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듣고 싶다
영어 성적과 비자 문제로 첫 주 수업을 놓쳤기에, 두 번째 주 수업에 일찌감치 도착했다. 캠퍼스라고 했지만 이 건물 저 건물로 나뉘어 있어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구글 맵에서 건물을 찾고, 그 건물 안에서 더듬더듬 층과 호수를 찾아가야 했다. 긴장된 마음으로 교실 문을 열었다. 맞은편에 동양 아이 하나, 서양 아이들 셋이 앉아 있었다.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눈인사를 하고 동양 아이 옆으로 가서 앉았다. 컬러렌즈에 속눈썹 연장, 쉐딩에 블러셔까지 꼼꼼히 한 친구였다. '혹시 한국친구일까?'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중국말로 말을 걸어왔다. '아니, 나는 한국 사람이야.'
나 첫 수업을 못 들었는데 지난 시간에 뭐 했어?
그냥 서로 소개했어. 그게 다야.
허무했다. 학기 시작 전에 교수들에게 메일을 보냈었다. 홈페이지를 뒤져 교수 정보를 찾아서 비자 및 이사 문제로 첫 수업에 빠진다고 미리 양해를 구했다. 그중 한 교수님으로부터 답장을 받았는데, 같은 과정에 있는 학생들에게 첫 시간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반드시 물어보라는 내용이었다. 교수님도 겨우 찾아서 메일을 보냈는데 같은 과정에 있는 학생들을 무슨 수로 찾죠? 그래도 성의껏 다른 교수에게, 이 교수님이 다른 학생에게 물어보라고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지만 이렇다 할 답을 듣지 못했다. 오기 전부터 너무나 궁금했던, 첫 수업시간에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답이 겨우 자기소개였다니. 멍하게 있는 사이 곧 의자가 모자랄 정도로 교실이 가득 찼다.
긴장된 틈으로 누가 영국 사람일까 궁금해졌다. 지난주에 자기소개할 때 있었더라면 힌트라도 얻을 수 있었겠지만 이름이나 억양으로 구분하기는 쉽지 않았다. 영국 학생이 있기는 있는 걸까? 미국, 독일, 프랑스... 아마 저들이 동양인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구분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중국과 인도였다. 수업에는 중국 학생들이 절반이었다. 중국 학생은 쿼터가 있다고 했다. 너무 많이 지원해서 한계를 두었다고. 쉬는 시간이 되면 반은 중국어로, 반은 영어로 떠들었다. 나는 그 사이에서 조용히 앉아 있었다.
드디어 수업이 시작됐다. 분명 열심히 번역하여 읽어갔는데도, 그 내용을 말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연결시킬 수가 없었다. 당최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온 촉각을 곤두세워도 알 수가 없었다. 나이 지긋하신 교수님께서는 자주 농담을 하셨다. 모두들 와하하하 웃었다. 교수님은 그나마 천천히 또박또박 이야기해 주시는 것이었다. 자신의 의견을 거리낌 없이 제시하는 학생들 말은 훨씬 빨랐다.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알아듣고 싶다...
1학기에는 한 주에 두 개의 수업이 있었다. 겨우 두 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수업당 평균 3개의 글을 읽어가야 했다. 긴 책의 한 챕터이거나 논문, 기고 등이었다. 수업 초반에 나는 시험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 건지 석사 과정을 하고 있는 건지 구분이 안되었다. 수업 시간에는 듣기 평가를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예습을 하면서도 모르는 단어를 찾고, 문장을 해석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핵심적인 단어들 뜻이 이해되지 않았다. 전공 단어들은 시험에 나오지 않았던, 낯선 것들이었다. 사전에도 속 시원하게 해석되어 있지 않았다.
교수님이 칠판에 적은 철학자의 이름들은 난생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게다가 철학자라니. 나는 분명 극장과 공연을 공부하러 왔는데. '이 작가 다 알지? 이 작품 읽었지?' 하며 넘어갔던 대학 수업이 떠올랐다. 이십 년 만에 고스란히 이 느낌을 다시 받다니. 나는 그동안 뭘 했나 자괴감이 들었다. 열심히 일했고 영혼을 갈아 넣느라 건강을 지키지도 못했는데. 남은 것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난 그냥 그때 그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수업이 끝나면 튀어나와 다른 애들이 가지 않는 길로 갔다. 다른 층 화장실에서 숨을 고르고 아는 사람을 아무도 마주치지 않을 만한 길로 건물을 빠져나갔다. 더 이상 말할 기운이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수요일 수업은 그나마 듣기만 하면 되는 시간이었다. 목요일 오전 수업은 토론 위주였던 것이다. 교수님은 딱 봐도 나보다 젊어 보였다. 키가 크고 짧은 머리의 시크한 엘라는 질문을 던지며 학생들의 토론을 이끌어냈다. 3-4명 소규모 그룹 토론에서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했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귀담아 들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거기에 연결해 자신의 의견을 보태는 태도들이 놀라웠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말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한 친구가 나를 배려하여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었다. '나는 너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해.' 빈 말이 아니라 모든 말에 수긍이 갔고, I agree with you가 최선이었다.
한 번은 전체 토론에서 이어지는 질문에 계속 몇 학생만 답하자 엘라가 약간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해가 안 가서 말을 안 하는 거야?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어떤 부분이 이해가 안 되는지 알 수 없어.'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고 한 마디라도 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질문 자체가 이해가 안 가기도 했고 전체적인 내용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데다 이렇게 영어를 잘하는 애들 앞에서 내 의견을 유창하게 말할 자신이 없었다.
첫 주가 지나고 분위기를 알고 나니 수업에 들어가기가 더 곤욕스러웠다. 한 글자라도 더 보고 들어가야 한 마디라도 더 알아듣겠지만 너무 답답해서 건물 밖으로 나갔다. 커피를 한 잔 사서 무작정 걷다 보니 고층 건물들 사이에 공원이 있었다. 마침 벤치 하나가 비어 있었다. 그곳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영어로 빠르게 말하며 발음도 좋은 어린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앞을 지나갔다. 수업 시간이 다가올수록 교실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하지만 스무 살 때처럼 이런저런 핑계로 수업을 째기에는 엄청나게 비싼 학비와 여러 가지 책임감 같은 것들이 나를 교실로 떠밀었다. 계속 춥고 배가 고팠다. 허기가 가시질 않았다. 뜨끈한 국물 같은 걸 먹고 싶었는데 따뜻한 것이라곤 커피뿐이었다. 커피와 단것만 입에 넣었다.
게다가 쓸데없이 눈치만 빨라서 더 피곤했다. 수업시간에 미국 아이들 둘이 메신저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맥북 화면을 전환하면서 수업을 듣는 척했지만 지금 이 교실에 있는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나마저도 답답함이 느껴지는 중국 아이 발표를 비웃고 있는 것인지,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대화 내용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저 애들이 나도 비웃을 것 같은 걱정이 들었다.
사회생활 만렙 극강의 E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어 어디로 숨고만 싶은 I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미천한 영어 실력이 하루아침에 좋아질 수 없었다. 대학원 수업에 집중하려 그만두었던 화상영어 수업을 다시 시작했다.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어느 날은 수업에 일찍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수업 시간에 가장 말을 많이 하는 미국 아이 옆자리가 비었기에 인사하고 옆에 앉았다. 그런데 화장실에 다녀와보니 그 애가 한 칸 옆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었다.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한테서 무슨 냄새가 나나? 내가 싫어서 자리를 옮겼다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기분이 한없이 나빠졌다.