. 컨테이너를 설치할 환경도 안된다면 가설사무실 등 어떻게 해서든 사무실을 만듭니다. 아파트의 경우 통상의 공기는 철거 후 약 30개월입니다. 즉 최소한 2년 반동안 일하기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정말 만반의 준비를 하게 되지요.



 여러 가지로 열악한 환경이다 보니 실용성을 최우선으로 일을 하는데요, 특히 재미있는 것은 도화지로 된 결재판을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A3 사이즈의 도화지를 반으로 접어서 결재판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았을 때는 장난인 줄 알았습니다. 접힌 도화지에 결재 서류를 끼우고 클립으로 고정했습니다. 정말 성의 없는 것 같지만, 그 안에서도 엄격한 질서가 존재했습니다. 스테이플러의 위치와 클립의 방향 등 나름의 매뉴얼에 맞추어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혼나기 일쑤였습니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도화지를 반으로 접어 만든 결재판 안에는 그와 비교도 할 수 없는 무거운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억 단위의 숫자들이 도화지 안에서 결정되었습니다. 여러 번 사용해서 지저분해진 도화지라는 형식 안에서 정말 중요한 내용들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현장이 아닌 본사도 똑같이 도화지 결재판을 사용했습니다. 최고경영층에게 올라가는 서류도 똑같았습니다. 도화지 결재판은 하나의 상징이자 문화였습니다. 







제가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하고 나서야 일반회사들이 사용하는 결재판이라는 것을 처음 실물로 보게 되었습니다. 다들 많이 사용을 하고 계실 것 같은데요, 저는 처음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도화지에 익숙한 저에게는 굳이 저런 고급(?) 진 사무용품을 사용해야 할까 하고 말이지요. 하지만, 다른 회사에서는 그저 당연한 사무용품이었습니다. 저는 도화지 결재판이라는 문화에서 오랫동안 근무했기 때문에 낯설게 느꼈을 뿐이었지요.



왜 글로벌 기업이 된 이후에도 도화지를 계속해서 결재판으로 사용했을까요?   



1. 어쩔 수 없는 환경에서 생겨난 생존비법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공사현장의 사무실은 매우 척박했습니다. 예산도 넉넉지 않았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일반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사무용품은 사치에 가깝거나 실용적이지 않은 것들이 많았습니다. 결재판도 그중 하나였죠. 굳이 시중에서 판매하는 고급진 결재판보다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도화지와 클립으로 만든 결재판이 더 합리적인 선택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2. 생존의 비법이 모여 조직의 ‘문화’가 되었습니다. 
아마존을 모르는 분은 안 계실 것입니다. 아마존 창업당시 제프 베조스는 돈을 아끼기 위해 문짝을 떼어다가 책상으로 사용했다고 하지요. 그런데 절약을 위한 그 행동이 이제는 아마존을 상징하는 문화가 되었습니다. 아마존의 직원들은 문짝 책상, 이른바 도어 데스크(Door Desk)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3. 초심을 잃지 않는 리더의 마음이 ‘문화’를 만들어 갑니다.

아마존이 엄청난 성공을 이룬 뒤에 더 이상 도어 데스크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예전의 어려웠던 시절을 이겨낸 초심을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프 베조스 회장은 지금도 도어 데스크를 사용한다고 하지요. 제가 일했던 기업도 같았습니다. 글로벌 기업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도화지 결재판을 사용합니다.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고 성공을 쌓아온 기업이지만, 초기의 어려움을 잊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제 마음의 고향 같은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도화지 결재판이 가지고 있는 정신을 비롯해서 지금의 저를 지탱시켜 주는 많은 역량들입니다. 지금은 그곳을 떠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마도 평생 동안 그곳에서 배웠던 가르침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Kay 작가(김우재) / 출간작가 / 리더십 / 조직문화

https://www.linkedin.com/in/kay-woojae/

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그리고 컨설팅펌에서 쌓은 다양한 경험으로 리더십과 조직문화를 돕습니다.

★ 브런치와 네이버 블로그에 리더십과 조직문화에 대한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 '나는 팀장이다' (공저)  / 플랜비디자인 2020년 / 7쇄 / 대만출간

★ 네이퍼카페 "팀장클럽", 가인지 캠퍼스, 코치닷, 두들린에 정기 연재

★ 카카오 커리어 분야 크리에이터 (브런치)

★ 러닝스푼즈 리더십 강의 진행

★ 다수의 기업 및 기관의 다양한 HR 프로젝트 수행 일단 그냥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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