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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연극의 위대한 희망'이 보여준 고통극

로버트 아이크의 '오이디푸스' 2024.10.4-2025.1.4

by 정재은 Feb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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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올리비에상 최우수 연출상 역대 최연소 수상자로 기록된 로버트 아이크(1986~)는 ‘영국 연극의 위대한 희망’(‘가디언’지)으로 불리며, 셰익스피어, 헨리크 입센, 조지 오웰 등의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는 연출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로버트 아이크의 ‘오이디푸스’는 2018년 4월 네덜란드 인터내셔널 시어터 암스테르담에서 초연했으며, 한국에서는 2021년 10월에 국립극장 ‘엔톡 라이브 플러스(NTOK Live+)’를 통해 소개된 바 있다. 지난 10월, 런던 윈덤 극장에서 영어판으로 새롭게 무대에 오른 ‘오이디푸스’는 당시와 같은 구성이지만, 잉글랜드 배우 마크 스트롱(1963~)과 레슬리 맨빌(1956~)의 강렬한 연기를 통해 관객의 몰입을 극대화했다.


Sonia Friedman Productions Limited©Manuel HarlanSonia Friedman Productions Limited©Manuel Harlan


기원전 비극을 오늘날에도 보는 이유

로버트 아이크는 소포클레스의 그리스 비극을 현대적인 정치 스릴러로 변모시켰다. 작품은 존경받는 정치인으로 설정된 오이디푸스의 야외 유세 영상으로 시작된다. 압도적인 승리를 눈앞에 둔 선거일 밤. 그의 아내 이오카스테는 선거 사무실에서 깜짝 파티를 준비한다. 장성한 아들은 아버지의 등에 올라타 눈을 가리며 장난을 치고, 부모와 성(性)에 대한 대화를 스스럼없이 나누는 등 화목한 가족의 모습이 그려진다. 무엇보다 이 부부는 가족들의 눈을 피해 사랑을 나눌만큼 여전히 뜨겁다.


Sonia Friedman Productions Limited©Manuel HarlanSonia Friedman Productions Limited©Manuel Harlan


무대 중앙에 있는 디지털시계는 공연 내내 시간의 흐름을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오이디푸스의 궁금증과 의심은 점차 비극을 향해 나아가고, 관객은 줄어드는 시간을 통해 긴장 속에 빠져들어 결말을 알면서도 작품에 몰입하게 된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고도 이오카스테와 격정적으로 서로를 탐닉한다. 모든 것을 알기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듯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던 그들은 결국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는다.


로버트 아이크는 희곡집 서두에서 ‘알려진 이야기를 가져와 현재에 맞게 바꾸고, 재구성하여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 그리스 비극의 전통’이라고 언급한다. 또한, 소포클레스가 이 비극의 제목을 ‘오이디푸스, 선택받은 자’로 붙여 당시 그리스의 정치적 의미와 양면적 아이러니를 담아냈다고 강조한다.


비극(Tragedy)의 어원을 ‘염소의 노래(tragoidia)’에서 찾은 로버트 아이크는 배우가 고통을 대신 경험하고, 관객은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 고통을 목격하는 고대의 희생 의식을 무대 위에 구현했다. 작품은 삶에서 고통을 직접 겪지 않아도 연극을 통해 그를 목도하고, 체험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사진 소니아 프리드먼 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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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 객석 2024년 12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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